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재판'. 8월22일 열린 방송통신위원회와 페이스북 간 행정소송 1심 판결에 붙은 이름이다. 이는 2016년부터 약 3년간을 끌어온 분쟁인데다 향후 국내 통신사업자와 해외 콘텐츠 사업자와의 망 이용료 협상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웠다. 소송 쟁점과 결과를 살펴본다. [편집자]
'페이스북의 접속경로 변경으로 이용자 불편은 있었으나, 이용을 제한할 수준은 아니었다'
'인터넷 접속 품질은 인터넷서비스제공사업자(ISP)가 관리·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므로 페이스북과 같은 콘텐츠 사업자(CP)가 접속경로 변경에 따른 인터넷 품질 저하를 사전에 예측하기 어렵고, 이와 관련한 약관도 없기에 인터넷 품질에 대한 의무도 없다'
'방송통신위원회는 국제적으로 법적으로 규정된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서울행정법원이 지난 22일 내린 판결문을 요약하면 이렇다.
앞서 페이스북은 '정당한 사유 없이 접속경로를 변경해 국내 인터넷 망 접속 속도를 떨어뜨려 이용자 피해를 초래했다'는 이유로 방송통신위원회의 과징금 처분을 받은 뒤 이것이 부당하다는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이번 1심에서 페이스북 손을 들어줬다.
법원의 판결문을 상세히 읽어보면, 이번 판결의 갈림길은 페이스북의 접속경로 변경에 따른 '현저한 이용 제한'과 페이스북 같은 CP가 인터넷 품질에 대한 책임이 있는지 여부였다.
그런데 페이스북은 인터넷 품질과 관련한 책임이 없고 방통위는 이용자 피해와 관련 국제적으로나 국내법으로 신뢰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법원이 1심에서 판단했으므로 이대로 확정될 경우 향후 유사 사례가 재발할 때 규제 공백이 발생할 우려가 커졌다는 평가다.
실제로 페이스북은 법원에 접속경로를 변경한 이유에 대해 '2016년 1월 전기통신설비의 상호접속기준이 개정됨에 따라 KT가 과다한 접속료를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페이스북뿐만 아니라 유튜브, 넷플릭스 등 트래픽 발생이 많은 외국 CP가 망 접속료 관련한 통신사와의 분쟁이 발생하면 이번 판결을 참고해 대응할 수 있다는 얘기다.
판결문을 통해 주요 쟁점을 살펴봤다.
◇ "이용제한 발생하진 않았다"…법적 공백도 지적
재판부는 페이스북의 접속경로 변경행위가 전기통신서비스의 이용을 지연하거나 이용에 불편을 초래한 행위에 해당할 뿐, 이 사건 쟁점조항에서 정한 '이용의 제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이용의 제한에 대해 '이용의 시기나 방법, 범위에 한도나 한계를 정해 이용을 못하게 막거나 실질적으로 그에 준하는 정도로 이용을 못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이용 자체는 가능하나, 이용이 지연되거나 이용에 불편을 초래한 경우는 이용의 제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페이스북은 기존의 접속경로를 완전히 차단하고 새로운 접속경로로 전부 변경한 것이 아니라 그중 일부의 접속경로만을 변경했고 이용자의 이용 시기나 방법, 범위에 한도나 한계를 정해 이용을 못하게 막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또 CP의 접속경로 변경으로 인해 접속이 지연되거나 불편이 초래되는 경우까지 이용의 제한에 해당한다고 하면, ISP나 다른 CP의 행동 등 다른 외부 요인으로도 법 위반이 좌우돼 법 위반 여부에 대한 예측 가능성도 훼손된다는 지적이다.
재판부는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가 사후에 해외 ISP와 연동용량을 증설, 접속속도가 회복됐으므로 이들이 해외 전송망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면 페이스북의 접속경로 변경으로 이용 지연 또는 불편을 초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아울러 인터넷을 통해 자유롭게 정보가 유통되게 하는 CP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므로 이에 대한 제재도 신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재판부는 "인터넷 이용자는 인터넷을 통해 자유롭게 정보와 의견을 교환하고 있으며, 이러한 기능은 정보를 제공하는 CP가 있음으로써 더욱 고양될 수 있다"면서 "CP의 서비스 품질과 관련 법적 규제의 폭을 넓혀간다면 CP의 정보제공행위 역시 규제를 받을 수밖에 없으므로 명확한 규정이 없는 이상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명확한 규정이 없는 이상'이란 단서가 붙은 만큼, CP의 이상 행동으로 이용자 피해가 발생할 때 제재할 수 있는 규정 마련도 요구된다는 설명이다.
재판부는 이와 관련 유민봉 의원(자유한국당)이 대표 발의한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안도 제시했다. 이 법은 '정당한 사유 없이 이용자에게 제공되는 전기통신서비스의 품질을 저하시키거나 저하될 우려가 있는 방식으로 전기통신서비스를 제공하는 행위'를 금지행위의 유형으로 추가하고 있다.
그러면서 "페이스북이 국내 통신사와의 인터넷망 접속 관련 협상 과정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서비스 비용을 추가로 지급하지 않기 위해 접속경로를 변경했고, 그로 인해 이용자 피해가 발생해 제재의 필요가 절실하다고 하더라도 추가적인 입법을 통해 명확한 제재수단을 마련하기 전에 사건 쟁점의 포섭 범위를 확대할 수는 없다"고 했다.
