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아파트를 짓고 다리를 놓고 공장을 건설한다. 이런 피조물에는 건설인의 피와 땀이 녹아 있다. 올해도 건설사들은 국내외 현장에서 의미 있는 결과물을 풍성하게 수확했다. 올해 가장 관심을 끈 분양 현장, 지도를 바꾼 해외 사업장, 주목할 만한 건축 및 토목 구조물 등을 소개한다.[편집자]
필리핀 수도 마닐라 서쪽 마닐라만 건너편에 위치한 바탄(Bataan)은 2차 세계대전의 아픈 역사를 가진 곳이다. 1942년 일본군이 미군과 필리핀군 포로 7만여명을 끌고 강제행군에 나서 폭행과 굶주림으로 1만여명을 죽인 '죽음의 행군'으로 유명하다.
지금은 필리핀 산업화의 중추로 자리잡고 있다. 지난 50년간 석유제품을 공급하며 이 나라의 에너지산업을 키워온 '페트론 바탄 정유단지(Petron Bataan Refinery, PBR)'가 중심이다. 이 곳은 이달 말이면 생산량을 2배로 늘리고 고부가 정유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필리핀 최대 정유단지로 재탄생한다.
낡은 설비를 친환경 현대식 정유시설로 개선하는 이 프로젝트는 한국 건설사 대림산업이 맡고 있다. 국내 업체가 동남아시아에서 수주한 프로젝트 중 금액 기준 사상 최대 규모의 사업이다.
▲ 바탄(Bataan)주 리마이(Limay) 지역에 위치한 '페트론 리파이너리 마스터 플랜 2단계' 사업지 내 중질유 열분해 시설(DCU) 전경(사진: 대림산업) |
◇ 동남아 최대수주 프로젝트..'이달 말 완공'
리마이(Limay) 페트론 바탄 정유단지는 수 십년 간 필리핀 에너지 산업을 이끌어왔다. 1961년 연산 2만5000배럴 규모로 처음 설립된 후 지금까지 수 차례 설비 개선을 거쳐왔다.
현재는 중동 지역에서 원유를 공급 받아 휘발유, 경유, 항공유, 산업용 연료유, 액화석유가스(LPG)를 비롯해 벤젠, 톨루엔, 혼합 자일렌, 프로필렌 등 하루 18만배럴의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해 필리핀 전역에 공급하고 있다.
이 단지에서는 2011년 4월부터 총 20억 달러를 투입해 기존 공장을 현대식 설비로 신·증설하는 '페트론 리파이너리 마스터 플랜 2단계(Petron Refinery Master Plan Phase 2 (RMP-2)' 사업이 대림산업에 의해 시작됐다. 현재 공정률은 99.99%, 모든 설비의 설치를 완료하고 최종 점검을 하는 단계다.
이 프로젝트는 늘어나는 필리핀내 수요를 충족시키는 한편 다양한 고부가가치 석유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추진됐다. 설비의 핵심인 중질유 열분해 시설(DCU, delayed coker unit)을 일산 3만7500배럴로 증설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대림산업은 2011년 4월 페트론으로부터 이 프로젝트에 대한 프로세스 통합서비스 및 기본설계, 구매조달서비스와 같은 선행 부문을 우선 수주했다. 이어 그 해 11월 상세 설계, 구매조달, 공사에 이르는 EPC(설계·구매·시공) 사업 전반을 일괄도급 방식(Lump-Sum Turn Key)으로 계약해 수행하고 있다.
▲ 페트론 바탄 정유단지 위치도 |
◇ '기록적 폭우' 악조건 뚫고 사업 완료
이번 사업은 동남아시아에서 국내 업체가 수주한 프로젝트로 가운데 수주금액 기준 역사상 최대 규모다. 더욱 의미 있는 것은 국내 업체가 기존에 강점을 가진 EPC뿐 아니라 정유공장이 최적의 프로세스로 가동될 수 있도록 여러 라이센서(Licensor)들의 기술을 통합하는 선행작업부터 참여한 것이다.
현장을 책임지고 있는 유재호 대림산업 상무는 "프로세스 통합이나 기본설계는 높은 기술 진입장벽 때문에 세계적인 선진업체들만 경쟁하던 고부가가치 분야"라며 "선행 부문을 따냈기 때문에 기자재 발주의 90%를 국내 업체에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프로젝트 발주처인 페트론은 대림산업에 수의계약으로 공사를 맡겼다. 기존 수행했던 '페트론 FCC' 프로젝트와 '페트론 BTX' 프로젝트 등 정유플랜트 공사에서 신뢰를 얻었던 게 밑바탕이 됐다. 대림산업의 업역이 건설부문와 석유화학부문으로 이뤄진 것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이 프로젝트는 환경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선진국들에게 적용되는 '유로(Euro) 5 글로벌 공기배출 기준'에 맞춰 공사를 수행한 것이다. 2011년 11월 본격 시작한 공사를 36개월만에 끝낸 것도 업계에서는 기록적인 일로 꼽힌다.
유 상무는 "강렬한 햇빛과 무더운 날씨로 현장 여건은 만만치 않았다"며 "작년 현장에는 한 해 4300㎜에 달하는 필리핀 기후관측 사상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지만 약속한 공기를 맞추기 위해 설계와 시공을 병행하고 하루 2교대로 작업을 진행해 공사를 마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페트론 리파이너리 마스터 플랜 2단계' 사업지 내 촉매분리공정(FCC) 설비 전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