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 저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왔건만 세상사 쓸쓸하더라.”(사철가 중에서)
봄이다. 만물이 약동하는 봄이 왔다. 봄꽃 명소는 상춘 인파로 활기가 넘친다. 분명코 봄이 찾아왔건만 기업들은 여전히 북풍한설에 떨고 있다.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을 3.9%(작년 3.0%)로 전망하며 경기가 좋아질 것이란 시그널을 보내고 있지만 기업들이 느끼는 체감온도는 영하권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불황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건설과 해운업은 물론이고 철강·석유화학·항공 등 중후장대(重厚長大) 산업은 하나같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물을 반영하는 증권·금융업도 악전고투다.
그나마 휴대폰·반도체·자동차 산업이 체면치레를 하고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리 좋은 것도 아니다. 삼성전자는 지난 1분기 8.4조원의 영업이익으로 시장 기대치에 부응했지만 이는 마케팅·광고비용을 20%이상 줄여서 얻은 것이다.
쓰임새를 줄이면서 근근이 버텨오던 기업들이 최근들어 구조조정의 칼을 대기 시작했다. 직원을 자르고 사업을 줄이는 생존 다이어트에 들어간 것이다. KT는 어제(8일) 명예퇴직 카드를 뽑았다. 근속 15년 이상 직원 2만3000명이 대상인데 이 가운데 6000여명은 보따리를 싸게 될 것으로 보인다.
증권가도 구조조정 바람으로 싱숭생숭하다. 동양증권, 우리투자증권, 현대증권 등 팔려갔거나 팔려갈 증권사는 물론 삼성증권 등 비교적 우량한 곳도 감원에 들어갔다. 시중은행 역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외국계 은행인 씨티(600여명 예상)와 SC은행(200명)을 비롯해 5대 시중은행도 인력을 줄이고 있다.
인력 구조조정과 함께 사업 구조조정에 나서는 그룹도 적지 않다.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동부·현대·한진그룹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생존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제살을 깎고 있다. 타이밍을 놓치면 STX와 동양그룹처럼 공중분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은 일차적으로 기업 경영의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경영환경을 둘러싼 외부적 요인도 작용한다. 특히 정부 규제는 가시적인 위험요인이다. 마침 박근혜 정부가 규제를 ‘쳐부셔야 할 원수, 암 덩어리’로 규정하고 국정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점은 다행이다.
문제는 규제 개혁의 지속성과 실효성 여부다. 규제를 만든 공무원과 국회의원들이 시늉만 하다가 그만둘 개연성이 크고, 덩어리 규제는 놔두고 잔챙이만 손 댈 가능성도 적지 않다. 건수 채우기, 실적 보여주기로 끝날 수 있는 것이다.
부동산 가격 급등기(2002~2006년)에 만들어진 규제를 없애는데 5~6년의 세월이 걸린 것만 봐도 규제 개혁의 ‘비탄력성’을 알 수 있다. 분양가상한제의 경우 정부가 2009년부터 탄력운영을 위한 개정 법률안을 제출했지만 아직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한진그룹이 추진 중인 경복궁 옆 7성급 호텔 건립사업 허용여부는 규제 개혁의 시금석으로 볼 수 있다. 30년 전 제정된 학교보건법의 낡은 틀로 계속 묶어둔다면 정부가 말하는 규제 혁파는 공염불에 그칠 것이다. 전시·공연 등 복합 문화공간으로 조성될 7성급 호텔을 유해시설로 분류하는 건 넌센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