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식 소고기 전골, 스키야키. 간장으로 맛을 낸 육수에 소고기와 쑥갓, 표고버섯, 두부를 익혀 먹으면 자극적이지 않아 맛깔스럽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식이지만 일본의 소고기 전골이 사람들 입맛을 당기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심지어 일본 왕이 소고기를 먹는다는 이유로 암살당할 뻔 했던 적도 있다.
1872년, 열 명의 자객이 도쿄의 메이지(明治) 일왕이 사는 궁궐에 난입하다 발각됐다. 네 명은 현장 사살, 한 명은 중상, 나머지 다섯 명은 생포됐다.
심문 결과, 범행 동기가 황당하기 짝이 없다. 일왕이 소고기를 먹으며 일본 정신을 더럽히고 있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기 위해 궁궐에 침입했다는 것이다. 메이지 일왕이 서양의 영향을 받아 그동안 지켜온 육식 금지의 전통을 해제하면서 일본인들이 고기를 먹기 시작했고, 그 때문에 신성한 일본의 땅과 정신이 부정을 타게 됐다는 주장이다. 때문에 메이지의 그릇된 생각을 바로 잡고 서양 오랑캐들을 몰아 내 일본의 정신과 영토를 수호하려는 것이 침입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터무니없는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일본의 음식문화사를 알면 수긍할 수 있다. 옛날 일본 사람들은 고기를 먹지 않았는데, 육식금지의 역사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뿌리 깊다.
덴무(天武) 일왕이 675년 육식금지령을 선포했다. 덴무는 최초의 육식금지를 선포하면서 소, 말, 개, 원숭이, 닭은 죽이지도 말고 먹지도 말라며 살생금지를 명령한다. 이후 메이지 유신 때까지 일본인은 1200년 동안 고기를 먹지 않았다.
덴무의 육식 금지령은 불교의 일본전래 직후로 종교의 영향도 컸지만 현실적으로 경제적 이유, 군사적 목적도 컸다. 원숭이와 닭은 종교적 이유, 소는 농업에 절대적으로 필요했기에, 그리고 말과 개는 군사적 목적으로 도축과 식용을 금지했다.
물론 이후 여러 차례 도축금지령이 추가로 선포된 것을 보면 어기는 사람이 많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고기를 먹다 처벌되는 일이 반복되면서 일본인은 네 발 달린 동물의 고기를 기피하는 전통이 생겼다. 일본 음식이 생선과 채소 중심으로 발달한 배경이다.
이런 육식기피 전통을 깬 인물이 메이지 일왕이다. 솔선수범해 고기를 먹으며 국민에게도 육식을 장려했다. 이 과정에서 "부모님이 물려주신 상투와 수염을 자를 수 없다"며 단발령에 반대한 조선의 양반처럼, 수구 사무라이들은 천년 넘게 고기를 먹지 않아 깨끗해진 일본의 정신과 영토를 더럽힐 수 없다며 육식 장려에 반발했다.
메이지 일왕은 왜 국민의 반발을 무릅쓰면서 고기를 먹으라고 했을까? 키가 작아 왜(倭)로 불린 일본인의 체질 개선이 목적이었다. 일본 근대화를 이끈 메이지 유신의 목표는 탈아입구(脫亞入歐),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화를 지향하는 것이다. 음식을 통한 체질 개선도 유신의 목표 중 하나였다.
그리고 천년이 넘도록 고기 맛을 보지 못했던 일본인이 왕의 강권으로 처음 먹게 된 고기 음식이 바로 일본 소고기 전골이다. 스키야키는 원래 생선과 채소를 넣고 끓인 전통요리였는데 익숙한 생선 대신 소고기를 넣은 만든 것이다. 도쿄에 처음 스키야키 집이 생긴 것은 1862년이었는데 15년 후에는 500곳을 넘었다고 하니 고기 맛을 본 일본인들이 홀딱 반했던 모양이다. 일본에 음식혁명이 일어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