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은 서비스나 사업보다 가상화폐나 기술로 대중에게 먼저 다가왔다. 그래서 '블록체인은 어렵다, 투기다' 등의 편견이 생겼다. 가상화폐 투자 열기가 다소 식은 현시점이 블록체인을 서비스와 사업의 모습으로 다시 짚어봐야 할 시기다. 기술은 현실에서 사용자들이 서비스로 사용하고 기업들이 적용해야 빛을 볼 수 있다. 현재 블록체인을 서비스하고 사업화하는 기업들의 면면을 살펴봤다. [편집자]
미국 경제지 포브스(Forbes)는 올해 4월 블록체인 확산을 리딩하는 글로벌 50대 기업에 삼성SDS를 선정했다. 국내 기업 중 유일하다.
삼성SDS의 블록체인 전략이 통한 것이다. 삼성SDS는 기업 비즈니스를 위한 IT 인프라 및 서비스를 개발·운영하는 IT서비스 기업이다. 블록체인은 데이터를 저장하고 공유하는 기술로 기업의 비즈니스 혁신을 가능케 한다. 삼성SDS는 자사의 강점 사업에 블록체인을 적용해 시너지를 냈다.
이지환 삼성SDS 블록체인센터 기획팀장을 만나 삼성SDS의 블록체인 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얘기를 들어봤다.
삼성SDS는 2015년 하반기 블록체인을 처음 접했다. 당시 비트코인이 막 알려지던 때로 하이퍼레저 패브릭 오픈소스가 등장하기 전 이었다. 암호화폐와 토큰이코노미 등이 주목을 받던 시기였지만 삼성SDS는 초창기부터 블록체인을 엔터프라이즈(기업용)로 접근했다. 시류에 휩쓸리기보다는 자사의 강점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바로 삼성SDS가 블록체인 분야에서 빠르게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비결이다.
국내외 110개사가 삼성SDS의 블록체인 플랫폼을 이용하고 있으며 삼성SDS는 국내외 51건의 블록체인 특허를 출원했다.
-삼성SDS는 처음에 블록체인을 어떻게 접근했나
▲2015년에 블록체인을 처음 연구하기 시작했다. 블록체인이 혁신적인 아이템이었지만 당시엔 암호화폐 거래가 주목받았다. 하지만 우리는 블록체인이 기업의 업무 혁신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기술로 봤다. 기업에서는 성능 개선이나 보안 강화, 운영 및 관리 모니터링 등이 필요한데 당시 블록체인 기술은 이런 부분이 많이 부족했다. 삼성SDS는 기업에 필요한 블록체인으로 기술 개발하기로 결정하고 2016년 개발 조직을 세팅했다. 이후 1년 만인 2017년 블록체인 플랫폼 '넥스레저'를 발표했다.
-삼성SDS가 블록체인 분야에서 빠르게 선도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삼성SDS는 당시 주목받던 기술이나 트렌드를 따르는 '팔로어(follower)'보다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시작했다. 삼성SDS 내부에서 바라보는 미래 엔터프라이즈에 블록체인이 어떻게 필요한지를 고민했다. 이에 코어 기술도 자체적으로 확보하고 사업 경험 역량을 쌓으면서 방향성을 잡았다. 초반부터 엔터프라이즈 블록체인 한 방향으로만 지속해왔기 때문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다.
-중점적으로 보는 분야는 어디인가
▲금융, 제조, 물류, 이 세 가지 영역을 집중적으로 보고 있다. 현재 각 산업분야는 통합 트랜스포메이션이 진행되고 있는데 여기서 블록체인의 또다른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본다. 삼성SDS는 매출 절반 가량이 IT서비스뿐 아니라 물류 분야다. 물류는 여러 다양한 참여자들이 존재하고 정보 공유와 자동화, 신뢰성이 중요한 분야다. 블록체인을 적용하기 적합한 영역이다.
삼성SDS는 지난 4월 기업 환경에 최적화된 블록체인 '넥스레저(Nexledger) 유니버설'를 출시했다. 넥스레저 유니버설은 △삼성SDS의 독자적인 합의 알고리즘이 적용된 블록체인 코어 '넥스레저 N', △하이퍼레저 패브릭 기반 블록체인 코어 '넥스레저 H', △이더리움 기반 블록체인 코어 '넥스레저 E'가 포함됐다.
