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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B는 결국 미국식 QE를 하게 될까

  • 2014.06.10(화) 10:43

지난주 유럽중앙은행(ECB)이 내놓은 추가 부양정책 패키지는 그 동안 시장에서 예상해온 다양한 정책수단들을 총망라한 것이었다. 마이너스 예치금 금리제도부터 기업대출에 연계한 저리 장기대출(TLTRO)과 ABS 매입에 이르기까지 그 동안 ECB의 무기고에 있는 것으로 관측돼 온 정책들이 한꺼번에 거의 다 쏟아져 나왔다.

 

남은 게 있다면 바로 국채를 대규모로 사들이는 미국식 양적완화(QE)다. 마리오 드라기 총재는 지난주 회견에서 "이것이 끝이 아니다. 저물가가 지나치게 오래 지속되는 것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추가적인 비전통적 정책수단을 사용할 것이라는데 대해 만장일치로 의견을 모았다"고 말하면서 "(미국식 QE도) 비전통적 수단들 중 하나다"라고 밝혔다.

 

다음날 비토르 콘스탄시오 부총재도 "만약 저물가가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끌어 내리는 악순환이 발생하거나, 외부 충격으로 인해 부정적인 소용돌이가 발생하는 경우 광범위한 자산매입(미국식 QE)를 필요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미국식 QE는 여전히 살아있는 카드다. 그러나 드라기 총재는 지난주 회견에서 "이번에 취한 조치가 물가상승률을 (목표선인) 2%로 끌어 올릴 것이라는 점을 자신한다"고 말했다. 별다른 충격이 더 발생하지 않는다면 미국식 QE와 같은 추가 완화정책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란 의미다.

 

그렇다면 유로존은 정말 미국식 QE 없이도 디플레이션 압력을 무난히 헤쳐나갈 수 있을까? 시장에는 여전히 회의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ECB의 정책결정 발표 직후 1.3503달러로까지 급락했던 유로화는 한 시간쯤 뒤 드라기 총재의 기자회견 내용이 전달되자 1.366달러대로 급반등했다.

 

유로화의 가치는 유로존 물가전망과 상호작용해 왔다. 유로화의 상승은 유로존 수입물가를 하락시켜 저물가 문제를 심화시켰다. 낮은 물가 상승률은 그 자체로 '유로'라고 하는 화폐 가치가 강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유로화 강세는 유로존 저물가의 원인이자 결과다.

 

ECB의 패키지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유로화가 상승세로 반응했다는 것은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실망감의 표현일 수 있다. 파이낸셜 타임즈의 한 칼럼니스트는 이러한 시장반응이 "미국식 QE가 곧 시행되고 말 것임을 시사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드라기 총재는 지난 4월 회견에서 "자본시장이 발달한 미국과 달리 유로존 경제는 은행대출에 기반한 구조를 갖고 있다"면서 자본시장을 통해 실물경제를 부양하는 미국식 QE는 유로존 실정에 맞지 않다는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미국식 QE에 대한 이런 거부감은 유로존 내부의 사정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국채를 매입하는 정책은 중앙은행이 정부에 돈을 빌려주는 것과 마찬가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 이는 유로존에서는 법률로 금지돼 있는 사항이다. 정부의 전쟁비용을 대줬다가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야기했던 독일 중앙은행의 과거 경험에서 비롯된 금기사항이다.

 

사실 유로존의 양적완화 정책이 미국의 그것과 크게 다른 점도 없다. 지난 2011년말과 2012년 초에 시행한 1조 유로 규모의 LTRO는 은행들로 하여금 자국 국채를 사들이도록 유도한 간접적인 형태의 미국식 QE였다. 이번에 실시키로 결정한 기업대출 실적 연계 TLTRO(Targeted LTRO)와 ABS 매입은 연준의 모기지증권(MBS) 매입과 거의 똑 같은 대출부양과 유동성 공급 효과를 내게 된다.

 

규모도 작지 않다. TLTRO는 연내 4000억 유로가 풀리게 되며, 내년에는 추가로 공급될 예정이다. 이와 별도로 그 동안 7일짜리 예금을 통해 반복해서 묶어 왔던 초과유동성 1000억 유로를 이번 주에 한꺼번에 풀기로 했다. 미국에 비유하면 올 연말까지 '월평균 1000억 달러'의 통화가 방출되는 셈이다. 미국이 양적완화를 줄이기 이전보다 더 큰 규모다.

 

그러나 ECB의 이번 정책이 미국식 양적완화와 다른 점도 있다. 미국식 QE는 중앙은행이 국채를 매입해 보유하고 있는 동안 그 효과가 계속되는 특성이 있다. 10년짜리 채권을 사면 10년간, 30년짜리 국채를 매입하면 30년간 화폐증발이 유지된다. 반면, LTRO는 만기가 매우 짧다. 이번에 도입한 TLTRO는 오는 2018년 9월에 전액 상환된다. 기껏 해봐야 4년짜리다. 미국식 QE가 자산을 완전히 사들이는 단순매매(OMT: Outright Monetary Transactions)인 반면, 유럽식 QE인 LTRO는 환매조건부 매입(Repurchase agreements)에 비유할 수 있는 것이다. 중장기 시장금리와 환율을 전망하는데 적용하는 변수의 강도가 미국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게다가 지난 2011~2012년에 지원했던 LTRO 자금은 내년 초에 만기가 도래하게 된다. 현재 잔액은 5057억 유로다. 7개월쯤 뒤에는 대규모의 양적긴축이 예정돼 있는 셈이다. 이 자금은 그 이전에 조기상환될 수도 있다. ECB가 이번에 초과 유동성에 대해 마이너스의 벌칙금리를 부과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유럽식 QE가 가진 이러한 본질적인 제약과 상쇄효과들이 '미국식 QE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는 논거일 것이다. 따라서 시장과 ECB의 기싸움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물론 ECB는 대책과 반론도 갖고 있을 것이다. 기존 LTRO 상환에 따르는 양적긴축 또는 부양상쇄 효과가 발생할 경우 추가적인 유동성 공급에 얼마든지 나설 수 있다.

 

게다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쩌면 '정책 금리'일 수 있다. 베누아 퀘르 ECB 집행이사는 지난 주말 인터뷰에서 "ECB는 제로금리를 극단적으로 오랫동안(for an extremely long period) 유지할 것인 반면, 미국과 영국은 금리인상 사이클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며 "이것이 시장 참여자들에게는 결정적인 요소"라고 강조했다. ECB의 미국식 QE를 압박하며 유로화 강세에 베팅하고자 하는 세력들에게는 가장 거슬리는 요소일 것이다.

 

안근모 글로벌모니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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