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태조이방원'(태양광·조선·이차전지·방산·원전) 테마에 편승한 투자자들의 얼굴엔 함박웃음이 피었다. 금리인상, 경기침체, 강달러 등으로 위기가 한껏 고조된 증시 상황에서도 태조이방원 종목들만이 나홀로 질주하며 하반기 들어 20% 이상의 수익률을 올린 덕분이다.
이들이 경기침체 공포를 피해갈 수 있었던 건 정부의 정책 발표와 글로벌 정치 상황으로 수혜가 기대된다는 전망이 대두되면서다. 아울러 반도체 주의 부진에 따른 반사효과로 상대적 투자가치가 높아짐 점도 호재로 작용했다.
경기침체 우려도 이겨낸 '태조이방원'
최근 증시를 달구고 있는 '태조이방원'은 태양광, 조선, 이차전지, 방산, 원전 등 국내 증시를 주도하는 업종을 얼컫는 신조어다.
이들은 침체된 증시 속에서도 높은 수익률을 내 시장 참가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지수가 8월31일 기준 2472.05포인트로 6월 말 대비 5.98% 오르는데 그쳤다. 반면, 같은 기간 태조이방원 대표 종목들의 경우 지난 달 말 종가 기준으로 6월 말 대비 수익률이 21.61%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방산 업종은 53.48%로 가장 높은 상승률을 자랑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67.15% 급등했으며 LIG넥스원(47.63%), 현대로템(45.67%)도 우상향 그래프를 그렸다.
2차전지 평균 상승률은 23.26%을 기록해 두 번째로 높았다. 그중 포스코케미칼은 57.01% 뛰며 대폭 올랐다. LG에너지솔루션(24.66%), 삼성SDI(12.41%) 등도 두 자릿수 수익률을 기록했다.
태양광에서는 대장주인 한화솔루션은 38.76% 올랐다. 원전 업종에서는 일진파워가 20.06%로 두드러진 상승세를 보였다. 조선업종에서는 현대미포조선이 17.45% 뛰었으며 한국조선해양이 3.51% 상승했다.
이들 업종은 수주 산업으로 분류되므로 매크로에 민감한 편이다. 보통 경기상승 시기에 주가가 오르는 반면, 지금과 같이 금리상승, 경기침체 국면에서는 기업투자가 감소할 것으로 우려돼 주가가 탄력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이번 태조이방원의 상승 랠리는 이례적이라고 볼 수 있다.
'정책 수혜+수주 잭팟'에 함박웃음
태조이방원 테마가 시장 주도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첫 번째 배경은 정책 수혜 기대감으로 지목된다. 우선 태양광, 2차전지는 미국 정부의 정책 수혜주로 꼽힌다. 지난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주도로 통과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는 재생에너지와 전기차 산업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내용이 담겼다.
원전 업종은 국내 정부의 친원전 기조가 호재로 작용했다. 윤석열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폐기를 공식화 함에 따라 원전 산업이 활기를 띨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3조 원 규모의 이집트 엘다바 원전 수주 계약을 따내며 수출 물꼬를 텄다.
방산과 조선주는 잇따른 수주 계약 소식에 상승 탄력을 받았다. 방산업종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영향으로 폴란드와의 공급계약 체결 소식이 연달아 나왔다. 지난달 현대로템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자회사인 한화디펜스 등은 폴란드와 조 단위 수주 계약을 맺었다. 또한 한국항공우주도 폴란드와 FA-50 수출 계약 체결을 앞두고 있다.
조선업종은 유럽 내 에너지공급난으로 원유 운반선과 LNG선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발주를 싹쓸이하며 호실적이 예측된다. 한국 기업들은 올해 1~8월 누계 기준으로 전세계 선박발주량의 43%를 차지해 중국의 뒤를 바짝 쫓고 있다.
하인환 KB증권 연구원은 "이들 업종은 경기침체에 대한 두려움 보다는 정치적인 논리가 더 앞서면서 투자가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시가총액 상위를 차지하는 반도체 대형주에 대한 투자심리가 쪼그라든 것도 반사 효과로 작용했다.
반도체 비중을 조정하는 대신 다른 업종으로 유입될 자금의 여유가 많아진 것이다. KRX 반도체업종 지수는 지난 6월 말부터 8월 말까지 1.39% 오르는데 그쳤으며, 8월 한달 추이만 보면 2.57% 하락했다. 근래 IT 수요 둔화와 미국의 대중 수출 규제 등으로 반도체 업황이 둔화될 것이란 전망이 하방압력으로 작용했다.
가파른 오름세를 보이던 태조이방원이 주춤하는 모습이지만 외국인 자금은 계속해서 들어오는 중이다. 이번 달 외국인투자자는 LG에너지솔루션(1020억원), 한화솔루션(613억원), SK이노베이션(288억원)를 순매수했으며, 코스닥 시장에서는 2차전지 폐배터리 관련 주인 성일하이텍(289억원), 2차전지 소재주인 에코프로비엠(119억원) 등을 담았다.
양해정 DS투자증권 연구원은 "신재생이나 2차전지는 단기적으로 끝날 이슈가 아니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가져가는 펀드 수요가 있다"며 "특히 2차전지의 경우엔 보조금 제외 이슈에서 자유로운 완제품(자동차) 보다는 부품, 소재에 투자하는 모습"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