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최근 5년간 다발적으로 이뤄진 약가인하로 막대한 손실을 감당하고 있다. 급여의약품 100개 중 78개 꼴로 약가가 인하됐고 업계 손실은 7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제약바이오 업계는 무차별적인 약가인하로 수익성이 저하되면서 신약 연구개발(R&D)을 위한 선순환 구조가 흔들리고 있다고 호소한다.
7일 비즈워치가 지난 2019년부터 올해까지 최근 5년간 실거래가, 사용량 약가연동, 기등재 약가재평가 등을 분석한 결과 총 1만6250개 품목에 대한 약가인하가 이뤄진 것으로 집계됐다. 통계청이 집계한 지난 2022년 기준 급여의약품은 총 2만912개로, 5년간 무려 77.7%에 달하는 품목들의 약가가 인하된 셈이다.
'실거래가 조사 약제 상한금액 조정(실거래가 약가인하)'으로 2020년과 2022년 각각 3924개, 3829개 품목의 약가가 인하됐다. 이를 통해 보건당국은 2020년 809억원, 2022년 796억원 등 약 1600억원의 건강보험을 절감했다. 반대로 보면 이는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손실액을 의미한다.
실거래가 약가인하는 2년 주기로 시행된다. 시장의 실제 거래가격을 약가에 반영해 약가 적정성 및 의약품 접근성을 확보하기 위한 약가사후관리 제도로, 병·의원과 약국 등 요양기관이 의약품을 구입한 실제 거래가격으로 약가를 조정한다.
사용량 약가연동제는 약제비 적정화를 위해 2006년에 도입된 제도로, 의약품 등재 후 전년 대비 청구액 사용량 증가에 따라 '가, 나, 다' 유형별로 약가를 조정한다. 쉽게 말해 판매량이 늘어난 만큼 약가가 낮아진다.
유형별 약가 조정기준은 유형 '가'는 협상된 예상청구액 30% 이상 증가했을 때 해당된다. 유형 '나'는 유형 '가' 협상에 상한금액이 조정된 제품이 전년도 청구금액보다 '60%이상 증가' 또는 '10% 이상 증가하고 50억원 이상 증가'한 경우다. 유형 '다'는 유형 '가, 나'에 해당하지 않고 동일제품군의 전년도 청구금액 대비 '60% 이상 증가' 또는 '10% 이상 증가하고 50억원 이상 증가'한 품목이 대상이다. 유형별로 각기 다른 산식으로 약가인하가 이뤄지는데 가장 많은 품목과 금액의 약가인하가 이뤄지는 유형은 '다'다.
사용량 약가연동 제도를 통해 △2019년 116개 품목 345억원 △2020년 227개 품목 591억원 △2021년 148개 품목 403억원 △2022년(1~8월까지) 197개 품목 655억원 △2023년(유형 '가,나' 제외) 134개 품목 281억원 등의 약가인하가 이뤄졌다. 제약기업 손실액은 약 2300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집계되지 않은 2022년 9~12월분과 2023년 '유형 가, 나'까지 포함할 경우 손실액은 더 클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올해는 지난 5일부터 '기등재 의약품 상한금액 1차 재평가(약가 재평가)'로 대규모 약가인하가 이뤄졌다. 약가인하 대상 품목은 무려 7675개이며 기업 손실액은 2978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번 약가 재평가는 지난 2018년 고혈압 의약품의 불순물 검출을 계기로 2020년 7월 약가제도 개편에 따라 시행된 제도다. 약제 가격은 △자체 생물학적동등성시험자료 또는 임상시험 수행 입증자료 제출 △등록된 원료의약품 사용 입증서류 제출 등 2개의 기준요건 충족에 따라 약가인하가 이뤄졌다. 2개 요건을 모두 충족할 경우 기준 가격을 유지하고 1개 충족 시 기준 약가의 85%, 모두 충족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기준 약가의 72.25%로 약가가 조정됐다.
이처럼 최근 5년 간 실거래가, 사용량 약가연동제, 기등재 약가재평가 등 잇따른 약가인하 조치로 제약업계가 입을 손실은 최소 7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과도한 약가인하 제도의 부작용에 대한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대형 제약사는 많이 팔기 위해 그만큼 많은 영업인력을 두고 있는데 현행 약가제도는 많이 팔수록 약가를 깎아내려 기업은 수익성이 악화되고 R&D 투자도 버거워지는 상황"이라며 "뿐만 아니라 다른 약가제도를 들어 같은 품목이 1~2년마다 약가가 인하되는 상황까지 발생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제네릭과 개량신약을 통해 얻은 수익을 신약 R&D에 투자하는 선순환 구조가 무너져 R&D 투자 의지를 저하시킨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약가인하로 수익성이 낮아지면 값싼 인도나 중국산 원료의약품을 사용할 수밖에 없고 결국 품질 저하로 이어질 위험도 있다"면서 "국산 신약과 국산 원료를 사용한 의약품에 대한 약가우대나 약가인하 면제 등의 대안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