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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임된 아버지, 격랑 속 롯데

  • 2015.07.28(화) 18:09

[Watchers' Insight] 신격호 日롯데서 해임
장남 손 들려다 무산..후계구도 안갯속 빠져들 수도

▲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가운데) 총괄회장과 장남인 신동주(우측) 롯데홀딩스 전 부회장, 신동빈(좌측) 롯데그룹 회장.

 

신격호(94)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경영에서 손을 뗀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한국과 달리 일본에선 표면적으로나마 일본 롯데의 지주회사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직을 유지하고 있었다. 얼마전(7월15일)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에 선임된 신동빈(신격호 총괄회장의 차남) 한국 롯데그룹 회장도 일본에서 직함은 부회장이다. 일본에서 회장은 아버지(신격호 총괄회장), 부회장은 아들(신동빈 회장)이 맡는 구조였다.

 

◇ 아버지 뜻 따르던 아들

 

신동빈 회장은 그간 아버지를 내세워 자신을 한껏 낮추는 행보를 보여왔다. 롯데그룹의 신년사는 지금도 신격호 총괄회장의 이름으로 나온다. 신동빈 회장은 자신이 한일 롯데그룹의 후계자로 확정된 다음날(7월16일) "한국과 일본의 롯데사업을 모두 책임지는 자세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 때 내건 명분이 "신격호 총괄회장의 뜻을 받든다"는 것이었다.

그는 올해 초 형인 신동주 롯데홀딩스 전 부회장이 전격 해임됐을 때도 "(신동주 해임은) 아버님이 하시는 일이라 잘 모르겠다"며 자신은 형의 거취와 상관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형(신동주 전 부회장)의 해임과 뒤이어 그룹의 경영권을 넘겨받는 일 모두가 신격호 총괄회장의 의중에 따른 것이라는 게 신동빈 회장의 설명이다.

 

▲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지난 5월 공사가 진행중인 롯데월드타워를 방문해 현장을 둘러보는 모습. 사진 오른쪽이 신격호 총괄회장이다.

 

 ◇ '해임'이라는 단어의 무게


이랬던 롯데그룹에 한바탕 풍랑이 일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 등에 따르면 이날(28일) 오전 롯데홀딩스는 긴급이사회를 열고 신 총괄회장을 해임했다.

신동빈 회장이 일본 롯데의 경영까지 맡기로 했음을 감안하면 아버지가 경영일선에서 뒤로 빠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지만 이번 일은 개운치않은 뒷맛을 남긴다. 해임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생경함이 그렇고 그 뒤 나온 롯데그룹의 해명도 석연치 않기 때문이다.

롯데그룹은 해임이라는 단어가 나왔음에도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단지 "일본 롯데홀딩스는 신격호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를 명예회장으로 추대하는 결정을 했다"고 밝혔을 뿐이다. 해임이라는 단어가 '아버지를 강제로 내쫓았다'는 인상을 주는데도 이를 부인하지 않은 건 곧 해임 자체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 반전의 반전


뒤이어 나온 보도는 더욱 충격적이다. 신격호 총괄회장이 하루전(27일) 신동주 전 부회장, 신영자 롯데재단 이사장, 신동인 롯데자이언츠 구단주 직무대행 등 친족들과 함께 일본 롯데를 방문, 신동빈 회장(일본에선 부회장)과 롯데홀딩스의 전문경영인 쓰쿠다 다카유키(佃孝之) 대표이사 사장 등을 해임했다고 한다. 정식 이사회를 거치지 않고 이뤄진 행위라 법률적 구속력은 없어도 신격호 총괄회장의 의중이 그동안 알려져왔던 것과는 다름을 시사한 것일 수 있다.

파장이 확산되자 롯데측은 '보도참고자료'를 내고 "일부 친족들이 고령인 신격호 총괄회장을 무리하게 일본으로 모시고 가 일방적으로 롯데홀딩스 임원 해임을 발표하는 일이 있었다"며 "롯데홀딩스 이사회는 적법절차를 거치지 않은 이 결정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았고, 기존 임원들의 지위를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종합하면 롯데의 지배구조를 송두리째 뒤흔들 수 있는 사건이 터진 직후 이날 오전 롯데홀딩스 긴급이사회가 열렸고, 이 자리에서 신격호 총괄회장의 해임이 결정됐다는 얘기다. 아버지의 일본 방문은 장남인 신동주 전 부회장을 구명하기 위한 것이었고, 이날 이사회는 신동빈 회장이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사건일 수 있다는 것이다.

 


 ◇ 신동빈의 굳히기


문제는 앞으로 롯데그룹의 지배구조가 격랑에 빠져들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신동빈 회장은 더는 "아버지의 뜻"을 내세울 수 없을 전망이다. 이번 일은 신격호 총괄회장이 불과 2주전 결정을 뒤엎을 만큼 판단력이 흐려졌다는 얘기일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 눈길이 가는 대목은 신격호 총괄회장과 함께 일본을 방문한 사람 중 장녀인 신영자 이사장이 포함돼있다는 점이다. 현재 신동빈 회장과 신동주 부회장은 롯데쇼핑·롯데푸드·롯데물산·롯데건설·롯데캐피탈·롯데카드 등 주요 계열사의 지분을 엇비슷하게 보유 중이다. 롯데쇼핑만 해도 신동빈 회장의 지분율은 13.46%로 신동주 전 부회장(13.45%)보다 불과 0.01%포인트 많다.

신영자 이사장이 본인 지분과 재단을 활용하면 형제간 지분구도에 얼마든 변화가 생길 수 있는 구도인 셈이다. 한국 롯데그룹의 모태인 롯데제과도 2대 주주는 지분 8.69%를 보유한 롯데재단이라 신 이사장의 의중이 어디로 실리느냐에 따라 경영권이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 다시 격랑 속으로

가장 큰 관건은 롯데홀딩스의 지분 향방이다. 롯데홀딩스는 한국 롯데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호텔롯데의 최대주주지만 정확한 지분구도는 베일에 가려있다. 최대주주로 알려진 신격호 총괄회장이 자신의 지분을 신동빈 회장에게 넘겼다면 이번 일은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롯데그룹의 지배구조가 크게 출렁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어쩌면 롯데그룹의 승계문제는 현재완료가 아닌 진행형일지 모른다는 생각은 지나친 것일까. 현재 롯데측은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의 한국롯데에서의 지위는 변화가 없으며, 신격호 총괄회장은 계속해서 한국과 일본롯데의 경영현안을 챙겨나갈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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