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제도 개편과 관련 이랜드 그룹이 한발 앞선 행보를 보이고 있다. 비금융 그룹사 최초로 퇴직연금 운용을 전담하는 계열사를 설립했다. 업계에선 향후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을 준비하는 포석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이랜드월드는 지난해 12월 중순 10억원을 투입해 이랜드파트너스를 설립했다. 이랜드월드는 그룹의 지주 역할을 하는 핵심 회사다. 박성수 회장 내외가 이랜드월드 지분 48.73%로 계열사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이랜드파트너스는 최정기 대표이사와 오영찬 대표이사가 공동 대표를 맡았다. 최 대표는 그룹 내 AWM투자부를 총괄하면서 자산운용과 퇴직연금 업무에 집중해 왔다. 오 대표는 KDB인프라자산운용과 KTB자산운용 펀드매니저 등을 거쳐 파운더스인베스터 대표를 역임했다.
이랜드파트너스가 내건 주요 사업은 경영컨설팅과 투자자문업과 투자일임업 등이다. 구체적으로는 그룹 내 퇴직연금과 자산관리 및 운용에 집중한다는 설명이다. 올 상반기 당국 인가 취득을 목표로 실무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랜드그룹 내 자산운용과 투자업무에 특화한 기업인 셈인데,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이랜드월드의 이랜드파트너스 설립이 금융투자업계 내 뜨거운 감자인 퇴직연금제도 개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현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는 총 15건에 달하는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계류돼 있다. 이중 이랜드파트너스 설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평가받는 개정법률안은 작년 11월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이 대표 발의한 안이다.
한 의원 안의 핵심은 기금형 퇴직연금제도 도입이다. 기금형 퇴직연금제도는 한 기업이 수탁법인을 설립하면 해당 수탁법인이 모기업 퇴직연금 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의 퇴직연금도 도맡아 운용할 수 있게 한 제도다.
기금형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되면 퇴직연금 운용 여건이 어려운 소규모 기업이 수탁법인에 운용을 맡겨 관련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수탁법인은 기업 안팎 재원을 끌어모아 운용 규모를 크게 키움으로써 장기투자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따라서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가 갖춰지면 이랜드파트너스는 이랜드 그룹 내 퇴직연금 운용뿐 아니라 다른 기업 퇴직연금 운용도 맡을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국내 퇴직연금 적립금은 지난해 200조원을 돌파해 2030년 440조원을 넘어설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이와 관련 이랜드 그룹 관계자는 "먼저 그룹 직원 퇴직연금 운용에 집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국회에 계류된 개정법률안 통과 여부다. 국회 관계자는 "올 4월 중순 21대 국회의원 선거 종료 이후 5월말 20대 국회의원 임기 종료 사이 임시국회가 열려 그간 검토되지 못했던 법안들이 통과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일각에선 회의론도 제기된다. 한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다른 기업 수탁법인에 퇴직연금 운용을 일임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을 수 있다"이라며 "연금 운용과 관련한 인식 자체가 바뀌어야 제도 마련 효과가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