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금융기관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본점을 전라북도로 옮겨야한다는 법안이 최근 발의됐습니다.
전북 전주에 지역구를 둔 김광수 민주평화당 의원(전주갑)은 지난 7일 한국산업은행법과 한국수출입은행법을 고쳐 산은과 수은 본점을 전라북도로 두도록 하는 법률개정안을 발의했는데요. 개정안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한국산업은행법(제4조), 한국수출입은행법(제3조)에 있는 '본점을 서울특별시에 둔다'는 조항에서 '서울특별시'를 '전라북도'로 단어 하나 바꾸자는 것입니다.
산은과 수은의 본점을 부산으로 옮겨야한다는 법안도 곧 발의될 예정입니다. 부산에 지역구를 둔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부산 연제구)이 개정안을 준비 중인데요. 역시 내용은 '서울특별시'란 단어를 '부산광역시'로 바꾸는 내용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서울 여의도에 있는 두 은행의 본점을 지방으로 옮겨야한다는 법안은 해당 은행에 근무 중인 직원들을 술렁이게 하고, 반면 이전대상으로 거론된 지역사회에는 두 손 들고 환영하는 여론을 형성합니다.
일반적으로 국책금융기관의 본점은 어떻게 정하고 있을까요.
국책금융기관은 제각각 설립근거를 담은 법률을 가지고 있는데요. 이들 법안에 산은·수은처럼 본점소재지를 어디에 두느냐도 담고 있습니다. 기업은행과 예금보험공사는 각각 중소기업은행법, 예금자보험법상 본점을 서울에 둔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반면 기술보증기금, 신용보증기금, 자산관리공사, 주택금융공사, 한국투자공사는 각각 해당 법률에 '본점은 정관으로 정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종합하면 본점을 서울에 두거나 또는 정관으로 정하도록 하는 것이 금융기관 본점소재지와 관련한 일반적인 흐름입니다.
이 흐름과 다른 사례도 일부 있습니다. 국민연금공단이 대표적인데요. 국민연금법 27조는 '공단의 주된 사무소(본점)와 기금이사가 관장하는 부서(기금운용본부)의 소재지를 전라북도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다만 국민연금은 이례적인 사례입니다. 과거 공공기관 지방이전 계획에 따라 한국토지공사는 전북, 대한주택공사는 경남으로 이전할 계획이었으나 두 곳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공사)란 이름으로 합쳐지면서 결국 경남으로 이전하게 됐는데요.
이 과정에서 상당한 지역사회 반발이 있었고 정부는 전북 민심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2011년 국민연금공단을 전북으로 내려 보내기로 한 것입니다. 이후 2013년 국민연금법 개정으로 공단의 본점을 전라북도로 못 박는 후속작업이 진행됐습니다.
산은과 수은의 본점소재지를 바꾸는 문제도 결국 국민연금공단처럼 최종적인 이전대상지가 결정된 뒤에야 법 개정 여부가 판가름 날 것입니다.
두 은행의 본점을 옮기는 문제는 법안 내용처럼 단어 하나만 바꾸면 되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난 19대 국회때 한국거래소를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법안이 논의될 때도 '지주회사 본점을 부산에 둬야한다'는 조항이 걸림돌로 작용했고, 결국 해당 법안이 19대국회 임기만료와 함께 자동 폐기된 사례도 있습니다.
산은과 수은의 본점소재지를 결정하는 열쇠를 쥐고 있는 건 제3금융중심지 논의 입니다. 서울·부산에 이어 제3의 금융중심지를 지정하는 논의는 현재 금융위원회가 실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금융위는 이르면 올 상반기 민간전문가들이 포함된 금융중심지추진위원회를 열어 본격 논의를 진행할 예정인데요.
이 위원회에서 제3금융중심지는 필요 없다고 하면 적어도 전북 이전 법안은 휴지조각이 될 공산이 크고, 제3금융중심지 지정이 필요하다고 결론내리면 그때부터 각 지방자치단체의 신청을 받아 오랜 심사기간을 거쳐 최종적인 지역 선정에 착수합니다.
내년은 국회의원선거가 있는 해입니다. 정치권에서 지역표심이 걸린 민감한 소재를 총선 전에 결론 내서, 특정지역과 등을 돌리는 무리수를 둘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전국적 표심을 고려해야하는 여·야 지도부도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가 쉽지 않습니다.
결국 이 법안은 임기 1년 남짓 남은 20대 국회에서 이렇다 할 논의가 진행되지 않은 채 법안을 발의한 의원의 이름만 남기고 자동 폐기, 다음 국회로 바통을 넘어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