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혁신의 시대다. 기존의 것과 완전히 다른 새로움을 추구하지 않거나 차별화 하지 못하면 생존의 위협을 받는다. 정보통신기술(ICT)을 기반으로 전방위 산업이 융합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혁신이란 말의 무게감은 상상 그 이상이다. 페이스북, 구글, 아마존 등 앞서가는 글로벌 기업의 혁신 사례를 키워드 중심으로 살펴본다. [편집자]
똑같은 옷을 입고 나란히 앉아 TV 속 한 사람의 이야기를 멍하게 듣고 있는 사람들. TV 속 빅 브라더에게 생각을 통제당하는 군중들 사이를 비집고 나온 한 여인이 도끼를 던져 TV화면을 깨트린다. 이어서 광고 후반부에 문구가 등장한다. "1월 24일, 애플 컴퓨가 매킨토시를 소개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왜 '1984(현재)'가 '1984(소설)'처럼 되지 않을 것인지 알게 될 것 입니다"
▲ 1984년 발표된 개인용 컴퓨터 매킨토시 광고 [자료=유튜브 화면 캡처] |
미국의 IT업체인 애플(Apple)이 1984년 '매킨토시(Macintosh) 컴퓨터'를 발표하면서 내놓은 광고다. 조지오웰의 소설 1984의 빅브라더와 이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군중들을 형상화한 이 광고는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당시 광고에서 애플이 비유한 빅브라더는 1980년대 컴퓨터시장을 주름잡고 있던 IBM이었다.
이 광고를 통해 IBM에 과감한 도전장을 내밀었던 애플은 현재 시가총액(8023억달러) 1조 달러를 바라보며 세계 1위의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실상 애플이 2017년의 빅브라더가 된 것이다.
◇ 독선적인 휴머니티, 잡스
애플이라는 빅브라더를 지지하는 애플 마니아의 존재는 매우 독보적이다. 아이폰 신제품이 출시되는 날, 새벽부터 나와 줄을 서고 담요와 돗자리까지 가져오는 진풍경을 만들어낼 정도다.
이처럼 애플 마니아들은 신제품에 대한 관심은 과히 열광적이다. 단순히 새로운 제품 하나 등장했다는 정도의 개념이 아니다. 전작보다 전체적인 디자인은 어떤지, 무게가 무거워졌다면 그만큼 어떤 새로운 기능들이 들어갔는지 등을 정교하게 평가한다. 어플리케이션이 켜지는 속도, 부드럽게 화면이 바뀌는지도 측정한다. 마치 미술작품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마니아들의 세심한 평가는 마치 손 안에 아이폰 하나 들고 나와 세세하게 제품을 설명하던 스티브 잡스를 떠올리게 한다. 그가 사망한 지 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애플하면 스티브 잡스를 떠올릴 만큼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사람들은 잡스에 대해 두 가지 평가를 내린다. 아이폰, 아이패드, 맥 등 세계 IT제품을 주름 잡은 역사적 인물이지만 그의 인간성은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독선적인 성격 때문에 한 때 애플에서 쫓겨난다. 1980년 컴퓨터 애플III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과 다른 엔지니어들의 의견에 반기를 든다. 결국 자신의 스타일로 제품을 내놓지만 애플III는 시장에서 크게 실패한다. 이후에도 회사 자금을 매킨토시 후속 제품 개발에 투자하길 주장하는 등 독선적 성격을 고집한다. 결국 잡스는 1985년 이사회에 의해 강제로 애플에서 퇴출된다.
▲ 애플을 창업하고 아이폰, 아이패드 등을 만들어낸 스티브잡스 |
하지만 그가 만든 아이폰, 아이패드 등을 자세히 뜯어보면 냉철함보다는 오히려 인간적인 모습이 더 엿보인다는 평가가 많다. 다만 이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그의 독선적인 성격이 문제가 됐던 것이다.
실제로 잡스는 애플의 성공이 '휴머니티(humanity)'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애플 제품을 발표하는 현장에서 끊임없이 인문학을 강조했다. 2010년 신제품 아이패드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잡스는 "창의적인 제품을 만든 비결은 우리가 항상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 있고자 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애플 제품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도 한결같다. 사용자 중심으로 만들어졌다는 평가가 그것이다. '심플하다', '군더더기 없다', '단순한 인터페이스', '간결한 디자인' 등이다. "제품은 직관적이고 사용하기에 쉽고 즐거워야 한다"며 "사용자가 제품에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제품이 사용자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잡스의 철학이 고스란히 제품 속에 녹아들었다.
