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기업인 디즈니플러스가 최근 공개한 드라마 '무빙'의 제작비는 500억원에 달한다. 한국의 웬만한 블록버스터급 영화 제작비를 웃도는 금액이다. 막대한 자금의 투입으로 화려한 액션과 컴퓨터 그래픽(CG)이 가능해지면서 시청자들의 눈높이도 높아졌다. 여기에 각종 규제와 역차별 문제로 국내 미디어 산업은 변화의 회오리바람 앞에 놓이게 됐다.
그렇다면 해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이제 우리나라 미디어 산업도 '뉴노멀'을 고민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글로벌 OTT와의 격차를 과감히 인정하되 글로벌, 로컬 등 타깃별 제작도 고려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물론 비용 관리와 양질의 콘텐츠 식별은 기본이다.
'생존 위기'…"다른 연결 지점 찾아야"
이성민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가 4일 주최한 '글로벌 미디어 시장전망 콘퍼런스'에서 "글로벌 OTT의 콘텐츠가 시장의 주류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미디어 산업만의 다른 연결 지점을 어떻게 찾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국내 OTT들의 위기를 인정했다. 그는 "오리지널 콘텐츠 경쟁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투자 규모가 불어나 적자가 확대됐다"며 "여기에 엔데믹 전환으로 이용자 성장이 둔화돼 수익성 기대는 축소됐고 이제는 영업손실의 확대 우려까지 일고 있다"고 했다.
실제 국내 드라마 기준 회당 평균 제작비는 2011년 1억원에 불과했지만 2013년 3억7000만원에서 2020년 7억원, 올해는 10억~12억원으로 급증했다. 글로벌 OTT의 투자 규모 확대에 따른 콘텐츠 경쟁이 독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는 글로벌, 로컬 등 타깃에 따른 제작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일명 버티컬(Vertical, 특정 고객군) 전략이다. 그러면서 "OTT들이 경쟁 기반을 다양화하는 움직임이 포착된다"고 밝혔다.
실제 쿠팡플레이는 아마존프라임의 모델을 참조한 멤버십 기반 서비스로 약진하고 있다. 올해 6월 기준 실사용자수(MAU)가 486만명까지 증가했다. 구독자 확보와 비용구조(쇼핑의 부가 서비스) 측면에서 강점을 극대화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이 회사는 스포츠 경기를 직접 주최하고 중계하는 이벤트를 열거나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중소규모 OTT들의 버티컬 전략 활용 사례도 소개됐다. 아시아 콘텐츠를 다루는 MOA나 애니메이션에 특화한 라프텔, 키즈 콘텐츠와 교육에 주력하는 아이들나라 등이다.
이 교수는 "한국 미디어 산업도 뉴노멀을 고민해야 할 때"라며 "글로벌 시장으로의 연결과 동시에 버티컬 시장으로의 확장을 통해 시장의 파이를 키워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미디어 산업의 속도와 방향 속에서 각 방송 사업자들의 위치와 경쟁력을 고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차원 개입 필요…글로컬 육성도"
전문가들은 국내 미디어 산업의 특성을 고려한 정책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했다.
곽동균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연구위원은 이어진 토론에서 "국내 미디어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개입을 통한 플랫폼 경쟁력 보완이 시급하다"며 "미디어 국경의 소멸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최대한 유리하게 활용하는 게 관련 업계를 포함한 우리사회의 과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성욱 한국외대 교수는 "(유료) 방송산업의 탈규제를 통한 공정경쟁 체제를 마련하고 제작·투자와 관련한 세제혜택을 주는 등 정부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며 "국내에서 생산된 영상상품을 글로벌 시장에 직접 유통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글로컬(글로벌+로컬) 플랫폼을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개진됐다. 김정환 국립부경대 휴면ICT융합전공 교수는 "로컬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글로벌 플랫폼 육성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단순히 국내 콘텐츠만 유통하고 전달하는 플랫폼이 아니라 글로벌 유통 역량을 가질 수 있는 플랫폼을 육성할 수 있도록 장기적 관점에서의 고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생성형 AI 시대에 대비해 양질의 데이터를 확보할 필요도 있다는 평가다. 이지은 법무법인 세종 연구원은 "콘텐츠 창작에 이르기까지 AI 적용 범위가 크게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용자 데이터뿐 아니라 콘텐츠 창작의 기반이 될 수 있는 기초 데이터 확보 당위성이 강조될 것"이라며 "적절한 콘텐츠를 제공하는데 활용될 수 있는 핵심 자원으로서 양질의 데이터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