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항원에 동시에 결합하는 이중항체 치료제 개발사들이 고형암 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ADC(항체약물접합체)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비결은 단일항체 치료제로 내기 힘든 강력한 '세포 내재화(수용체 억제)' 효과에 있다.
미국계 바이오기업인 재즈파마슈티컬스는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담관암 치료제 '지헤라'의 신속 허가를 받았다. 신속허가는 치료방법이 제한적인 환자들을 위해 임상 2상 시험만으로 의약품의 허가를 받을 수 있는 제도다.
이번에 허가된 약물은 고형암 세포에 주로 발현하는 특정 단백질(HER2)의 서로 다른 두 부위(도메인4, 2)에 결합하는 이중항체다. 표적항암제 두 개를 병용투여하는 효과를 노린 것인데 실제 임상에서는 이보다 우수한 약효를 나타냈다.
담관암 환자에게 지헤라를 투여한 임상 2상에서 암이 일정 부분 이상 사라진 환자 비율(객관적반응률)이 52%로 나타났다. 이와 유사한 임상에서 동일한 표적에 결합하는 단일항체 약물인 '허셉틴'과 '퍼제타' 병용요법은 이보다 낮은 23%의 객관적반응률을 기록했다.
지헤라가 이처럼 강한 약효를 낸 원인으로는 세포 내재화 효과가 지목된다.
허셉틴이나 퍼제타는 암세표 표면에 있는 수용체에 결합해 암세포의 분열과 생존을 돕는 신호전달을 차단한다. 반면 지헤라는 암세포 수용체의 두 결합부위에 동시에 결합해 수용체 구조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세포는 불안정해진 수용체를 내부로 끌어들이고 이를 제거한다. 이를 내재화 효과라고 한다.
재즈파마슈티컬스는 이를 통해 단일항체 치료제의 병용요법보다 뛰어난 약효를 냈으나 경쟁상대는 따로 있다. 바로 아스트라제네카와 다이이찌산쿄가 개발한 연매출 3조원 규모의 ADC 치료제인 '엔허투'다.
이미 약효 측면에서는 재즈파마슈티컬스가 한발 앞섰다.
HER2 단백질을 타깃으로 한 엔허투는 담도암환자 대상 임상에서 객관적 반응률이 45.5%로 지헤라(52%)보다 낮게 나타났다. 또 재즈파마슈티컬스는 ADC의 최대 단점으로 꼽히는 독성문제에 있어 지헤라가 차별화된 강점을 가질 것으로 보고 있다.
재즈파마슈티컬스가 지헤라의 적응증(치료범위)를 넓히며 진검승부를 펼칠 채비에 나선 가운데 국내외 바이오기업들 사이에서는 이중항체가 가진 내재화 효과를 ADC에 접목하는 시도도 나타나고 있다.
이중항체에 링커로 세포독성물질(페이로드)를 붙인 ADC는 단일항체 기반의 약물보다 강한 내재화 효과를 낼 수 있다. 이를 통해 페이로드를 세포내부에 더 정밀하게 전달해 기존 ADC 약물의 약효와 안전성을 동시에 개선할 것으로 기대된다.
중국계 바이오기업인 시스트이뮨은 고형암 세포표면에 발현하는 두 수용체(EGFR, HER3) 단백질에 결합하는 이중항체에 페이로드를 붙인 후보물질 'BL-B01D1'를 개발하고 있다. 임상에서 우수한 약효와 안전성을 확인했고 지난해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MS)에 총 계약금 84억 달러(11조7000억원)에 기술이전했다.
국내에서는 카나프테라퓨틱스가 폐암 세포표면에 주로 발현하는 수용체 두 곳(EGFR, MET)에 결합하는 이중항체 ADC를 개발하고 있다. 최근 GC녹십자와 관련 약물을 공동개발하는 계약을 맺었다. 또 에이비엘바이오가 내재화 효과를 기반으로 약효와 안전성을 개선한 이중항체 ADC를 개발하고 있다.
국내 이중항체 개발사 관계자는 "ADC가 충분한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종양세포 내부에 페이로드를 얼마나 정확하고, 깊숙이 전달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며 "이중항체는 내재화 효과를 통해 이같은 원리로 ADC의 기능을 보완할 수 있는 최적의 모달리티(약물이 약효를 내는 방법)"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