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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a Watch]② '시진핑의 불호령' 소비시장 뒤집혔다

  • 2014.02.18(화) 15:40

<르포> 시진핑式 부패척결에 고급호텔, 호화식당 날벼락
음성적 소비를 '양지'로..가족형 여가·문화·외식 시장 커져

▲ 베이징 차오양먼 역 인근 백화점 여우탕(Youtown)국제센터.

 

[베이징=윤도진 기자] 중국 베이징(北京) 차오양(朝陽)구 르탄(日壇)로에 위치한 '르탄호텔'. 출장 전 인터넷으로 숙소를 알아보던 기자의 눈에 시내 중심가와 가까운 이 5성급 호텔의 방값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전까지 800위안(약 15만원, 봉사료 15% 별도)이던 디럭스 룸을 381위안(약 6만7000원)에 내놓은, 반값도 안되는 할인가였다. 한국인이 많이사는 왕징(望京) 외곽 4성급 호텔보다 저렴한 값이다.

 

방을 예약한 뒤, 지난달 21일 찾아간 호텔은 '과연 객실이 몇 개나 찼을까' 싶을 정도로 로비부터 텅 비어 있었다. 대리석으로 장식한 화려한 프런트에서 기자를 맞은 호텔의 매니저는 "손님이 없는 비수기여서 할인행사를 하고 있는 것"이라며 "봄이 되고 방이 차면 다시 가격이 오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 춘제 특수에도 5성급 호텔 텅텅..'반값'

 

매니저의 말은 사실과 달랐다. 중국에서 춘제(음력 1월1일)를 앞둔 시기 고급 호텔은 통상 비수기가 아니다. 연휴 전후로 각종 기업인과 관료 등이 벌이는 공무 연회나 만찬이 많아 오히려 '특수'를 누리는 게 춘제의 5성급 호텔이다.

 

알고 보니 이 호텔은 중국 외교부 청사나 러시아 대사관이 가까워 외국인 방문객과 중국인들이 많이 찾는 호텔이었다. 그러나 작년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중국인 손님이 점점 줄어들더니, 최근엔 루블화 가치까지 하락해 러시아 방문객까지 뚝 끊겼다는 것이다.

 

시진핑 정부가 들어선 지 1년여. 베이징 시내에서 목격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이 같은 고가 사치성 소비의 실종이었다. 기자가 저렴하게 묵은 르탄호텔뿐만 아니라 호텔업계 전반이 폭탄을 맞았다.

 

베이징 한 합자회사에서 대관업무를 담당하는 김 모 과장(37)은 "시 주석이 엄포를 놓은 뒤에 공무원들은 5성급 호텔 출입을 기피한다"며 "괜히 고급호텔을 드나들다가 찍힐 수 있어 호텔에서 접대하려고 하면 공무원 열에 아홉명은 꺼린다"고 설명했다.

 

알만한 사람들은 호텔 주차장에 있는 차만 봐도 이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김 과장은  "예전에는 고급호텔 주자창에는 관용차로 많이 쓰는 검은색 아우디 차량이 즐비했는데 지금은 그런 차들이 거의 없다"고 귀띔했다.

 
▲ 베이징 르탄호텔 로비 모습

 

◇ 한끼식사 18만원 접대받던 공무원들 '배고프다' 한탄(?)도

 

이런 사회 분위기 탓에 작년 중국에서는 총 50개의 5성급 호텔이 등급을 4성급으로 낮춰달라고 요청했다는 소식도 있다. 가격을 낮춰서라도 손님을 받겠다는 뜻이다. 작년 중국 5성급 호텔의 매출은 전년 대비 25%가량 감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시진핑 정부는 관공서 경비인 '삼공소비(三公消費,  공무용 차량·접대비·출장비)를 철저하게 관리하기 시작했다. 작년 말에는 지방 정부에서 당정 간부를 영접할 때 고급요리인 샥스핀이나 제비집 등을 식탁에 올리지 말아야 한다는 등 규칙을 중국공산당과 국무원이 정해 배포하기도 했다.

 

식당도 가격대가 높다싶으면 줄줄이 타격을 입었다. 100년 이상 전통의 베이징 덕(카오야, 烤鴨) 전문기업 취안쥐더(全聚德)는 작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할인 마케팅까지 펼치며 영업을 했다. 하지만 순이익이 28.4%나 줄었다. 선물용 고급바이주(白酒)를 생산하는 구이저우마오타이(貴州茅台)도 작년 한해 시가총액이 800억위안(약 15조원) 가까이 증발했다.
 

주중한국대사관 정영록 경제공사는 "요즘 중국 공무원들을 만나면 '배가 고프다'고 말한다"며 "예전에는 1인당 식사비가 1000위안(약 18만원)짜리 식당서 접대를 받았는데 요즘은 100~200위안까지만 주문해야 한다더라"고 전했다.

 

명절을 앞두고 분주해야 할 백화점 역시 한산했다. 베이징 차오양먼 역 인근 백화점 여우탕(Youtown)국제센터는 찾아간 시간이 평일 오후였지만, 퇴근 시간이 가까운 시간에도 쇼핑하는 이들이 거의 없었다.

 

 

◇ 사치 시장 좁아졌지만 중산층 건전소비 영역 확대

 

1년간 시 정부의 개혁에 따른 과소비 위축은 지표로도 나타났다. 작년 12월 중국의 소매판매 증가율은 13.6%로  전년동기 15.2%에 비해 1.6%포인트 낮아졌다. 이문형 산업연구원 베이징지원장은 "사치품을 구입해 선물하고, 그걸 되팔거나 소비하는 경제의 한 고리가 끊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런 사치소비의 퇴조가 대륙의 소비시장 침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중국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 춘제 연휴기간(1월31일~2월6일) 주요 소매 및 요식업점 판매액은 6107억위안(108조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13.3% 늘었다. 이는 전년도 증가율 14.7%보다 둔화된 것이지만, 사치품 소비는 크게 준 대신 실용적 가격대의 선물 세트나 중급 수준의 일반식당은 20% 이상 늘어난 것이다.

 

당장 활력은 떨어지는 듯 보여도 음성적인 사치 소비가 중산층 중심의 문화·여가 등 양지의 시장으로 나오면서 소비의 질 자체가 탄탄해지고 있다는 게 현지 기업인과 전문가들 설명이다.

 

중국에서 식품바이오 사업을 기반 삼아 영화(CGV) 외식(VIPS) 뮤지컬(맘마미아) 등 생활문화 사업을 CJ는 이런 소비 구조의 변화를 조심스레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박근태 CJ 중국 대표는 "사치성 소비가 줄어든 대신 중산층 가족 중심의 여가 문화 소비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사업 진행에 고무적인 흐름"이라고 전망했다.

 

정영록 경제공사도 "큰 흐름에서 중국의 소비지출은 계속 늘고 있고, 특히 과거에 비중이 적었던 문화생활이나 여행, 교육 등 새로운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며 "우리 기업들도 이런 변화에 발맞춰 시장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라고 말했다.

 

▲ 춘제를 앞두고 여행객으로 붐비는 베이징 셔우두공항 내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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