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 제약사에 기술이전한 약물의 개발이 지연되면서 종근당, 한올바이오파마 등 국내 제약바이오기업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전체 계약금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마일스톤(단계별 기술료) 지급시점이 늦춰지고, 향후 상업화 시 약물이 시장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특허기간이 그만큼 단축될 수 있어서다.
개발은 언제쯤
16일 업계에 따르면 종근당이 지난 2023년 11월 노바티스에 이전한 신약후보물질 'CKD-510'은 아직 임상시험에 들어가지 못했다. 어떠한 질병을 타깃으로 약물을 개발할지 방향성도 정해지지 않았다. 노바티스 측은 여전히 약물의 잠재력을 탐구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시장의 눈높이도 낮아지고 있다. 지난 2월 미래에셋증권, 키움증권 등 주요 증권사들은 종근당의 목표주가를 일제히 하향 조정했다. 실제 이달 15일 종가 기준 종근당의 주가는 7만7300원으로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한 2023년 11월 6일 대비 39.6% 하락한 수준이다.
대웅제약의 자회사인 한올바이오파마는 지난달 중국계 파트너사인 하버바이오메드에 기술이전 계약 해지의사를 통보했다. 한올바이오파마는 2017년에 '바토클리맙'의 중화권 권리를 하버바이오메드에 이전한 바 있다.
한올바이오파마가 계약을 해지하기로 한 이유는 중국에서 바토클리맙의 적응증(치료범위)를 확대하기 위한 임상시험이 장기간 진척되지 않으면서다.
하버바이오메드는 중증 근무력증을 치료목적으로 한 바토클리맙의 임상 3상 시험을 마치고 중국 내 허가절차를 밟고 있다. 하지만 갑상선안병증, 시신경척수염 등 다른 질병에 대한 임상시험은 1~2상 단계에서 멈춘 상태다. 양사는 계약에 따라 미국 국제상업회의소(ICC)에서 중재 절차를 밟고 있다.
늦어지는 이유는
해외에 이전한 약물의 개발이 지연되는 이유는 다양하다. 이 중 하나는 파트너사의 내부전략 변화로 인해 국내 기업의 약물이 개발 후순위로 밀려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개발에 발도 못 떼고 약물이 반환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노벨티노빌리티는 지난 2월 미국의 엑세러린에 기술이전한 후보물질 'NN2802'를 반환받았다. 2023년에 총 계약금 7억3325만달러(1조400억원)에 이전한 지 2년여만이다. 엑세서린이 다른 바이오기업과 합병과정에서 개발 중인 파이프라인을 전면 재검토하면서다.
막상 개발해보니 도입 당시에 기대했던 것보다 약물의 효과가 미미하게 나타나며 개발을 포기한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결정은 대부분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거나 끝난 이후 이뤄진다.
경쟁사 약물의 시장 진출을 고의로 막기 위해 도입만 하고 개발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를 '킬러 인수'라고 부른다. 콜린 커닝햄 미국 유타 경영대학 교수 등은 1989년부터 2011년까지 진행된 신약후보물질 인수거래를 분석한 논문을 2018년 발간했다. 여기서 연구진은 전체 신약 인수거래 중 약 6%가 킬러 인수에 해당하는 것으로 확인했다.
생각보다 큰 손해
문제는 국내 제약바이오업계 입장에서는 기술이전한 약물의 개발이 지연될수록 부담해야 하는 기회비용이 커진다는 것이다.
당장 마일스톤(단계적 기술료) 지급시기가 늦춰질 수 있다. 원개발사는 약물의 개발이 진행됨에 따라 파트너사로부터 마일스톤을 받는다. 종근당이 2023년 노바티스와 맺은 계약에서 마일스톤은 전체 계약금의 95%를 차지한다.
약물이 향후 허가를 받은 후 시장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특허기간이 약물개발이 지연된 만큼 줄어들 위험도 있다. 약물의 상업적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가운데 신속한 판단과 결정으로 또 다른 기회를 만들어 낸 곳도 있다.
유한양행은 지난 2016년 중국 뤄신바이오테크놀로지에 렉라자의 중화권 권리를 이전한 계약을 4개월 만에 파기했다. 뤄신이 최종 계약합의를 미루면서다. 유한양행은 2년 후 얀센바이오텍에 렉라자의 중국을 비롯한 글로벌 권리를 이전했다. 계약규모는 12억500만달러(1조7000억원)로 뤄신과 맺은 계약(1억2000만달러)의 10배 넘는 규모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기술이전한 약물개발이 지연되면 기회비용 등을 고려해 내부적으로 계약해지와 같은 옵션을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온다"며 "오히려 다른 파트너사를 찾는 것이 전략적으로 유리한 결정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