하나금융투자가 모회사인 하나금융지주의 든든한 지원 아래 자기자본 5조원 클럽 가입에 바짝 다가서면서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KB증권, 삼성증권 등 이른바 '빅5 증권사'를 위협하는 강력한 대항마로 떠올랐다.
지주 부회장을 새로운 수장으로 맞이한 뒤 지주와 관계를 더 돈독히 하면서 회사 몸집을 불리고 그룹 내 위상을 높이는 한편 대형 증권사로서 경쟁력 강화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 지주 대상 5000억 규모 유상증자…자기자본 5조원 '육박'
1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하나금투는 지난달 26일 하나금융지주를 대상으로 4999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진행했다. 하나금투의 지난해 말 기준 자기자본이 4조4290억원인 것을 고려하면 이번 유상증자로 자기자본 규모는 5조원에 육박하게 됐다. 향후 이익잉여금까지 고려하면 연내 5조원 달성도 충분히 가능하다.
자본 규모는 증권사의 영업기반, 사업안정성 등과 직결되는 사업 경쟁력 지표다. 특히 국내 금융투자업계에서 자기자본 5조원은 초대형 증권사의 기준점으로 간주된다. 현재 9조3463억원의 압도적인 자본력을 자랑하는 미래에셋증권을 제외하면 한국투자증권(5조8137억원)과 NH투자증권(5조8029억원), KB증권(5조7500억원), 삼성증권(5조3171억원) 등 업계 2~4위 증권사들의 자기자본은 모두 5조원대다. 일단 적어도 자본력에서만큼은 하나금투도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김선주 한국기업평가 선임연구원은 하나금융투자에 대해 "유상증자에 따른 투자 여력 확보로 수익 창출력과 사업 경쟁력 강화가 예상된다"며 "연간 이익 유보 규모까지 감안하면 5조원에 육박하는 자본력을 갖추게 돼 초대형 IB 5개사와의 간극이 좁혀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 그룹 차원 전폭적 지원…이은형 대표 행보에 힘 실어
하나금투의 자기자본은 불과 2017년까지만 해도 2조원에 못 미쳤으나 2018년 3월부터 이번까지 3년 새 총 4차례에 걸쳐 2조2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통해 지금의 몸집을 갖췄다. 단기간의 빠른 자본 확충에는 하나금투의 독자적인 수익 개선도 적잖은 역할을 했지만 무엇보다 하나금융지주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모든 금융지주들은 증권사를 비롯한 비은행 계열사의 이익 창출력 개선을 숙원 과제로 삼고 있다. 4대 금융지주 가운데 비은행 역량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고 평가받는 하나금융지주로선 하나금투의 성장성에 큰 기대를 걸고 베팅에 나섰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실제 하나금융지주는 지난달 23일 개최한 콘퍼런스콜에서 하나금투의 자기자본을 5조원 수준으로 높여 '톱5' 증권사와 경쟁시키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번 유상증자의 경우 그룹의 글로벌 사업을 총괄하던 이은형 부회장이 하나금투 대표이사를 맡게 된 직후 이뤄졌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전임 대표이사가 선행매매 의혹에 휩싸이며 불명예스럽게 물러난 상황에서 새로운 사령탑으로 취임한 이은형 대표가 어수선한 조직 분위기를 다잡고 성장에 박차를 가하는데 지주 차원에서 힘을 실어줬다는 평가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 초대형 IB 가시화…진정한 '빅6' 진입 필요조건
풍부한 자본력을 갖추면서 '그들만의 리그'로 불리는 초대형 투자은행(IB)도 가시권에 들어갔다. 하나금투는 초대형 IB의 필요조건인 자기자본 4조원은 이미 달성한 상태지만 실제 인가 신청에는 신중한 태도를 취해 왔다. 그러나 새로운 대표를 맞아 진정한 대형 증권사로의 진입을 꿈꾸고 있는 만큼 멀지 않은 시일 내에 인가 신청을 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이은형 대표는 지난 3월 취임사에서 "진정한 초대형 IB로서 다음 단계의 도약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며 초대형 IB로의 도약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초대형 IB가 되면 자본시장 내에서의 위상이 강화되고 각종 사업과 관련한 혜택이 부여된다. 핵심은 단기금융업(발행어음)을 벌일 수 있다는 점이다. 자기자본의 2배까지 발행어음을 판매할 수 있는 만큼 그를 통해 조달한 자금으로 중소·중견기업 대출이나 부동산 금융, 비상장사 지분 매입, 해외 사업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투자에 나설 수 있다.
현재 초대형 IB는 미래에셋과 한투, NH, KB, 삼성 등으로 자기자본 5조원 이상 빅 5 증권사와 동일하다. 하나금투가 빅5 진입 또는 빅6로의 업계 재편을 꾀하려면 자기자본 5조원, 초대형 IB라는 암묵적인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재우 한국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초대형 IB로 지정받을 경우 초대형 IB 업무 관련 위험관리와 내부통제 체계를 금융당국으로부터 인정받는 의미가 있다"며 "자본시장 내에서 위상이 높아지고 금융당국의 감독 수준이 높아지는 만큼 시스템적 중요성도 커진다"라고 판단했다. 추가로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을 시 수신 기능을 활용해 기업 대출을 늘릴 수 있다는 점도 사업기반 확대 측면에서 긍정적이라는 설명이다.
단 하나금투가 초대형 IB 인가를 받기 위해선 전임 대표이사의 선행매매 의혹 논란과 대주주 적격성 등에 대한 당국의 심사 문턱을 넘어야 하는 과제가 존재한다.
◇ 글로벌·ESG 경영 강화…이은형 대표 색깔 입히기
하나금투는 이와 함께 이은형 대표의 전문 분야인 글로벌 사업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강화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달 초 관련 조직 신설과 재정비에 나선 것이 대표적이다.
그룹 차원의 글로벌 사업 경쟁력과 협업 강화를 위해 글로벌그룹을 새롭게 만들고 그룹장은 하나금융지주 그룹글로벌총괄 겸 하나은행 글로벌그룹장이 겸직하도록 했다. 또 대표이사 직속으로 ESG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ESG본부를 새로 구성했다.
글로벌 사업과 ESG 외에 최근 몇 년간 회사의 수익 개선에 크게 기여한 IB 부문에 대해서도 효율성과 전문성에 초점을 맞춘 조직 개편을 실시했다. IB1그룹과 IB2그룹을 IB그룹으로 통합하고 공모주 시장의 성장세를 감안해 기업공개(IPO)3실을 새로 만들었다. 이번 조직 개편은 특히 이은형 대표 취임 이후 처음으로 이뤄지는 것이라는 점에서 향후 하나금투의 방향성에 대한 힌트로 읽힌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40대의 젊은 나이에 부회장을 맡을 정도로 그룹의 신임이 두터운 이은형 대표를 하나금투 사령탑으로 앉힌 것은 그만큼 그룹 내 하나금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보는 게 아니겠느냐"며 "앞으로 업계 내 하나금투의 입지 변화를 유심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