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현대제철, '사고제철' 오명 벗으려면

  • 2013.12.04(수) 14:57

현대제철, 올해 당진 제철소서 8명 사망 사고

불이 났다. 집 전체로 번지지는 않았다. 대신 정원에서 키우던 나무들이 불 탔다. 동네에는 삽시간에 "OO네 집에 불이 났다"고 소문이 났다.

집주인은 집값이 떨어질까 걱정됐다. 그래서 동네사람들에게 "나무에만 불이 붙었을 뿐 우리 집에 불이 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동네 사람들은 쑥덕거렸다. "나무가 그 집 정원에 있던 것이 아닌가봐"라고.


지난달 26일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 가스 누출사고가 발생했다. 제철소 내 발전소에서 내부 점검 도중 가스가 유출돼 작업자 1명이 사망했다. 사망한 작업자는 현대제철 당진 제철소에 가스를 공급하는 현대그린파워의 직원이었다.

현대제철 당진 제철소에서 사고가 발생한 날은 현대차그룹이 야심차게 내놓은 신형 제네시스 발표일이었다. 사건이 발생한 시간대도 신형 제네시스가 공개되던 시점과 비슷했다.

현대제철은 혼비백산했다. 잔칫날 사고가 터졌으니 망연자실했다. 현대제철은 사태 수습에 나섰다. 그런데 태도가 좀 이상했다. 현대제철은 "일부 언론에서 현대제철에서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보도하고 있어 오해가 있다"며 "이번 사고는 현대제철과 무관하다"고 했다.

사망한 직원이 소속된 곳은 현대그린파워라는 회사다. 현대제철과 중부발전이 합작 투자한 독립법인이다.

 

현대제철은 "독립법인인 현대그린파워에서 사고가 난 것이지 현대제철에서 사고가 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현대제철의 방점은 '독립법인'에 있었다. 현대제철이 출자는 했지만 경영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 만큼 이번 사고는 현대제철 책임이 아니라는 취지였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지난 3일. 현대제철 당진 제철소에서는 또 1건의 인명사고가 발생했다.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내 철근공장 지붕 위에서 정기 안전점검을 하던 현대종합설계 소속 직원이 추락사했다.

현대제철은 "이 직원이 지붕의 채광판을 잘못 밟아서 사고가 일어났다"고 했다. 사망한 직원의 과실에 무게를 뒀다. 이번에도 현대제철은 관계가 없다는 뉘앙스다.

현대제철 당진 제철소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심혈을 기울인 곳이다. 일관 제철소 건설 당시, 수시로 불시에 건설현장을 방문해 건설 상황을 체크했다. 가장 중점을 둔 것은 안전사고 방지였다.

그래서였을까. 일관 제철소 건설 당시 현대제철의 고위 임원들은 수시로 인사 발령이 났다. 현대차그룹 인사 스타일이 수시 인사이기는 하지만 현대제철에는 유난히 갑작스런 인사가 많았다. 그리고 인사는 늘 정 회장의 현장 순시 직후 단행됐다.

그만큼 정 회장이 안전 사고에 대해 민감해 했던 곳이 현대제철 당진 제철소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올해 들어서만 총 8명이 사망했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급기야 고용노동부도 칼을 빼들었다. 고용부는 현대제철을 ‘안전관리 위기사업장’으로 지정, 특별관리에 나서기로 했다. 또 ‘특별 안전진단팀’을 파견해 현대제철 당진공장 전체에 대한 정밀종합안전진단을 시행키로 했다.

현대제철은 이미 지난 5월 사고 이후 실시한 정밀 진단에서도 898건의 위반사항을 지적받았다. 협력업체까지 합하면 총 1123건에 이른다. 이번에도 다수의 적발 건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난 지금도 연이어 사고가 터지는 것을 보면 정밀 진단이 과연 실효성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당시 사고 재발 방지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했던 현대제철의 다짐은 또 어디로 갔는지도 궁금하다.

현대제철은 최근 현대하이스코 냉연부문을 합병했다. 숙원사업이었던 고로도 3기도 모두 준공했다. 그리고 글로벌 철강업체로의 도약을 선언했다. 이렇게 되기까지 수많은 협력업체들이 당진 제철소 안에서 피와 땀을 쏟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제철은 잇단 사망사고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현대제철 직원이 사망하고 현대제철 내 고로 등 주요 시설에서 사고가 발생해야만 현대제철의 책임이라는 생각은 안일하다.

진정한 글로벌 업체는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수조원에 달해야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에 걸맞는 '책임'을 다할 때만이 진정한 '글로벌 업체'로 평가받을 수 있다.

naver daum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