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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혁명을 살린 짜르의 음식, 캐비아

  • 2013.11.22(금) 15:36

'개 발에 편자'라는 우리말에 해당하는 영어 속담이 '서민한테 캐비아(caviar to the general)'다. 철갑상어 알, 캐비아는 황제나 귀족들이 먹는 요리이지 보통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 아니라는 것으로 분수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햄릿 제2막 2장에 나오는 대사로 셰익스피어가 처음 사용했다. 캐비아가 어떤 음식이기에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조차 이렇게 호들갑을 떨었을까?

소금에 절인 철갑상어 알인 캐비아는 송로버섯 트뤼플, 거위 간인 푸아그라와 함께 서양의 3대 진미로 꼽히는 음식으로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고 사치의 대명사였다. 캐비아가 얼마나 대단한 요리였는지는 역사가 증명한다.

고대 로마에서는 캐비아가 식탁에 오를 때면, 다른 요리처럼 단순히 접시에 담아오는 것이 아니라 꽃으로 장식한 접시에 담았다. 그리고 캐비아가 식탁에 오르는 순간 악대가 팡파레를 울려 영광을 기렸다. 로마제국의 영토가 가장 넓었을 때인 세베루스 황제 때의 기록이다.

영국에 캐비아가 전해진 것은 중세 무렵이었다. 캐비아 맛에 반한 영국 왕 에드워드 2세는 아예 캐비아를 만드는 철갑상어를 왕실 물고기(Royal Fish)로 지정해 놓고 철갑상어를 잡으면 무조건 왕실에 바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유럽에서 캐비아를 가장 즐겨 먹는 사람들은 역시 러시아 황제, 짜르와 귀족들이다. 지금도 캐비아는 러시아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꼽힌다. 러시아 황제는 "첫 번째로 잡은 철갑상어와 그해 처음 만든 캐비아를 먹을 권한은 오직 황제에게 있다"고 선언했을 정도로 캐비아에 집착했다.

캐비아는 이렇게 서민들은 넘볼 수 없는 지배계급의 최고급 요리였지만 뒤집어 보면 캐비아를 생산해야 했던 어부들에게는 눈물과 고통의 음식이었다. 때문에 1917년 러시아에서 공산 혁명이 일어났을 때 인민의 피눈물을 짜내던 캐비아는 당연히 숙청(?)의 대상이었지만 러시아 혁명은 역설적으로 캐비아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러시아의 짜르는 쫓겨났지만 그 과정에서 농촌은 황폐해졌고 러시아의 밀 생산량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부족한 식량을 외국에서 수입해야 했는데 혁명정부는 자금이 없었다. 게다가 당시 러시아 혁명정부는 유럽의 다른 나라들로부터 승인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원조를 받을 수도 없었고, 외상으로 밀을 수입할 수도 없었다. 자칫하면 수백 만 명의 러시아 인민들이 굶주림에 시달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때 러시아를 구한 것이 바로 캐비아였다. 러시아 귀족들이 몰락하면서 캐비아 수요가 줄어 고급 캐비아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외국과의 모든 무역거래가 중단된 상태에서 유일하게 캐비아만 주문이 들어왔다. 러시아 캐비아가 최고급이었기 때문이다. 혁명정부는 캐비아를 현물로 지급하면서 대량으로 밀을 수입할 수 있었고 덕분에 혁명 초기의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인민의 적, 캐비아가 역설적으로 옛 소비에트 연방을 건설하는데 큰 공을 세운 것이다.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무조건 내뱉을 것도 아니고, 나를 힘들게 했다고 적대시하고 배척할 것만도 아니다. 인민을 힘들게 했던 원망의 대상이 혁명을 살렸으니 병법 『삼십육계』에 나오는 '남의 칼을 빌어 적을 물리친다(借刀殺人)'는 이야기가 틀린 말이 아니다. 서양의 삼대 진미로 꼽히는 철갑상어 알, 캐비아 담긴 뜻밖의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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