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노동 집약적 산업이었던 콜센터가 변하고 있다. 변화의 중심에는 무서운 신입직원, 인공지능(AI) 상담사가 있다. 이 신입 상담사는 단순하고 반복되는 업무를 처리해 대기 시간을 줄이고, 선배인 인간 상담사가 고객을 전문적으로 응대하도록 돕는다. 과거에는 눈치가 없고 답답하다는 평가를 들었지만 이제는 곧잘 상대방의 감정을 파악하고 의도를 알아차린다.
기업이 고객을 응대하는 주된 수단은 전화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콜센터였다. AI컨택센터(AICC)는 기존의 콜센터에 SNS를 비롯한 소통 채널을 추가하고 챗봇과 보이스봇을 비롯한 AI 솔루션을 도입해 상담업무의 생산성을 높였다. 국내 컨택센터 시장 규모는 약 13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며 인건비 절감을 위해 'AI컨택센터(이하 AICC)'의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다.
콜센터의 변신
AICC는 대규모 콜센터를 운영해왔던 금융권이나 통신사, 전화상담 수요가 높은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도입됐다. 특히 금융권은 24시간 상담이 가능하고, 단순히 민원을 처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분석 데이터를 창출할 수 있는 AICC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금융거래가 하루종일 이뤄지는 데다 보이스피싱이 낮과 밤을 가려 이뤄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비대면으로 고객을 응대하는 업무가 늘어나자 다른 업종도 AICC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기존 AICC 사업은 주로 온프레미스(구축형)를 위주로 전개됐는데, 이 경우 통신 장비, 서버, 네트워크, 상담 애플리케이션까지 다양한 인프라와 시스템을 필요로 했다. 수억원에 달하는 초기 구축 비용도 부담스러워 AICC는 일부 대기업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다.
KT, LG CNS, 네이버클라우드를 비롯한 ICT(정보통신기술) 기업이 중견·중소기업 공략을 위해 눈을 뜬 것도 이 때쯤이다. 이 회사들은 클라우드 기반 AI컨택센터인 CCaaS(서비스형 컨택센터)를 출시하고 있다. CCaaS는 기존 AICC에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을 더한 개념으로, 구독료를 내면 별도로 서버와 장비를 구축하지 않고도 AICC를 이용할 수 있다. 초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원하는 기간 동안 필요한 만큼 이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IT기업·통신사 모두 뛰어들어
네이버클라우드는 '클로바AI콜' 솔루션을 중심으로 CCaaS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네이버클라우드는 영어, 일본어, 중국어, 태국어, 인도네시아어 등 상품별로 다양한 언어를 지원하며 아시아·태평양 지역 공략에 나섰다. 네이버와 함께 양대 빅테크 기업으로 꼽히는 카카오 또한 카카오엔터프라이즈를 통해 AICC 사업을 전개하고 있으며 CCaaS 서비스도 준비 중이다.
LG CNS도 지난해 말 CCaaS 사업을 본격화했다. LG CNS는 AICC 성장 가능성을 미리 예측하고, 수년전부터 미래형 컨택센터(FCC) 사업조직을 구성해 기술과 인력을 확보했다는 설명이다. LG CNS는 AICC 구축에 통신 인프라가 중요한 만큼 그룹 계열사인 LG유플러스와도 손을 잡았다.
통신사에게도 AICC는 기회의 땅이다. AICC에 필요한 통신 기술을 확보하고 있을 뿐 아니라 대부분 고객센터를 통해 확보한 다양한 음성 데이터가 있다. AI와 클라우드 기술 또한 통신사가 비통신 분야에서 집중하고 있는 분야다.
대표적으로 KT는 국내 최대 규모의 고객센터를 운영한 경험을 살려 AICC 산업에 뛰어들었다. 지금까지 은행, 증권사 등 금융권을 중심으로 30여개 기업 대상 AICC를 구축해왔다. 최근에는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콜 인프라부터 상담 앱, AI 솔루션을 모두 제공하는 구독형 AICC인 CCaaS를 출시해 중견·중소기업까지 고객을 넓혔다.
SK텔레콤은 AI 상담시간을 줄이려고 미국의 음성기술기업인 핀드롭과 손을 잡았다. 이용자 고유의 음성을 판별해 번거로운 인증절차 없이 본인임을 확인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음성인식의 정확도는 98% 달한다.
초거대AI로 더 자연스럽게
과거 챗봇은 정해진 질문에 딱딱한 답변을 내놓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AI기술이 발전하면서 점차 간단한 상담은 직접 처리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실제 사람처럼 맥락을 파악하거나 유연한 대답을 내놓기도 한다.
대화형AI '챗GPT'가 등장하면서 AICC는 더 고도화될 것으로 보인다. AICC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은 더 높은 품질의 상담을 제공하기 위해 초거대AI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LG CNS는 엑사원, 네이버는 하이퍼클로바를, KT는 믿음(MIDEUM)을 AICC사업에 적용했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지금보다 더 자연스럽고 전문적인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게 될 전망이다.
초거대AI가 적용된 AICC는 인간을 얼마나 대체할 수 있을까. 이경전 경희대 경영학·빅데이터응용학과 교수는 "컨택센터는 단순히 상담만 하는 게 아니라 업무 처리를 하는 곳이니만큼, 기존 인간 상담사와 AI가 같이 가게 될 것"이라며 "순수한 상담뿐이라면 완전한 자동화의 길이 열렸다고 볼 수 있고, 미션 크리티컬(높은 수준의 안전성이 요구되는 핵심 업무)하지 않은 분야부터 해나가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