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 미디어 시장 환경에 따라 잇따라 추진되고 있는 유료방송업계의 인수·합병(M&A)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방송통신위원회·공정거래위원회 등 관련 정부 부처의 꼼꼼한 심사와 맞물려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이번 유료방송업계의 대규모 M&A는 시장을 재편하는 수준의 중대한 사안인 만큼 정부의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로 인해 해당 기업들은 기존에 계획한 M&A 일정을 연기하고 연말·연초 단행하는 조직개편과 맞물린 경영계획 수립에도 차질을 빚고 있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오는 6일 전원회의를 열고 SK브로드밴드(SK텔레콤 자회사)와 티브로드 합병, LG유플러스의 CJ헬로 지분(50%+1주) 인수 관련 안건을 심사할 전망이다.
업계는 두 건 모두 조건부 승인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관련 절차가 느려지고 복잡해지고 있는 상황은 해당 기업들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공정위는 지난달 열린 전원회의에서 LG유플러스-CJ헬로 건을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는 것은 연기했다.
SK브로드밴드-티브로드 건에 교차 판매 금지 조항이 있는 것이 LG유플러스-CJ헬로와 비교해 불리하다는 의견을 반영해 두 건을 함께 논의한다는 관측이다.
방통위, LG유플러스-CJ헬로 인수 건에 의견 전달
이런 가운데 방통위도 국정감사 지적을 반영해 LG유플러스의 CJ헬로 지분 인수 건에 '사전 동의'에 준하는 의견서 전달 절차를 진행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합병에 해당하는 SK텔레콤-티브로드 건은 방통위의 사전동의를 받아야 하지만 LG유플러스-CJ헬로 건은 합병이 아닌 지분 인수이기 때문에 방통위의 사전동의를 받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방통위는 LG유플러스의 CJ헬로 지분 인수는 SK브로드밴드-티브로드 합병과 유사한 효과를 낸다고 판단해 방통위 의견을 전달했다.
유료방송업계의 M&A 절차가 점점 복잡해지고 지연되면서 SK브로드밴드-티브로드의 합병 기일은 당초 내년 1월1일에서 3월 1일로 2개월 연기됐다. 양사는 합병법인을 내년 1분기 내 출범한다는 계획이지만 그동안 상황을 고려하면 시점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일정 연기에 불확실한 경영 환경 지속
이같은 일정 연기는 기업들에게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예를 들어 A사와 B사가 M&A 이후 회사를 새로 설립하게 되면 각사에서 임직원을 신규회사로 보내는 인사를 단행해야 하고 이는 기존 회사 조직개편과도 맞물리게 된다.
즉, 언제 정부의 결론이 나올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회사도 임직원도 무기한 대기 상태에 있어야 하는 셈이다. 인력의 적재적소 배치가 연기돼 내년 경영 계획을 수립하는 데도 차질이 생긴다.
통신사 고위 관계자는 "M&A 일정이 연기되면서 통상 연말에 진행하는 조직개편은 물론 M&A 이후 새로 만드는 회사에 각사가 임원을 임명·파견하는 일도 줄줄이 미뤄지게 생겼다"며 "이는 기업 차원이나 임직원 입장에서도 불확실한 상황이 지속되므로 상당히 심각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기업 내부 사정만의 문제는 아니다. 통신 및 미디어 시장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응이 늦어지는 것은 이미 당면한 문제다.
넷플릭스, 유튜브 등 글로벌 미디어 사업자들의 국내 시장 잠식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 국내 유료방송시장에서 대규모 M&A가 벌어지고 있는 배경 중 하나도 국내 기업끼리 뭉쳐 '규모의 경제'로 대응할 필요성이 제기되면서다. 넷플릭스, 유튜브뿐 아니라 디즈니, 애플의 OTT도 등장하고 있어 향후 미디어 시장에는 더 치열한 경쟁이 예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