◇ "객관적 근거 부족"…CP는 인터넷 품질 의무 없어
재판부는 페이스북의 접속경로 변경으로 인터넷 응답속도의 저하, 인터넷망의 불안정성 증가, 병목현상 등이 발생해 전기통신서비스의 이용이 지연되거나 이용에 불편을 초래했음은 인정했다.
그러나 인터넷 품질은 페이스북 같은 CP가 관리·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며, 방통위가 페이스북에 처분한 시정명령 등에는 객관적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CP가 ISP로 직접 전송되는 트래픽 양을 조절할 수는 있지만 그 이후의 ISP와 다른 ISP 사이, 최종 ISP와 이용자 사이에 연결된 인터넷망의 트래픽 양이나 응답속도 등을 관리·통제할 수는 없다"며 "CP인 페이스북은 접속경로 변경으로 인해 서비스 품질이 어느 정도까지 저하될 것인지 사전에 예측하기 어렵다"고 명시했다.
또 ISP가 최저속도 보장 약관을 두는 경우는 흔하지만 CP가 해당 약관을 두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페이스북 약관을 보면 '언제나 방해, 지연, 결함 없이 기능할 것이라고 보장하지 않는다'라는 규정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CP가 접속경로를 변경해 접속경로별 트래픽 양을 조절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도 봤다.
아울러 현행법상 CP는 네트워크 품질을 일정 수준 이상 보장해야 할 의무 또는 접속경로를 변경하지 않거나 변경 시 미리 특정 ISP와 협의를 해야 할 의무를 부담하지도 않는다고 짚었다.
특히 페이스북의 접속경로 변경이 이용자 이익을 현저히 해치는 방식에 해당하는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국제적으로 공인되거나 법령에 규정된 객관적인 수치를 비교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방통위는 접속경로 변경 전의 응답속도나 응답속도 변동 평균값, 민원건수, 트래픽 양 등을 비교 대상으로 삼았고 이러한 기준은 상대적, 주관적, 가변적이라는 판단이다.
방통위는 페이스북의 접속경로 변경으로 인해 인터넷 응답속도가 급격히 저하됐다는 점(SK브로드밴드의 경우 29ms에서 130ms로, LG유플러스 무선의 경우 43ms에서 105ms로 응답속도 저하)을 들고 있으나, 객관적 실증적 근거라고 보기 어렵다는 게 재판부 설명이다.
예를 들어 LG유플러스의 경우 일평균 400ms 초과 시 요금을 보상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방통위는 일평균 400ms는 저속급 회선의 품질기준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나, 이를 뒷받침할 자료가 없다는 것이다.
아울러 방통위 이용자정책국 통신시장조사과가 2017년 11월30일 작성한 시정조치안에 따르면 국내 ISP 3사가 미국 ISP(Sprint, TATA)에 접속하는 경우 네트워크 지연속도는 평균 143ms에 이른다.
재판부는 세계적 네트워크 장비 회사인 시스코도 150~300ms 이하일 것을 권장하고 있는 점과 유럽전기통신표준협회(ETSI) 역시 특정 서비스의 경우 300ms 미만을 권장하는 사례 등을 제시하면서 페이스북 사건이 이같은 기준을 초과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방통위가 실험 결과를 근거로 응답속도가 320ms일 때 현저한 지연을 느낀다고 주장했으나, 실험 기준도 부족하고 이용자 50명의 주관적 느낌을 평가한 것이므로 일반화할 수 없다고 받아쳤다.
민원 증가도 처분 근거로 제시됐으나 객관적 근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SK브로드밴드 이용자의 민원건수는 2016년 12월8일 페이스북의 접속경로 변경 이후 조금 증가했다가 다시 감소했고, 오히려 2017년 2월 중순 크게 증가했다"며 "이는 방통위가 제출한 SK브로드밴드 이용자의 일자별 네트워크 평균 응답속도 추이와도 맞지 않는다"고 했다.
접속경로 변경행위가 이용자 이익을 현저히 해치는 방식에 해당한다면 민원건수가 대폭 증가한 상태로 계속 유지돼야 하는데, LG유플러스의 경우도 접속경로 변경 이후에 급증한 뒤 급감한 상태로 유지됐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방통위가 제시한 응답속도 변동 평균값을 통해 인터넷망이 불안정하다는 점은 확인할 수 있으나, 그 불안정성의 정도(품질 저하의 정도)까지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은 전혀 없다고 했다.
방통위는 응답속도가 저하될수록 서비스를 포기하는 이용자가 증가해 결국 ISP의 트래픽 양이 감소했다고도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다른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트래픽은 SNS의 화제성이나 콘텐츠의 성질 등 다양한 요소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페이스북의 월 이용자수는 접속경로 변경 전후로 1200만명 수준에서 소폭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판부는 이같은 근거로 방통위의 페이스북에 대한 처분이 위법하다고 판단하고 취소돼야 한다고 판결했다.
방통위는 글로벌 기업의 잘못된 관행과 그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그 결과가 국내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상당한 만큼 대법원까지 소송전을 대비하고 있다. 이와 함께 법적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한 제도 개선도 추진할 예정이다. [시리즈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