지금이야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실시간으로 올리는 것이 흔하지만 스마트폰 등장 초기만 해도 매우 드문 일이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9년 미국 뉴욕 허드슨강에 비상착륙한 비행기 사고다.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출발한 페리호에 오른 재니스 크룸스는 아이폰으로 현장을 찍어 트위터에 올렸고 순식간에 리트윗되면서 가장 먼저 사건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계기가 됐다. 작은 기계 하나가 사람들의 휴머니티를 일깨우는 역할을 한 것이다.
◇ 부드러운 휴머니티, 팀쿡
잡스의 사망 이후 애플의 수장으로 오른 팀 쿡(Tim Cook). 그는 잡스가 1998년 애플로 스카웃한 인재다. 2011년 8월 잡스의 건강이 악화되자 그의 뒤를 이을 애플 최고경영자 후임으로 선임된다.
잡스와 쿡의 성격은 정 반대다. '남부신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쿡은 침착하고 꼼꼼한 성격으로 알려졌다. 쿡은 합리적이고 탈권위적인 리더십으로 애플 내부에서도 인기가 높다. 잡스가 늘 조너선 아이브(애플 최고디자인책임자)와 점심을 함께 한 것과 달리 쿡은 사내 식당에서 모르는 직원들과 함께 밥을 먹을 정도로 소통을 중시한다.
▲ 2011년 스티브 잡스의 뒤를 이어 애플의 CEO로 선임된 팀 쿡 |
지난 2012년 쿡이 중국을 방문한 일화는 유명하다. 아이폰의 OEM생산기지인 폭스콘(Foxconn)에서 일하는 12만명의 노동자들이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듣고 그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방문한 것이다. 노란색 작업복을 입은 쿡은 실제 노동자들의 작업장을 찾아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팀 쿡은 폭스콘 측과 협의해 근로환경 개선과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겠다고 약속했다.
취임 이후 쿡에겐 칭찬보단 비판의 화살이 더 많이 날아왔다. 잡스는 절대적인 리더십과 직설적인 행동으로 애플의 혁신을 만들었고 사람들을 끌어 모았다. 빠르게 결과물을 내놓는 잡스 스타일에 익숙해져 있던 사람들은 쿡의 느리지만 화합과 협업을 중시하는 단조로운 스타일에 의구심을 던졌다.
'팀쿡의 애플, 성적은 좋았으나 혁신은 없었다', '잡스 그립다? 팀쿡 못 믿는 애플 이사회' 등 쿡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가혹했다. 하지만 방식이 다를 뿐 잡스와 쿡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방향은 일치한다.
쿡의 경영체제하에서 발표된 아이폰7은 소비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한 제품이다. 평소 "스마트폰은 한 손으로 조작할 수 있는 크기여야 한다"며 3.5인치를 고수했던 잡스와 달리 쿡은 아이폰7의 크기를 4.7인치로 확대한다. 또 잡스가 그토록 싫어했던 스타일러스 펜 기능을 아이패드에 추가했다. 소비자들이 원했기 때문이다.
잡스와 쿡의 차이점은 여기서 드러난다. 둘 다 소비자의 편의를 위해 제품을 제작한다는 방향성은 같다. 하지만 잡스는 자신의 생각이 곧 소비자의 편의와 이어진다고 봤고, 쿡은 소비자의 요구사항을 먼저 듣고 이를 반영했다는 점이다.
쿡은 지난해 아이폰 iOS운영체제에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선탑재앱을 삭제하고 싶다는 요구를 받아들여 iOS10부터 선탑재앱을 숨기거나 삭제할 수 있는 기능을 넣었다.
CEO(최고영영자)가 달라진 만큼 애플의 혁신과정에도 변화가 엿보인다. 생전 잡스가 시도하지 않았던 일들이 쿡의 체제하에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둘의 방식은 서로 다를지라도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방향은 동일하다. 4.7인치의 작은 기계에 휴머니티를 담아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혁신전략이 그것이다. 이것이 바로 잡스가 자신과는 정 반대의 성향인 쿡을 후임자로 지목한 이유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