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영향력을 과감히 포기한 조치' vs '슬쩍 자리 바꿈을 통한 비난 회피'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에 대한 해법으로 네이버가 제시한 뉴스 개편에 대한 평가는 극과극으로 갈린다.
네이버가 '노른자' 자리이자 매일 3000만명이 찾아오는 모바일 첫화면에서의 뉴스 서비스를 과감히 없애기로 한 것은 그 자체가 파격이다.
인터넷 선도 기업으로서 플랫폼 영향력을 포기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끊임없이 제기된 뉴스 및 댓글을 둘러싼 논란도 언론사 달래기 정책을 통해 어느 정도 잠재울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정치권에서 요구하는 아웃링크 전환에 대해 유보적 입장을 밝힌데다 뉴스 서비스로 이동 경로가 한단계 늘어날 뿐 이용자의 소비 행태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 있어 반발도 예상된다.
▲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가 9일 서울 강남구 파트너스퀘어 역삼에서 열린 뉴스 및 댓글 서비스 개편안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
◇ 3Q 첫 화면서 뉴스·실검 없애
네이버는 9일 서울 강남구 파트너스퀘어 역삼에서 간담회를 열고 뉴스 및 댓글 서비스 개편안을 발표했다. 오는 3분기 중으로 모바일 첫화면에서 뉴스 서비스를 완전히 없애고 검색창 중심으로 재편키로 했다. 뉴스와 함께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도 첫화면에서 제외키로 했다.
모바일 상에서 뉴스는 첫화면을 옆으로 밀면 나오는 두번째 탭 영역으로 이동한다. 네이버는 3분기에 언론사가 직접 편집한 뉴스를 노출하는 '뉴스판'을 신설키로 했다. 또 인공지능 추천 기술을 활용한 개인 맞춤형 '뉴스피드판'을 새로 만들기로 했다.
다만 네이버는 구글식 아웃링크에 대해선 언론사와의 개별 협의를 통해 차근차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과거 PC 버전 첫화면에서 제공했던 아웃링크 기반 '뉴스캐스트'의 부작용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세부 운영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네이버는 2000년대 후반 PC 첫화면 '뉴스박스'가 언론사의 편집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나오자 2009년 뉴스캐스트를 도입했다. 그러나 낚시성 기사, 선정적 광고, 악성코드 감염 등의 예상치 못한 부작용으로 2014년 지금의 뉴스스탠드로 바꾼 바 있다.
매크로 및 댓글 정책과 시스템도 대대적으로 손보기로 했다. 댓글 영역은 올 3분기부터 해당 언론사가 댓글 허용여부나 정렬 방식 등의 정책을 결정하게 된다. 네이버는 계정(ID) 사용에 대한 이상 패턴을 감지, 이상 징후에 대한 계정 보호조치 등도 취할 예정이다.
이밖에도 ▲소셜 계정의 댓글 작성 제한 ▲동일 전화번호로 가입한 계정들을 통합한 댓글 제한 ▲반복성 댓글 제한 ▲비행기 모드를 통한 IP변경 방식에 대한 통신사에 협조 요청 등을 통해 댓글 어뷰징 시도에 대응을 강화할 예정이다. 6.13 지방선거 기간까지 정치·선거기사 댓글은 최신순으로만 정렬하고 사용자가 댓글 영역을 클릭했을 때만 볼 수 있게 한다.
