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에 위치한 소규모 신약개발 A기업은 최근 동물실험을 진행할 연구원 모집 공고를 냈다가 깜짝 놀랐다. 공고 나간지 며칠만에 100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렸기 때문이다. 회사 관계자는 "한 명 모집에 이렇게 많은 지원자가 몰릴 줄 예상하지 못했다"면서 "지원자 상당수가 이직 사유를 '경영악화로 인한 퇴사'로 써냈는데, 요즘 어려운 업계 상황을 반영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제약바이오업계에 고용한파가 확산하고 있다. 경영난으로 구조조정에 나선 기업들에서 구직자들이 쏟아져나오고 있지만 업계 전반의 불황으로 충분한 신규 일자리가 공급되지 않고 있다. 처음으로 구직시장에 나온 청년층은 더 좁아진 취업의 문에서 좌절하고 있다.
성과부진에 제약바이오 구조조정 현재진행형
24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인력 구조조정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실적 부진에 대선과 트럼프 미 대통령의 관세전쟁이라는 대내외적인 경제 불확실성까지 더해지면서 기업들의 고민이 더 깊어졌다.
코스닥 상장 바이오기업인 바이오니아, 네오이뮨텍, 아이진, 이원다이애그노믹스 등은 지난해 대대적인 인력 감축을 진행했다. 2024년 사업보고서를 살펴보면 바이오니아는 지난해 임직원이 392명으로 전년 627명 대비 37%가 줄었다. 실적악화로 인한 고강도 구조조정의 결과다. 또다른 코스닥 상장사인 네오이뮨텍은 더딘 신약 개발 성과 탓에 100명의 인력을 52명까지 48% 줄였다.
최대 주주가 바뀐 올리패스와 아이진은 각각 74명에서 39명(-47%), 88명에서 50명(-43%)으로 인력이 줄었고 경영악화로 회생절차를 밟고 있는 이원다이애그노믹스 역시 112명에서 67명으로 40%가량 줄었다. 지니너스(-23.2%), 한국유니온제약(-11.7%), SK바이오사이언스(-6.8%), 제넥신(-4.3%), 지씨셀(-3.9%), 마크로젠(-3.3%), 씨젠(-2.5%) 등 다수의 상장 바이오기업이 인력을 줄였다.
외국계제약사도 한국얀센, 암젠코리아, 한국GSK, 노바티스코리아 등이 지난해 희망퇴직 프로그램(ERP)을 통해 직원들을 내보냈다. 암젠코리아의 경우 지난해 연말 대형품목 프롤리아의 특허 만료에 앞서 선제적인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게다가 비상장 바이오업계에서는 투자 유치나 상장에 실패한 기업들이 폐업이나 생존모드에 돌입하는 대규모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다.
구직자 쏟아져 나오니…"수백대 1 경쟁률도"
구직시장에 인력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일자리는 부족한데 구직자는 많다보니 수십대, 수백대 1의 경쟁률도 낯설지 않다는 설명이다. 한 비상장 바이오기업 관계자는 "대형 제약사나 외국계 기업 출신 등 고스펙 지원자가 상당기간 일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면서 "우수 인력을 확보할 기회지만 회사가 여력이 없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라고 설명했다.
일자리 구하기가 힘들어지면서 청년층 실업률은 계속 상승하고 있다. 올해 1월 6%에서 2월 7%, 3월 7.5%로 3개월 연속 올랐다. 저경력자, 신규취업자가 여기에 해당한다. 특히 구직이나 경제활동을 포기한 비경제활동인구를 말하는 '쉬었음' 인구는 사상 처음으로 청년층에서 50만명(50만4000명)을 돌파했다. 이는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일부 제약기업 대규모 구조조정설에 '흉흉'
올해 역시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업황 부진에 미국 트럼프 대통령발 관세전쟁으로 시장의 불확실성이 더해지고 있어서다. 미국계 기업으로 한국에 진출한 A사는 최근 폭탄을 맞았다.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해 공을 들여왔는데 성사 직전 트럼프의 중국 관세 부과로 사업이 물거품이 된 것이다. 사업 전망이 불투명해지면서 본사부터 인력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실적이 부진한 일부 국내 중대형 제약사 등에서는 희망퇴직, 구조조정을 통한 인력 감축까지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약업계에서는 지난 2023년 GC녹십자, 일동제약, 유유제약 등이 구조조정을 통한 인력감축을 진행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B사는 작년 실적 부진에 따라 200명 이상 감축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면서 "의원급 영업의 영업대행조직(CSO) 체계로 전환, 경비 축소 등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구조조정설이 도는 C사 관계자는 "직원이 퇴직하면 그 대체할 직원을 채용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인력이 줄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각 분야에 업무 압박 강도도 심해졌으며 구조조정 등 흉흉한 소문에 직원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