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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것에 대한 욕망, 복어 논쟁

  • 2013.11.01(금) 08:31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 덴마크 왕자 햄릿이 절규한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숙부에 대한 복수를 놓고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민했다. 어머니를 위해 소극적으로 현실을 회피할 것인지, 아버지를 위해 적극적으로 복수할 것인지의 갈등이다.

"먹을까, 말까?"

동양의 시인과 선비도 수백 년에 걸쳐 심각하게 망설였다. 맛은 좋지만 치명적인 독이 있는 복어 요리를 앞에 두고 벌인 갈등이다. 그까짓 사소한 음식 하나 때문에 목숨을 거는 어리석은 짓을 할 것인가? 아니면 신선이 먹는다는 천하진미를 맛보지 않고 평생을 아쉬워하며 살 것인가? 복어 독 때문에 죽는 사람이 많았던 옛날에는 복어 요리를 놓고 고민이 많았다.

복어는 지금도 고급 생선으로 꼽지만 옛날 사람들은 복어에 대해 환상마저 품었다. 최고의 미식가로 꼽히는 송나라 시인 소동파는 복어를 먹으며 "목숨과 바꿔도 좋을 만큼의 맛있는 음식"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조동국세시기에는 미나리 넣고 끓인 복어 국을 진미라고 평가했는데, 복어의 독이 무서운 사람들은 도미로 대신 탕을 끓여 먹는다고 했다. 생선의 제왕이라는 도미조차도 복어와 비교하면 대용품에 불과했던 것이다.

낭만파 시인들은 죽을 각오를 하고라도 천하제일의 맛에 도전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실용적인 실학자들은 사소한 것에 쓸데없이 목숨 걸지 말라며 복어를 경계했다.

다산 정약용은 복어는 독이 있으니 젓가락을 대기도 전에 소름부터 돋는다며 복어를 멀리했고, 정조 때의 실학자 이덕무 역시 복어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고는 하지만 잠깐의 기쁨을 얻겠다며 음식 따위에 목숨을 걸지 말라고 타일렀다. 심지어 이덕무의 집안에는 복어를 먹지 말라는 가훈까지 전해져 내려왔는데, "북한산 백운대에 오르지 말고 복어 국을 먹지 말라"는 것이다. 자극에 빠지지 말고 담백하게 생활하라는 의미다.

그런데 복어가 과연 목숨을 걸고 먹을 만한 가치가 있는 별미일까? 함부로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옛날 사람들은 왜 그렇게 복어 맛에 빠져 지냈던 것일까?

역설적으로 치명적인 복어 독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복어 피와 알에는 테트로도톡신이라는 치명적인 독이 있어 잘못 먹으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금지된 것에 대한 욕망이 식욕을 더욱 자극했을 수 있다.

예컨대 복어 알은 치명적이지만 소금에 절여 10년을 숙성시킨 복어 알젓은 별미 중의 별미로 꼽았다. 독성이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약해졌을 뿐인데도 미식가들은 입안이 얼얼해지는 그 맛을 즐겼다. 복어 정소인 곤이 역시 별미로 춘추시대의 경국지색, 서시를 닮은 맛이라고 하는데 자칫 목숨을 잃을 지도 모를 진미라고 생각했기에 나라를 망하게 한 미인에 비유했던 것이다.

복어가 맛있어 지는 계절이다. 요즘 복어를 먹으며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겠지만 옛 사람들의 고민을 떠올리며 식탁의 화제로 삼아보는 것은 어떨까?

"죽느냐 사느냐"라는 햄릿의 실존적 고민에 못지않게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라는 원초적 갈등 역시 심각하기 때문이다. 단지 맛있는 음식에 대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살이에 대처하는 우리 모두의 고민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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