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산운용사 출신의 서유석 금융투자협회 회장이 펀드 활성화를 위해 역점 사업으로 추진해 온 공모펀드 상장이 또다시 연기됐다. 2023년초 협회장 취임 초기부터 강조해온 정책이지만, 임기 마지막해에도 자리를 잡지 못한 채 표류하는 모습이다.
금투협은 공모펀드 상장 시점을 2024년으로 계획했다가 2025년 상반기로 미뤘고, 최근 또다시 하반기로 시점을 조정하고 있다. 한국거래소 전산 인력이 대체거래소(ATS)인 넥스트레이드 출범에 투입되면서 공모펀드 상장은 우선순위에서 밀렸다는 것이 금투협의 설명이다.
그러나 업계에선 공모펀드 상장 제도 자체의 실효성에 회의적인 반응이다. 주요 대형 자산운용사는 물론 직접적인 수혜 대상으로 꼽히던 중소형 자산운용사조차 소극적이다. 조기대선 국면 금융당국의 정책 공백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제도를 주도해온 서유석 회장의 임기마저 올해 말 끝나면서, 애초 취지를 살리지 못한 채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공모펀드 상장 '2024년 → 2025년 상반기 → 하반기(?)'
30일 한국거래소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공모펀드 상장 시점이 7월 말 이후로 연기된 상태다. 공모펀드를 상장하면 투자자는 상장지수펀드(ETF)처럼 거래소를 통해 펀드 수익증권을 실시간 매매할 수 있다.
서유석 회장은 2023년 1월 금투협회장 취임 직후부터 '공모펀드 시장 부활'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며 상장을 추진해 왔다. 서 회장은 "펀드에 가입하기 위해 은행 창구에 방문하면 1시간씩 걸리는 등 투자 접근성이 떨어진다"며 "공모펀드 직상장을 통해 시장 활력을 높이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제도 시행 시점은 계속 늦어져왔다. 금투협은 당초 2024년내 공모펀드 상장을 목표로 했지만, 금융위원회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이 늦어지면서 2025년 상반기로 일정을 조정했다.
서유석 회장은 지난 2월초 기자간담회에서 "올해(2025년) 2분기 중에는 꼭 공모펀드를 상장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고 말했지만, 다시 상장시점이 하반기로 미뤄진 상황이다.
다만 지연 사유에 대한 설명은 엇갈리고 있다. 금투협은 '넥스트레이드 출범'에 따른 전산개발 우선순위에서 밀려 공모펀드 상장이 늦어졌다고 주장하는 반면, 거래소는 증권사와 운용사의 요청이 있었다는 입장이다.
금투협 관계자는 "상반기 넥스트레이드 출범에 따라 전산 인력이 해당 시스템 개발에 묶이면서 일정이 늦어졌다"고 말했다. 거래소 관계자는 "현재 시스템 개발을 진행 중"이라며 "증권사와 자산운용사의 요청에 따라 공모펀드 상장 시점을 7월 말로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ETF도 벅차다"…운용사 공모펀드 상장 미온적
공모펀드 상장 시점이 '양치기 소년' 처럼 계속 미뤄지는 문제도 있지만, 펀드 상품을 만드는 주역인 자산운용사들이 제도 자체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점은 더 큰 숙제다.
비즈워치 취재 결과 대부분의 운용사가 공모펀드 상장에 소극적인 입장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 삼성자산운용, KB자산운용, 한국투자신탁운용 등 대형운용사 대부분이 초기 시장 진입을 미룬 것으로 파악됐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ETF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한국거래소에서 ETF 상장과 공모펀드 상장을 동시에 하는 상황에서 양쪽으로 준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벅차다"고 언급했다.
대형사와 달리 ETF 운용 여력이 없어 상대적으로 공모펀드 상장의 혜택을 받을 것으로 점쳐졌던 중소형 운용사 의지도 높지 않다. 공모펀드 상장을 준비하는 운용사는 유진자산운용과 대신자산운용 2곳 정도로 알려졌다.
거래소 규정에 따르면 전체 설정액이 500억원 이상인 공모펀드만 상장할 수 있다. 그러나 설정액이 500억원 이상인 펀드를 굴리는 운용사 숫자는 많지 않다. KG제로인에 따르면 지난 5월 23일 기준 전체 58곳의 공모펀드 4067개 중 500억원 이상 펀드는 778개(19.13%) 수준이다. 전체 설정액 500억 이상 펀드를 10개 이상 보유한 운용사는 58곳 중 19곳뿐이다. 반대로 5개도 채 보유하지 못하는 운용사는 30곳이나 된다.
한 중소운용사 관계자는 "전체 설정액 500억원 요건을 충족하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결국 상장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운용사들이 대부분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투자 수요 측면에서는 서학개미들의 관심을 받는 해외주식형 공모펀드 상장이 초기에 이뤄지지 않은 점이 변수다. 서유석 회장의 임기가 올해 말로 끝나는 것도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이다. 정책을 주도해온 협회장 임기 만료가 임박한 시점에서 시장 참여자들의 미온적인 반응에 따라 제도 방향과 추진 동력 모두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