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재판'. 8월22일 열리는 방송통신위원회와 페이스북 간 행정소송 1심 판결에 붙은 이름이다. 이는 2016년부터 약 3년간을 끌어온 분쟁인데다 향후 국내 통신사업자와 해외 콘텐츠 사업자와의 망 이용료 협상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소송 쟁점과 결과를 살펴본다. [편집자]
페이스북이 이겼다. 페이스북은 고의로 국내 접속 속도를 떨어뜨려 이용자 피해를 초래했다는 이유로 방송통신위원회의 과징금 처분을 받은 뒤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한국 법원이 22일 1심에서 페이스북 손을 들어줬다.
이번 소송의 핵심은 고의성과 이용자 피해 여부 등 이었으므로 앞으로 페이스북뿐만 아니라 유튜브나 넷플릭스 등이 유사한 문제를 일으켜도 법적 제재를 가하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커졌다.
◇ 페이스북, 1심 승소…방통위 9월 중 항소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박양준 부장판사)는 22일 페이스북 아일랜드 리미티드(Facebook Ireland Limited)가 방송통신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시정명령 등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 1심 판결을 통해 "피고의 처분을 모두 취소하라"며 청구인용 결정을 내렸다.
앞서 페이스북은 지난 2016년 말부터 2017년 초까지 망 이용료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의 접속 경로를 협의 없이 미국, 홍콩 등으로 변경해 데이터 처리 속도를 떨어뜨려 이용자 피해가 발생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방통위는 이같은 행태를 조사한 뒤, "막대한 트래픽을 발생시키는 글로벌 콘텐츠 제공사업자인 페이스북이 정당한 사유 없이 접속경로를 변경해 서비스 접속 지연, 동영상 재생 장애 등 국내 이용자에게 피해를 발생시켰다"고 판단했다.
페이스북의 국내 이용자는 약 1800만명, 자회사인 인스타그램도 1000만명이 넘는다. 이렇게 많은 사용자들이 국내 통신사에 페북·인스타 이용 불편을 호소하면 망 이용료 협상은 복잡해진다.
이에 따라 방통위는 작년 3월 과징금 3억9600만원을 부과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업무처리절차 개선 등 행정처분을 내렸는데, 페이스북이 이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방통위는 이번 선고에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즉각 항소에 나설 방침이다. 진성철 방통위 통신시장조사과장은 1심 선고를 지켜본 뒤 "당연히 이길줄 알고 왔다"며 "바로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방통위는 법원 판결문 송달 이후 2주 이내 항소할 계획이다.
법원은 이날 "행정처분을 취소하라"는 선고만 밝힌 까닭에 어떤 이유로 이같은 판결을 한 것인지는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파악되지 않았으나, '고의성이 없었고, 망품질 보장 의무가 없다'는 등 페이스북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진성철 과장은 "일주일 이내 판결문이 방통위에 송달될 것"이라며 "이를 통해 자세한 입장을 밝히겠다"고 설명했다.
방통위는 페이스북의 국내 이용자 차별 행위가 분명했으므로 항소 이후의 결과에 기대를 걸고 있다.
진 과장은 "페이스북이 국내 이용자에게 사전 고지 없이 해외망으로 우회해서 피해를 유발했으므로 행정처분한 것"이라며 "이처럼 명확하고 분명한 이용자 차별 행위와 이용자 민원도 있었고 기술적인 검증도 했다"며 당황해 했다.
이어 "국내 사업자와 해외 사업자에 대한 규제는 동일해야한다고 생각한다"며 "글로벌 사업자의 이용자 차별이 있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페이스북은 이번 선고에 대해 환영했다. 페이스북코리아는 공식 입장을 통해 "서울행정법원의 결정을 환영한다"며 "페이스북은 한국 이용자 보호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 법원 결정 영향은…
이번 1심에서 페이스북이 승소하면서 국내 통신사와의 망 이용료 협상, 국내 콘텐츠 사업자(CP) 역차별 문제, 페이스북·구글·넷플릭스 등 미국산 CP의 활개에 대응하는 각국 정부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예를 들어 2016년 기준 734억원 가량의 망 이용료를 지불한 네이버와는 달리 페이스북은 연간 150억원의 망 이용료를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카카오와 아프리카TV도 각각 300억원, 150억원 정도의 망 이용료를 지불했으나 구글과 넷플릭스의 망사용료는 사실상 제로 수준으로 전해지는 등 '무임승차'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국내 통신 사업자와의 망 이용료 협상 과정에서 이용자 충성도를 내세우는 글로벌 CP가 '파워 게임'에 나서 이용자 피해가 재발할 경우 대책이 없을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이번 1심 판결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이용자 피해가 법적으로 인정이 안 된 결과이므로 논란이 있을 것 같다"며 "글로벌 사업자가 국내에서 파워 게임을 시도하면 법적으로 규제를 못하게 된 셈"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