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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 원님 굴회 마시듯…

  • 2013.11.08(금) 08:31

눈 깜짝할 사이에 음식을 먹어 치울 때, 또는 어떤 일을 막힘없이 단숨에 처리할 때 '남양 원님 굴회 마시듯 한다'고 말한다. 남양은 지금의 경기도 화성으로 예전 남양도호부에 부임하는 원님들은 하나같이 특산물인 굴을 씹지도 않고 훌훌 마셨다고 해서 생긴 속담이다. 남양 원님들은 왜 굴을 씹지도 않고 이렇게 급히 마셨을까?

예전에는 바닷가가 아니면 생굴 먹기가 쉽지 않았다. 그만큼 생굴이 귀했는데 특히 남양만에서 잡히는 굴은 알은 작지만 맛이 좋았다고 한다. 사실, 굴은 흔하고도 귀한 음식이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바닷가 마을에는 해안에 굴이 지천으로 널렸지만 교통이 불편했던 옛날 내륙지방에서는 쉽게 맛볼 수 없는 해산물이었다.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어쩌다 먹는 굴 맛의 매력에 푹 빠졌는데 로마 황제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1세기 때의 로마 황제 아울루스 비텔리우스가 특히 굴을 좋아했는데, 지나치게 파티와 향락을 즐기다 즉위 여덟 달만에 왕좌에서 쫓겨난 이 황제는 굴을 한 번에 100개씩 먹었다. 황제를 위해 병사들은 멀리 영국에서 이탈리아 로마까지 배를 타고 말을 달려 신선한 생굴을 조달했을 정도였다.

굴 사랑은 동양도 마찬가지였다. 조선 중종 때 중국에서 온 사신이 식사에 굴이 보이지 않는다며 불평을 했다고도 한다. "한양에 가면 굴을 실컷 먹을 수 있겠다며 기대를 품고 왔는데 어째서 굴이 보이지 않느냐?"고 묻자 조선 관리가 "바닷가 고을이 한양과 멀어 미처 가져오지 못했으니 조금만 기다리라"며 달래는 장면이 조선왕조실록에 보인다. 로마나 베이징, 한양처럼 바닷가에 접하지 않은 도시에서는 신선한 생굴 먹기가 그만큼 힘들었던 모양이다.

옛날 사람들은 왜 이렇게 굴을 좋아했을까? 귀한데다 맛도 좋고 영양도 풍부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굴이 에너지가 넘치는, 열정을 부르는 음식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굴을 서양에서 최고로 꼽는 정력 음식이다.

최고의 플레이보이 카사노바가 매일 아침 생굴을 수십 개씩 먹었다고 하지만 사실 아침마다 굴을 먹은 것은 비단 카사노바뿐만이 아니었다. 18세기 유럽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아침 식사법이었다. 그러고 보면 서양의 제왕과 대통령 중에는 굴을 좋아했던 사람이 의외로 적지 않다.

절대군주라는 비판도 듣고 있지만 절대 권력을 장악하기까지 열정적으로 일했던 인물로 "짐이 곧 국가"라는 말을 남긴 프랑스 루이 14세도 엄청난 굴 마니아였다. 얼마나 좋아했는지 로마 황제처럼 영불해협에서 채취한 굴을 마차에 싣고 달려와 파리의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파티를 열었다. 급기야 주방장 프랑스와 바텔이 자살을 했는데 파티 시간에 맞춰 신선한 굴이 도착하지 않자 책임감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정도였다.

링컨 대통령 역시 굴을 좋아했다. 고향인 스프링필드에서 정치집회를 열 때면 굴 파티를 열어 지지자들을 끌어 모았고, 재선된 날 저녁 식사 메뉴 역시 굴튀김이었다고 한다. 2차 대전 때 유럽전선을 이끌었던 아이젠하워 장군 역시 굴을 좋아해서 전선에서 장군들을 소집한 후에는 미국에서 직접 공수한 굴을 먹으며 사기를 높였다. 모두 인류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담긴 인물들이다.

굴이 맛있어지는 계절이 돌아왔다. 에너지의 원천이라는 굴을 먹으며 남양 원님 굴회 마시듯 막힌 일을 시원하게 뚫어 보는 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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