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따따, 따~따~따, 따따따.' 영화 '엑시트'의 흥행과 함께 유명해진 'SOS' 모스 부호다. 영화나 드라마의 위급한 상황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스 부호지만, 망망대해 한가운데 놓인 원양선박에게는 육지와 연락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통신 수단이다. 단음과 장음으로 이뤄진 모스 부호로 뱃사람들은 아들이 태어났다든지, 2002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승리했다는 기쁜 소식을 받아보고는 했다.
KT는 서울무선센터를 중심으로 37국소의 원격 해안국을 운영하며 1939년부터 현재까지 84년간 국내에서 유일하게 선박무선통신을 제공하고 있다. 모스 부호를 이용한 선박무선전보는 올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교환원이 직접 육지와 전화를 연결해 주는 전화와 조난수신 서비스는 현재진행형이다. 오대양 육대주를 가리지 않고 먼 바다까지 선박무선통신에 필요한 전파를 쏘아보내는 KT 화성송신소를 지난 20일 찾았다.
30년 베테랑 직원들이 상주하는 화성송신소
서해와 차로 10여분 거리인 경기 화성시 서산면 장외리. 출입통제 문구가 걸린 입구를 지나 양옆으로 느티나무가 늘어선 길을 걸었다. 올해로 지은 지 25년이 된 KT 화성송신소의 낡은 건물이 방문객을 맞이했다. 부지 넓이만 5만평에 달하는 화성송신소에는 건물을 둘러싼 철조망 너머로 30m 높이의 철탑과 생선가시를 닮은 안테나, 태양광 패널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에는 '피쉬본(fish-bone) 안테나'로도 불리는 거대한 단파용 LP(대수 주기)안테나 33기가 구축돼 있다. 단파는 3~30메가헤르츠(MHz) 대역을 이용하는 전파 종류로,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대기권의 공기 이온층인 전리층을 통과하지 못해 지표면과 전리층 사이를 오가며 반사되면서 멀리까지 나아간다.
단파는 선박무선통신처럼 지구 반대편까지 닿는 무선 통신서비스를 지원하기에 제격인 전파다. 주파수대역과 안테나의 크기는 반비례하는데, 단파 중에서도 가장 낮은 주파수를 사용하다 보니 거대한 안테나를 쓰게 됐다는 것이 김기평 KT 서울무선센터장의 설명이다.
화성송신소는 단순히 전파를 쏘아보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선박에 설치된 조난통신용 무선설비인 DSC(디지털선택호출장치)를 모니터링하고 운영에 필요한 전력은 충분한지 확인해야 하다 보니 자리를 비울 수가 없다. 화성송신소뿐만 아니라 전국의 해안국에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지 출동해야 하는 다른 서울무선센터 직원들도 마찬가지라 명절에도, 공휴일에도 센터를 비울 수가 없어 교대로 사무실을 지킨다.
화성송신소, 도봉무선센터를 포함한 서울무선센터 직원은 20여 명이다. 화성송신소에서는 각각 근속연수만 30여 년을 넘는 베테랑 4명이 근무하고 있다. 인천 부개역에 위치했던 송신소가 1998년 화성으로 옮겨온 이래, 이곳 직원들은 송신소의 시작부터 오랜 기간을 함께하며 뱃사람들의 낮과 밤을 함께해왔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따.따.따
주요 서비스인 선박무선전화는 무선국 교환원이 직접 전화를 연결해 주는 과거 아날로그 시대의 방식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선박에서 육상과 통화를 원할 경우든, 반대든 마찬가지다. 긴급한 상황에서 쓰이는 선박 자동조난수신서비스는 조난 단말장치를 통해 데이터 신호를 송출하면, 선박식별번호 발송위치를 해양경찰청으로 SMS(문자)나 팩스(FAX)로 동시에 전달한다. KT 근무자 또한 조난신호를 수신했다고 해경 상황실 근무자에게 연락한다.
선박무선서비스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선박무선서비스의 '원조' 격으로, 올해 3월부로 종료된 선박무선전보가 그 주인공이다. '115전보'나 팩스로 메시지를 전달하면 모스 부호로 바꿔 먼 바다로 내보내는 서비스였다. 김 센터장은 "기술이 발전하지 못한 과거에는 배가 흔들리면 통화 품질도 덩달아 오르내리다 보니 전달이 어려웠는데, 중간에 놓쳐도 몇 번이나 재송신하는 모스 부호가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더 나았다"고 설명했다.
송신소 내부 장비도 더욱 효율적으로 진화했다. 예를 들어 송신소에서 전파를 쏘아 보내는 단파송신기의 경우 과거에는 진공관식 송신기를 사용했으나 이제는 다수가 철거를 앞두고 있다. 대신 보다 안전하고 전력을 덜 소모하는 반도체식 송신기 위주로 운영하는 방식이다. 화성송신소 내에는 36개의 단파송신기가 있는데 반도체식 송신기를 위주로 20여 대만 운용된다.
위성통신의 발달로 바다 한복판에서도 통화가 가능해진 세상이지만, 선박무선통신 서비스는 가장 생존 가능성이 높은 비상·긴급 통신수단으로써 여전히 유효하다. 과거에 비해 통화량은 많이 줄어들었다고는 해도 2500대의 선박이 여전히 선박무선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선박무선통신은 해양인명안전국제협약(SOLAS)에 따라 국가가 필수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통신이기도 하다. KT 관계자는 "5G와 위성통신처럼 최첨단 통신 서비스를 개발하는 한편으로는, 선박무선통신처럼 수익성이 없어도 사회 질서를 위해 지원하는 보편적 역무도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