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설명에도 이번 사고에 따른 2차 피해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피의자가 정보를 빼낸 시점은 이미 1년 전의 일이다. 이 정보를 1년 동안 고이 간직하고만 있었다는 말을 믿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2차 피해 사례로 보도된 내용이 과도한 측면은 있지만, 그렇다고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예상도 옳은 얘기는 아니다.
사건이 공개되고 카드 회원들이 홈페이지를 통해 유출 정보를 확인하기 이전부터 2차 피해들은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상식적이다. 그래서 이번 사건은 우리나라의 개인정보를 다루는 기업들의 의식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적나라하게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관리 감독 질서가 얼마나 허술한지도 충분히 봤다.
개인 정보는 마케팅과 상관관계가 상당히 높다.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엔 더욱 그렇다. 개인의 연락처나 금융거래 내용은 모두 돈이다. 연봉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면 값은 더 나간다. 그가 영화를 자주 본다면 그에 알맞은 상품을 추천해 구매를 자극할 수도 있다. 빅데이터 산업이 뜨는 이유다.
개인 신용정보의 유출로 정치권은 밥숟가락 놓기에 바쁘다. 국민적인 공분의 대상이 됐으니 정치권도 불 난 호떡집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정부와 정치권의 해법은 아쉽기 짝이 없다. 드러난 문제를 차분히 풀고 다시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대안을 마련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정치권은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각종 법률 개정안을 책상머리에 쌓아놓고 있다는 점을 애써 외면하고 책임 소재 가리기에 여념이 없다. 잿밥에 해당하는 책임론은 사실 정부가 먼저 제기했다. 국민의 분노를 다스릴 가장 말초적인 해법이기는 하다. 그러나 국무총리와 대통령까지 초장부터 ‘엄중 문책’을 강조함으로써 해당 부처는 운신의 폭이 아예 없어졌다.
그러다 보니 현재까지 나온 대책은 모든 행위를 일시 정지시키는 것이다. 요즘 시청률 최고라는 400년 묵은 외계인 도민준(김수현 분) 씨의 얘기가 아니다. 별에서 온 그대가 금융위일 줄이야…. 한시적이라고는 하지만, 각종 텔레마케팅을 무조건 정지시키는 식의 극단적인 방법은 공무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조치였는지도 모른다.

▲ SBS TV 홈페이지 캡처 |
우리나라는 그동안 금융지주회사 전환을 유도해왔다. 금융지주회사 체제를 만들어야 각 계열사의 각종 정보를 활용해 먹거리(파이)를 더 키울 수 있다는 논리였다.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있어 금융지주회사는 핵심적인 요인이었고, 우리나라 금융그룹들이 사실상 전부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한 이유이기도 하다.
디지털과 통신기기의 발달로 금융회사와 고객의 대면 접촉은 갈수록 줄어든다. 금융회사들이 각종 비대면 마케팅을 늘리는 이유다. 금융회사는 각종 고정비를 줄여서 비용을 아낄 수도 있다. 은행을 비롯해 보험 카드 증권 등 모든 금융권역에서 온라인 전용 회사나 상품, 마케팅 조직이 빠르게 성장하는 배경이다.
정부는 급한 대로 2차 피해 가능성을 아예 없앤다는 차원에서 모든 것을 정지시켰다. 이런 극단적인 선택에는 항상 책임이 크게 따른다. 이후 구체적인 대책이 나올 때는 국민 대다수가 고개를 끄덕일만한 내용이어야 한다. 금융위원회는 물론 안전행정부와 방송통신위원회, 미래창조과학부, 사법당국 등이 모두 함께 풀어야 할 숙제다.
또한, 금융산업의 발전 방향과도 맞아야 한다. 은행을 직접 찾는 고객들이 이미 절반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모든 것을 직접 보고 처리하라는 방식은 이치에 맞지 않다. 개인정보는 보호하면서도 금융산업의 발전 방향까지 고려하기는 쉽지 않은 과제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정부의 몫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