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 재계 총수들이 경쟁적으로 ‘위기’론을 치켜들었다. 실제로 위기에 처한 기업도 있지만 잘 나가는 기업 총수들도 예외 없이 위기를 말한다. 돌이켜보면 위기가 아니었던 해가 있었나 싶기도 하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앞서 나가던 기업들도 한 순간의 방심으로 인해 기회를 놓치고 아성마저 무너졌다”며 “앞으로의 경영환경은 위기 그 자체”라고 강조했다.
위기론은 게으름과 안일함을 경계하는데 효과적이다. 미꾸라지 통에 메기를 넣는 것도 그런 이유다. 인간은, 그리고 인간이 만든 조직은 주어진 상황에 곧 익숙해지고 그 익숙함에 매몰된다. 일상을 반복하는 동물의 본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위기론은 달리는 말에 박차를 가하는 용도로도 안성맞춤이다. 더 빨리 더 멀리 달리지 않으면 경쟁에서 낙오된다. 오늘 1등이 내일 1등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오늘 2등에 만족하면 내일은 꼴찌의 수렁에 빠진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선두사업은 끊임없이 추격을 받기 때문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경쟁력을 확보하라”고 주문한다.
총수들은 위기와 패키지로 ‘기회’를 말한다. 위기라는 깔딱 고개를 넘으면 기회라는 열매를 따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기를 겪으면서 만신창이가 되면 죽 쑤어서 개 주는 꼴이 된다.
게다가 요즘은 위기 속에서도 살아남는 기업이 많기 때문에 먹을 게 별로 없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은 “과거에는 불황기에 기업들이 다수 도산했기 때문에 호황기에 살아남은 기업들이 이익을 향유했지만 요즘엔 무너지는 기업이 적어 호황기에도 경쟁이 여전하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위기를 넘어도 과실을 차지할 수 없다. 사전 준비를 통해 신기술, 신사업, 신시장을 개척하고 선점해야 철옹성을 구축할 수 있다. 남의 뒤만 쫓아서는 트렌드를 선도하는 혁신을 이뤄낼 수 없는 것이다.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은 ‘마음의 눈을 통해 앞서 나가면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心眼通先 先則制人)고 강조한다.
시장 선점 후에는 재빠르게 체질을 바꿔야 한다. 일하는 습관과 생각하는 방식을 송두리째 바꾸지 않으면 기회는 사라진다. 이건희 회장이 주창한 ‘마하경영’론은 1등 기업이 가야할 바를 일러준다. 일반적인 속도가 아닌 음속의 속도를 견뎌내려면 혁신을 통해 조직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에게 위기와 기회는 무시로 찾아온다. 다만, 위기 속에서 더 많은 기회를 포착하고 기회를 성공이란 이름으로 바꾸려면 더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 강태공이 세월이 아니라 세상을 낚을 수 있었던 것은 기회가 올 때를 대비해 몸과 마음을 갈고 닦았기 때문이다. (주나라 재상으로 무왕을 도와 은나라를 멸망시킨 강태공은 은둔시절 병법의 고전 육도(六韜)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