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제약산업은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이 주도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혁신적인 신약이 있다. 미국의 존슨앤드존슨(J&J)은 연매출이 각각 16조원과 14조원에 달하는 다발성골수종 치료제 '다잘렉스'와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스텔라라' 등 신약을 등에 업고 지난해 매출액 888억 달러(127조원)을 기록, 글로벌 제약기업 1위를 차지했다.
글로벌 제약사에는 아직 한참 못 미치지만 국내에서도 연매출 100억원에서 이제는 1000억원을 넘는 국산 신약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여기서 나아가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는 오는 2030년 글로벌 매출 1조원 달성이 가능한 블록버스터 신약 5개를 개발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신약은 반도체와 배터리의 뒤를 이어 미래 경제 성장을 이끌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꼽힌다. 지난 21일 이관순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미래비전위원장을 만나 우리나라의 신약개발 현주소와 신약 개발 선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정부와 업계의 역할에 대해 들어봤다. 이 위원장은 한미약품에서 1984년부터 2023년까지 신약 개발을 주도하다 현재는 글로벌 신약 개발 및 라이센싱 전략 종합 컨설팅 회사 지아이디(GID)파트너스 대표를 맡고 있다. 중국 제약산업 성장에 주목
이 위원장은 최근 중국 제약산업의 성장에 주목했다. 그는 "중국 바이오텍 기업들은 미국이나 유럽의 전문인력을 대거 채용하는 등 제약바이오 산업이 서구화돼 가고 있다"면서 "중국의 대표적인 신약 개발 전문 제약바이오 회사인 베이진(Beigene)과 헹루이 파마슈티컬스(Hengrui Pharmaceuticals)의 사례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베이진은 2010년 설립된 항암제 신약 개발 바이오텍으로 2019~2023년까지 5년간 매출 55억5000만 달러(8조원) 중 68억6000만 달러(10조원/ 연간 2조원)를 연구개발(R&D)에 투자했다. 전폭적인 R&D 투자로 3개의 글로벌 신약을 개발하는데 성공했고 글로벌 항암제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대표 품목인 항암제 브루킨사 연매출액은 13억 달러(2조원)으로 전체 매출의 약 60%를 차지하고 있다.
헹루이는 1970년에 설립돼 약 40년동안 제네릭(복제의약품)을 전문으로 하다 2008년 신약개발 전문기업으로 사업전략을 바꿨다. 헹루이는 2023년 기준 매출액 대비 27%를 R&D에 투자했으며 같은 해 5건의 라이선스 아웃을 성사시켰다. 총 계약규모만 40억 달러(6조원)에 달한다. 현재 개발 중인 신약 파이프라인도 147개로 글로벌 기준 8번째로 많이 보유하고 있다.
이 위원장은 "국내 5대 상위 제약사의 연간 평균 R&D 투자 규모는 약 2000억원 수준이지만 베이진 단일 기업의 R&D 투자 규모가 10배 높고 글로벌 상위 5대 제약사 평균 R&D 투자규모(22조원)와 비교하면 110배나 차이난다"면서 "글로벌 제약시장에서 중국이 우리나라를 추월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신약 개발 역량은 긍정적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위원장은 우리나라의 신약 개발 역량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국산 신약은 총 39개로 매년 1~2개 품목이 허가를 받고 있고 글로벌 라이센싱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위원장은 "국산 신약 중 24개 품목의 생산금액이 약 6800억원으로 국내 시장의 약 2% 수준을 차지하고 있다"면서 "삼성바이오에피스, 셀트리온 중심으로 거대 바이오시밀러 품목들도 미국과 유럽에서 허가를 획득하면서 일부는 블록버스터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또 "최근 항체약물접합체(ADC), 세포유전자치료제(CGT), 메신저리보핵산(mRNA), 방사성의약품(RPT) 등이 새로운 신약 모달리티로 부상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의 신규 모달리티 분야 위탁개발생산(CDMO) 역량은 글로벌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삼성, LG, SK 등 기존에 제약바이오 사업에 진출한 기업들 외에도 롯데, HD현대, CJ, 오리온 등 대기업들이 신규로 제약바이오 사업에 뛰어들면서 주요 산업으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드러냈다.
정부 주도 신약개발 생태계 구축 강조
특히 신약 개발 선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정부 주도로 신약 개발 혁신성장 생태계가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국가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신약개발을 집중 육성하기 위해서는 국가바이오위원회가 신약개발 아젠다를 상설운영하고 실행기구를 마련해야 한다"면서 "국가 차원의 블록버스터급 신약개발 과제를 확보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개발하기 위한 가능한 모든 자원이 투입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오픈이노베이션 활성화를 위해 각 주체들이 어느 단계에서 가치 창출을 극대화할 수 있는지 고민해 신약 개발 속도를 높이고 한정된 자원을 집중 투입해 신약 개발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며 "학연, 바이오텍, 국내 제약사, 글로벌 제약사로 이어질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확립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제약바이오 산업계는 신약 개발 선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2030년 매출의 15% 이상을 신약 R&D에 투자하고 매출 1조원 이상을 낼 수 있는 블록버스터 신약 5개를 창출함으로써 신약개발 선도국으로 진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위원장은 "중국은 R&D 투자에 대한 세금 혜택과 신속 허가 심사를 통해 1년에 50~60개에 달하는 국내외 신약들의 허가가 이뤄지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도 글로벌 진출 신약에 이중가격제 도입, 약가인하 적립제 등을 통해 신약의 혁신 가치를 반영해주고 정부의 모태펀드, 국가 신약개발 지원금을 적극 투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