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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산업과 호텔신라의 결합, '신의 한수'일까?

  • 2015.06.26(금) 11:49

[Watchers' Insight]
HDC신라, 관리역량·입지에 묻힌 동업 리스크

▲ 현대산업개발과 호텔신라가 손을 잡았다. 지난달 25일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에서 열린 HDC신라면세점 출범식에 참석한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오른쪽)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왼쪽).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신의 한 수'로 볼 수 있다."

지난 4월 현대산업개발과 호텔신라가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에 국내 최대면세점을 만들겠다는 깜짝 발표를 하자 한 증권사가 내놓은 보고서 내용입니다.

호텔신라는 적절한 면세점 부지를 얻었고, 현대산업개발은 면세점 운영능력에선 최고로 평가받는 호텔신라와 손을 잡은 만큼 양사의 합작법인인 'HDC신라면세점'이 새로운 면세점 사업자로 선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었습니다. HDC신라면세점의 우위를 점친 증권사들은 더 있습니다. 이들은 HDC신라면세점이 관리역량이나 입지에서 앞서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 지분도 절반, 임원수도 똑같이 나눠

증권사들이 김칫국부터 마시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지만 딴죽을 걸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각자가 그렇게 판단한 이유가 있을테니까요. 한가지 걸리는 건 면세점 사업권 획득 이후의 일입니다.

사업권을 딸 때만 해도 '필승전략'으로 꼽히던 현대산업개발과 호텔신라의 결합이 막상 사업권을 딴 뒤에는 오히려 면세점 사업의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초기자본금 200억원으로 설립된 HDC신라면세점은 호텔신라가 50%, 현대산업개발이 25%, 현대아이파크몰이 25%의 지분을 갖고 있습니다. 현대아이파크몰은 현대산업개발의 계열사이니 호텔신라와 현대산업개발이 50대 50의 비율로 대등한 지분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동업인 거죠.

그래서인지 HDC신라면세점은 대표이사(양창훈·한인규)도 2명, 사내이사(김회언·차정호)도 2명, 감사(이형기·최창현)도 2명입니다. 현대산업개발과 호텔신라는 회사지분은 물론이고 임원 구성(양창훈·김회언·이형기 vs 한인규·차정호·최창현)까지 동일한 비율로 가져가기로 한 모양입니다.

◇ 화려한 동업, 가려진 리스크

지금은 면세점 사업권 획득이라는 공동의 목표가 있으니 목표를 향해 달려가기만 하면 됩니다. 하지만 그 목표가 사라진 뒤에도 둘은 사이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똑같은 지분, 똑같은 임원수는 겉보기엔 공평해보여도 둘의 뜻이 맞지 않으면 여러 잡음이 날 수 있습니다.

각자의 대주주에게 허락을 받아야하니 의사결정속도가 느릴 수 있고, 사업을 진행할 때도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으면 진척이 어려운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거죠. 돈 문제가 걸릴 땐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할 수도 있습니다.

가령 사업수행을 위해 100이라는 돈이 필요하다고 합시다. 편의상 증자하는 것으로 가정하죠. 동일한 지분율을 유지하려면 각자 50씩 부담해야하는데 어느 한쪽이 25만 투자하겠다고 하면 회사에 들어오는 돈은 필요금액의 절반인 50(25+25)밖에 안될 겁니다.

번 돈을 나누는데도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한쪽은 사업확대를 위해 배당을 하지 말고 회사에 돈을 남겨두자고 할 수 있는 반면 다른 한쪽은 돈 쓸 일이 있으니 배당을 해야한다고 고집하면 의견충돌이 불가피한 구조입니다.

 

▲ HDC신라면세점이 들어설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 전경.


◇ HDC신라가 감당해야할 몫

초점을 HDC신라면세점에 맞춰보겠습니다. 주주이자 면세점 후보지를 보유한 현대아이파크몰은 3년전인 2012년 10월 금융기관으로부터 총 2300억원을 빌렸습니다. 매년 나가는 이자비용만 100억원에 달합니다. 아이파크몰은 2006년 백화점사업을 본격 시작하면서 대규모 차입금을 조달했는데 이 돈을 갚으려고 다시 돈을 빌리면서(차환발행) 지금까지 빚이 남아있는 겁니다. 2300억원 중 300억원은 갚았고 오는 2017년 10월까지 나머지 2000억원을 갚아야합니다. 그외 다른 차입금도 있지만 이 글에선 빼겠습니다.

현재 현대아이파크몰은 자본금을 모두 까먹은 완전자본잠식 상태입니다. 현대아이파크몰의 자체 신용으로는 돈을 빌릴 수 없어 임대료나 신용카드로 판매한 대금 등으로 갚겠다고 약속하고 돈을 빌렸습니다. 이것도 못미더워 채권자들은 현대아이파크몰에 문제가 생기면 대주주인 현대산업개발이 대신 갚도록 했습니다. 현대아이파크몰이나 현대산업개발이나 빚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거죠.

따라서 HDC신라면세점이 영업을 하더라도 번 돈의 상당부분은 현대아이파크몰에 임대료나 배당으로 지급해야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현대아이파크몰이 내년에 갚아야할 차입금은 400억원, 내후년에는 1500억원에 달합니다. 또다시 빚을 내 빚을 갚는 방식을 활용할 수도 있지만, 현금에 대한 갈망은 계속될 수 있다는 얘기죠.

◇ 꼭 필요한 덕목, 신뢰와 양보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면세점 사업이 잘 되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메르스 사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면세점은 다른 산업에 비해 대내외 불확실성에 더 크게 노출돼있습니다. 언제까지 순풍에 돛단 듯 순항할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려운 분야입니다.

면세점 사업에 빨간불이 켜져 현대산업개발과 호텔신라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지금은 신의 한 수로 평가받는 HDC신라면세점이 다른 면세점 사업자보다 더 큰 어려움에 빠질 수 있습니다. 50대 50의 동업이 사업 초기엔 좋을지 몰라도 서로를 믿고 양보하지 않으면 그 끝은 허망할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HDC신라면세점측 관계자는 이런 말을 하더군요. "손을 잡았으니 같이 가야죠. 지금도 서로가 한 발씩 양보하면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혀 문제될 게 없습니다."

이 말을 믿고 싶습니다. HDC신라면세점의 가장 큰 리스크는 외부(경쟁사)가 아닌 자기 자신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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