◇ 언론사에 편집·댓글 운영 넘겨
첫화면에서의 뉴스 제외를 골자로 한 개편안은 이날 간담회가 시작되고 나서 전격적으로 알려졌는데 파격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인터넷 서비스의 '얼굴'이자 이용자 집중도가 가장 높은 영역인 첫화면을 말끔히 비우기로 한 것이라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당장 이용자들은 올 3분기부터 검색창을 중심으로 단촐하게 구성된 네이버 첫화면을 만나게 된다. 기존 뉴스와 실검, 채널(언론사 편집 뉴스창), 이용자를 위한 맞춤형 뉴스, 스토리 뉴스 등의 콘텐츠는 죄다 빠진다. 이렇게 되면 네이버의 모바일 경쟁력이 훼손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대해 한성숙 대표도 "네이버 이용자들의 습관을 크게 바꿀 수 있고 그 변화는 가늠하기 어렵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이버의 본질적 사업 및 기술 개발과 관련이 없는 대외적 이슈를 이제는 끊고 가야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언론사의 불만도 어느 정도 해소될 전망이다. 네이버는 뉴스 편집권을 비롯해 뉴스를 통해 발생하는 광고 수익을 언론사에 넘기기로 했다. 새로 만들 뉴스판은 언론사가 직접 편집한 뉴스 기사가 노출되고 이용자 선택을 받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한발 더 나아가 언론사가 댓글 운영을 직접 손댈 수 있게 했다. 즉 해당 뉴스를 제공한 언론사가 댓글 서비스를 붙일지 말지를 결정하고, 정렬 방식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했다.
한 대표는 "매일 3000만명이 네이버 첫화면에 들어와 동일한 뉴스와 실검검색어를 보는데 젊은층에선 오히려 볼만한 뉴스가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라며 "그러한 면에서 어렵지만 이번에 내려놓지 않으면 네이버의 발전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 아웃링크 흐지부지 가능성 높아
일부에서 보면 이번 네이버 개편안에 대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네이버가 첫화면 뉴스면을 두번째 탭으로 이동했을 뿐이며 다소 복잡해졌을 뿐이지 이용자의 뉴스 소비 행태가 크게 달라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네이버는 뉴스 편집권에 대한 언론사의 불만이 끊이지 앉자 PC 첫화면의 뉴스를 언론사가 직접 편집하는 지금의 뉴스스탠드로 개편한 바 있다. 당시 PC에서 모바일로 이용자의 인터넷 환경이 크게 달라지는 시기라 뉴스스탠드로의 전환이 곧바로 네이버 뉴스의 영향력 감소로 이어지진 않았다.
무엇보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강하게 요구했던 구글식 아웃링크에 대한 네이버 입장이 유보적이라는 점이 또 다른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한 대표는 아웃링크에 대해선 "원칙적으로 동의한다”라면서도 “전재료 바탕의 비즈니스 계약, 아웃링크 도입에 대한 언론사들의 엇갈리는 의견 등으로 일괄적인 도입은 어렵지만 언론사와의 개별 협의를 통해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제휴 언론사들과 협의를 통해 아웃링크 운영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이를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아웃링크를 원하는 언론사가 예상 외로 적다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도입이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다.
앞서 네이버는 제휴 언론사 70곳을 대상으로 아웃링크 전환에 대한 의견을 모았다. 이중 70%가 회신을 했는데 단 1개 매체만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언론사들은 논평이나 사설을 통해 네이버의 아웃링크 전환을 주장하면서 그 대안으로 미국의 뉴욕타임스(NYT) 등과 같이 언론사가 직접 댓글을 운영하는 방안을 소개한 바 있다. 그러나 실제로 아웃링크에 찬성한 곳은 극히 드문 것으로 집계된 것이다.
드루킹 검색 조작 논란의 근본적인 대책으로 아웃링크를 주장했던 정치권에서 당장 반발의 기류가 흐르고 있다. 김경진 민주평화당 의원은 이날 자료를 내고 "네이버의 플랫폼 영향력은 유지되는 상황에서 일부 언론사만 아웃링크를 선택하게 되면 트래픽과 광고 수익에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된다'라며 "구글과 같은 전면 아웃링크 방식을 도입해야 미디어 독점을 분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3분기 이후 뉴스판이나 뉴스피드판을 신설해 광고 수익과 독자 데이터를 제공한다지만, 네이버의 미디어 장악력이 그대로 유지될 수 밖에 없고 사실상 아웃링크를 채택할 언론사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