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식사나 한번 같이 하시죠."
비즈니스로 사람을 만날 때 자주 듣는 소리다. 대부분 인사치레지만 의미는 어쨌든 가깝게 지내고 싶다는 뜻이다. 왜 이런 소리를 할까?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이 이런 말을 했다. "음식은 가장 오래 된 외교 수단이다". 바꿔 말하자면 "음식은 가장 훌륭한 소통의 도구다"라는 의미다. 힐러리는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사람과 만났지만, 진짜 의미있고 허심탄회한 대화는 식사자리에서 나누었다고 회고했다. 음식을 함께 먹으며 마음의 문을 여니 서로 대화가 통했다는 것이다.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이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엉뚱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고향이라고 할 때의 마을 '鄕'자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지금은 보통 마을 향이라고 읽지만 옛날 갑골문에서는 그릇에 담긴 음식을 가운데 놓고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음식을 나누어 먹는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다.
고향은 그러니까 밥을 함께 먹었던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뜻이다. 매일 밥을 함께 먹던 식구(食口)들이 살고 있는 곳이고, 밥을 같이 먹으며 뛰놀던 친구들이 사는 곳이다. 때문에 고향사람을 만나면 더 정겹고 반가운 느낌이 들고, 밥을 함께 먹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고향사람처럼 친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한국과 일본 두 정상이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노다 요시히코 전 일본 총리가 고향은 서로 다르지만 동일한 음식을 먹고 자랐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반가워했다는 뉴스가 보도된 적이 있다.
2011년, 노다 총리가 방한했을 때 먹었던 저녁식사가 화제가 됐다. 추어탕을 먹었기 때문이다. 이 전 대통령은 일본인들도 추어탕을 먹는지는 몰랐다며 반가워했고, 우리 국민 역시 순간적으로나마 친근감을 느꼈던 것이 사실이다.
흔히 추어탕은 우리만 먹는다고 생각하는데 일본과 중국에도 추어탕이 있다. 우리는 남원, 원주 추어탕이 널리 알려진 것처럼 일본은 도쿄 추어탕이 유명하다. 그 중에서도 미꾸라지로 끓인 야나가와 나베(柳川鍋)가 널려 알려져 있는데, 냄비에 우엉을 깔고 그 위에 손질한 미꾸라지를 얹어 삶은 후 계란을 풀어서 먹는 일종의 미꾸라지 스키야키다.
노다는 자신이 추어탕을 좋아하는 이유를 서민출신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는데 부친이 가난한 농부의 여섯 번째 막내 아들이었고, 모친 역시 농부의 열한 번째 막내딸이었기에 어려서부터 서민과 농민음식인 미꾸라지를 많이 먹고 자랐다고 했다. 물론 서민총리를 강조하려는 정치적 계산이 깔린 설명이었지만 당시 일본 서민들로부터 많은 공감을 받았다. 같은 음식을 먹고 큰 사람이기 때문이다.
중국인도 미꾸라지를 잘 먹는다. 중국 농민들은 "하늘에는 비둘기, 땅에는 미꾸라지"라고 말하는데 쉽게 구할 수 있는 음식재료 중에서 비둘기와 미꾸라지의 영양이 가장 풍부하다는 뜻이다. 소설 금병매를 읽어보면 서문경의 정력을 묘사할 때 미꾸라지가 상징물로 자주 등장한다. 중국인들이 미꾸라지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한중일 세 나라 사람들은 추어탕 한 그릇만 놓고도 추억과 정서를 공유할 수 있다. 친해지겠다는 진정성만 있으면 음식 한 그릇이 훌륭한 매개체가 될 수 있다.
이제 완연한 가을이다. 가깝게 지내고 싶은 사람에게 추어탕 한 그릇 함께 먹자고 먼저 연락해 보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