-넥스레저 플랫폼은 무엇인가
▲넥스레저는 기업의 여러 니즈를 해결하기 위한 기업용 블록체인 플랫폼이다. 기업들은 블록체인을 활용하고 싶어도 어디서 다운로드하고 어떤 합의 알고리즘을 적용해야하는지, 어떤 환경에서 개발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어려움을 겪는다. 적절한 툴도 없었다. 넥스레저는 실제 기업의 서버나 클라우드 위에서 돌아갈 수 있도록 했으며 그 위에 코어 엔진을 돌리고 그 위에 다양한 앱을 개발할 수 있도록 했다.
-넥스레저 유니버설에 여러 코어를 적용한 이유는
▲이더리움이나 하이퍼레저 패브릭 등 각각의 분산합의 기술은 특징과 장단점이 다르다. 인증, 결제, 문서진위 여부 확인, 유통경로 추적 등 각 적용사례에 따라 가장 적합한 코어들도 다르다. 여러 분산합의 알고리즘을 개별적으로 개발해 사용하기보다는 하나의 플랫폼 내에서 여러 코어를 기능에 따라 번갈아 사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넥스레저 유니버설에는 넥스레저 N, H, E 코어가 포함돼 업무에 따라 가장 적합한 합의 알고리즘 사용이 가능하다.
삼성SDS의 매출 절반 가량은 물류BPO 사업이다. 물류 솔루션에 블록체인을 적용해 한국과 중국간 항공화물 무역 정보 공유 사업을 진행하고 네덜란드 로테르담 항만청, ABN·AMRO 은행과 '딜리버' 플랫폼을 공동 개발하기도 했다.
-물류 분야에 블록체인을 적용하면 어떠한 장점이 있나
▲물류 프로세스에는 많은 기업과 기관이 참여한다. 세관, 항만, 공항은 물론이고 선사, 항공사, 그리고 수출입업자가 있다. 해상보험, 적하보험 등 물류 관련 보험사들이 있고, 무역 대출을 포함한 금융 등 은행도 관련된다. 많은 기업 및 기관이 참여하지만 기존 물류 프로세스에는 수작업이 많고 정보를 실시간 추적 및 공유하기 어려웠다. 수출입업자는 물류의 현재 위치와 상황 등 정보를 받기 어렵고 금융회사는 거래 정보 위변조에 대한 신뢰 문제가 있었고 세관에서도 서류 수작업에 의존했다. 블록체인은 이점들을 해결한다. 서류 작업의 자동화, 물류의 실시간 추적 및 관리, 신뢰성 확보 등이 가능해진다.
-물류분야에서의 삼성SDS 차별점은 무엇인가
▲삼성SDS는 물류BPO 기업이다. 물류업에 대한 노하우가 있다. 실제로 어떤 정보가 공유돼야 하는지를 알고 고객사의 페인포인트(pain point)를 잘 알고 있다. 이미 해외 물류 블록체인 '딜리버'를 보유하고 있다. 삼성SDS는 업무노하우, 기술노하우, 실제 제품이 있다는 점이 차별점이다.
블록체인을 고민하는 기업들의 가장 큰 숙제는 '왜 블록체인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다. 삼성SDS도 마찬가지다. '왜 블록체인인가'에 대한 고객사의 질문에 답을 찾고 해결하는 것이 삼성SDS의 가장 큰 과제이자 어려운 점이다.
블록체인의 강점이 위변조가 없어 보안이 강하고 신뢰가 높다는 점, 스마트컨트랙트 등으로 자동화가 가능하다는 점은 익히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는 굳이 블록체인이 아니더라도 가능하다. 이 팀장은 적용 사례마다 적합한 다른 답변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블록체인 사업화에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이제 블록체인을 시범적으로 한번씩 적용해보는 시기는 지났다. 결국엔 고객사가 실제로 원하는 부분을 바로 해결하고 업무에 적용하고, 비즈니스 혁신에 도움이 되는 실제 사례를 찾아야 하는 시기다. 이는 블록체인의 문제가 아닌 삼성SDS 업의 본질이기도 하다.
-왜 블록체인인가
▲사례마다 다르다. 블록체인은 기본적으로 서로간의 거래, 즉 트랜잭션을 믿을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기업의 페인포인트를 해결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인증서비스의 경우 기존 인증은 중앙 기관 발급에만 의존했지만 삼성SDS 블록체인 기반의 '뱅크사인'은 은행들이 서로 발급하고 서로 인증하는 방식이다. 이 부분이 신뢰 네트워크 구조다. 이와 같이 업무 프로세스 개선, 법적 컴플라이언스 이슈 해결 등의 구체적인 답변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고객사와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고 그들의 어려운 점을 찾아 해결하는 것이 '왜 블록체인인가'에 대한 답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