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서부 와이오밍주에 위치한 휴양지 잭슨홀. 인구 1만여명 남짓한 이 작은 마을은 매년 8월 미국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이 이른바 '잭슨홀 회의'로 불리는 국제경제 심포지엄을 여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맘때면 주요국 중앙은행 총재와 재무장관은 물론 저명한 경제학자들이 앞다퉈 이곳에 모인다.
이번 주 전 세계 투자자들의 눈과 귀는 온통 이곳으로 쏠렸다. 코로나19 바이러스 팬데믹(대유행) 여파로 3년 만에 대면 행사로 진행된 잭슨홀 회의에서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경제와 주식시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정책 방향성을 엿보기 위해서였다. 근 40년 만의 가장 강력한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금리 인상 압박을 받고 있는 연준의 행보가 그 어느 때보다 주목받는 상황.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입에 모두의 관심이 집중됐다.
뚜껑을 열고 보니 파월 의장이 기존 통화 긴축정책을 유지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을 것이라는 시장의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그는 경제에 피해가 가더라도 공격적인 금리 인상 기조를 펼치겠다는 뜻을 재확인했다. 연준의 강경한 태도에 금리 공포가 다시 증시를 강하게 짓누를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는 모습이다.
매파 본색 드러낸 파월…증시는 '와르르'
이번 주 초반 뉴욕 증시는 부진의 연속이었다. 당장 첫 거래일인 지난 22일(현지시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과 나스닥, 다우존스30 등 3대 주요 지수가 일제히 2% 내외의 급락세를 나타냈다. 잭슨홀 회의가 연준의 매파적 통화정책 기조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는 게 아니냐는 경계감이 커진 탓이다.
며칠간 계속되던 불안 심리는 경제지표 개선 소식에 다소 해소됐다. 25일 공개된 미국의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잠정치는 연율 마이너스(-) 0.6%로, 앞서 공개된 속보치 -0.9%보다 나아진 것으로 확인됐다. 아울러 미국 주간 신규 실업보험 청구자수도 계절 조정 기준으로 전주보다 2000명 감소한 24만3000명으로, 2주 연속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다.
여기에 파월 의장에 앞서 나온 연준 위원들의 발언 또한 일정 부분 시장에 안도감을 줬다. 4명의 연준 위원 중 3명은 다음 달 금리 인상 수준에 대해 언급하긴 이르다며 경제지표를 좀 더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잭슨홀 회의 주최자이기도 한 에스더 조지 캔자스시티 연은 총재는 CNBC와 인터뷰에서 "인플레이션을 우리의 목표 수준으로 되돌리려는 책임은 매우 분명하다"면서도 "0.5%포인트 또는 0.75%포인트 금리 인상이 가장 적절한지 말하기는 너무 이르다"고 말했다.
무난하게 흘러가는 듯했던 행사 분위기는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된 파월 의장의 연설 이후 순식간에 싸늘하게 식었다. 그는 단호한 어조로 "물가 안정을 위해선 당분간 제약적인 정책 스탠스 유지가 필요하다"며 가계와 기업에 일정 부분 고통이 따르고 성장을 희생하더라도 금리 인상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연설 시작부터 "제 발언은 짧으며 주제가 좁고 메시지는 더 직접적일 것"이라는 말을 전한 것이며, 불필요한 해석을 차단하려는 듯 이례적으로 연설 시간을 10분 이하로 제한한 것 역시 모두 금리 인상에 대한 파월 의장의 강한 의지를 나타내는 대목이다. 이른바 '매파 본색'을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당초 증권가에선 그가 금융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으면서도 인플레이션 상황을 최대한 안정시키겠다는 원론적인 발언을 내놓을 것으로 봤다. 그런 상황에서 파월 의장의 발언은 완전히 찬물을 끼얹은 격이 됐다.
그는 지난달 유가 하락으로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다소 둔화된 점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해석을 경계하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확신을 갖기에는 한참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연준 수장의 발언에 실망한 매물이 쏟아지면서 이주 마지막 거래일 뉴욕 증시 3대 지수는 일제히 3~4%대의 급락세로 '검은 금요일'을 연출했다. 다우존스30 지수는 5월 중순 이후 가장 큰 일일 낙폭을 기록했고, 주간 기준으로는 3대 지수 모두 낙폭이 4%를 웃돌았다. 금리 이슈에 민감한 기술주들의 부진이 두드러졌다.
변동성 확대 불가피…금리 인상폭에 관심
최근 몇 주간 뉴욕 증시는 연준이 공격적인 금리 인상 기조를 완화하고 내년 상반기 금리 인하로 돌아설 것이라는 기대 속에 완만한 상승 흐름을 보인 바 있다.
그러나 큰 탈 없이 지나갈 것으로 관측됐던 잭슨홀 회의가 파월 의장의 강경 매파 발언의 충격 속에 마무리되면서 금리 이슈가 재점화, 증시 변동성이 다시 확대될 가능성이 커졌다.
리 페리지 스테이트 스트리트 글로벌 마켓 북미 거시전략 책임자는 "앞으로 몇 주간은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연준은 고통을 야기하는 것에 대해 얘기했고 이제 시장이 반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주식에 대한 긍정적인 움직임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도 덧붙였다.
이와 더불어 연준의 통화 긴축정책에 대한 경계감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연준 인사들이 언급한 것처럼 향후 발표될 경제지표의 개선 여부에 따라 금리 인상폭이 좌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파월 의장 역시 다음 달 3연속 자이언트 스텝(한번에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금리 인상폭은 앞으로 나올 통계에 달렸다"고 여지를 뒀다.
증시 전문가들도 CPI와 실업률 등 주요 경제지표에 주목하라고 조언한다. 문남중 대신증권 연구원은 "7~8월 미국 증시 반등을 견인한 요인은 물가 통제 기대와 이로 인한 금리 인상 속도 조절이었다"며 "연준 통화정책 결정의 바탕이 되고 있는 경제지표에 의미를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단 내달 2일 공개되는 미국 8월 고용지표가 관심사다. 실업률은 전월과 같은 3.5% 수준으로 예상되나 비농업부문 신규 고용 건수는 7월의 52만8000건보다 대폭 줄어든 30만건으로 추정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