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 지부를 두고 있는 한 건설사가 현지 상주 직원을 제3국으로 옮겼다죠. 이스라엘과 이란의 무력 충돌로 안전 우려가 커졌기 때문입니다.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국제 사회를 흔들고 있죠. 중동은 국내 건설사들 해외 사업의 '텃밭'으로 여겨지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뿐만이 아니랍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재정 여건 악화도 건설업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특히 전체 사업비가 1조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되는 사우디의 '네옴시티'의 발주 규모가 축소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당장 한창 공사가 진행돼야 할 사업도 제동이 걸린 모습이 보이기도 합니다.

이란-이스라엘 '확전'에 불확실성↑
중동은 국내 건설사의 알짜 해외사업지입니다. 지난해까지 우리나라의 해외건설 누적수주액은 1조달러에 달했는데 이 중 절반인 5008억달러가 중동에서 확보한 금액입니다.
최근 해외건설에서 중동 의존도를 낮추고는 있지만 여전히 전체 수주액의 30~40%가 중동에서 발생합니다. 2021년과 2022년에는 각각 연간 해외건설 수주액에서 중동이 차지하는 비율은 36.7%, 29.1%였습니다. 2023년에도 이는 34.3%였습니다.
그러나 지난해에 다시 중동에서 수주 규모가 커졌습니다. 수주액(371억1429만달러) 중 49.8%(184억9421만달러)가 중동에서 따낸 실적입니다. 올해도 지난달까지 116억2248만달러의 해외건설 수주액 중 중동 수주실적만 56억4174만달러입니다. 전체 수주액에서 중동이 차지하는 비율이 48.5%입니다.
이처럼 중동에서 사업을 발주하는 규모에 따라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 수주 실적도 영향을 받습니다. 최근 이란과 이스라엘의 무력분쟁이 국내 건설사들에 악재인 이유입니다.
지난 22일 미국의 군사개입 선언과 함께 이뤄진 이란 내 핵기지 타격 등으로 중동 정세는 더욱 불안정합니다. 이란의 대응 양상에 따라 전쟁이 확대될 우려가 나옵니다.
김화랑 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이란 등은 주요 분쟁 지역으로 이들 지역에서의 분쟁 확산과 무장 집단의 분열 등 복합적인 위기가 이어질 전망"이라면서 "지정학적 리스크와 공급망 불안, 관세 정책 등 다양한 요인으로 글로벌 건설시장의 불확실성이 크게 증대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습니다.

이란 옆 이라크에는 사업장 다수
국내 건설사들이 이란에서 공사를 진행하는 현장은 지금은 없으나 인근 국가에는 사업장이 다수 있습니다. 특히 이란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라크에 대형 사업장이 많습니다.
이라크에 국내 건설사의 대표적인 현장은 한화 건설부문이 맡은 비스마야 신도시입니다. 이라크 바그다드 동남쪽 10㎞ 지점에 10만여가구를 짓는 신도시 조성사업으로 계약금액이 104억달러에 이릅니다. ▷관련기사: 한화 건설부문, 이라크 비스마야 7만가구 마저 짓는다(2024년 12월6일)
이 외에도 대우건설이 이라크 신항만조성공사를 수행 중이고 향후에 이라크 군사기지 관련 사업 수주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현대건설도 바스라 정유공장 고도화설비, 카르발라 정유시설 관련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이란 의회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것을 의결하면서 공사 차질이나 원자잿값 상승도 우려됩니다. 페르시아만을 거쳐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원유를 수출하는 쿠웨이트를 비롯한 다수 국가의 원유 수출로가 막히기 때문입니다. 도로 공사에 주로 쓰이는 아스팔트 등 원유 가격에 민감한 원자재들이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 이라크와 쿠웨이트, 카타르 등은 운송 차질이 불가피 해 유가는 80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면서 "다만 충돌이 국지전에 머문다면 유가는 공급영향에 따라 55~75달러 수준에서 머물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이라크에 사업장이 있는 건설사 관계자는 "당장은 현지 사업에 지장이 있지는 않지만 많은 건설사가 확전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도 크지 않지만 정말로 봉쇄하면 유가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큰손' 사우디는 저유가에 고전
이란과 이스라엘 전쟁 영향으로 유가 급등 가능성도 관측되나 중동 내 큰손으로 꼽히는 사우디의 발주 여건도 좋지 못합니다. 저유가가 지속되면서 재정이 악화했기 때문입니다. 해외건설업계 관계자는 "전쟁으로 최근 유가가 오르긴 했으나 그동안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면서 "사우디는 월드컵이나 동계 올림픽 등 국제적 행사도 잡혀 있어 사업의 우선 순위 조정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짚었습니다.
사우디는 올해 1분기에 587억리얄(22조원)의 재정적자를 기록했습니다. 사우디의 자금줄인 국영기업 아람코의 올해 1분기 순이익은 260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273억달러) 4.8% 줄었습니다.
사우디 정부의 대규모 재정 적자와 아람코의 실적 부진에 '네옴시티' 사업도 전체적인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네옴시티는 홍해와 인접한 사막에 170㎞의 선형 도시를 짓는 '더 라인' 사업과 바다 위 팔각형 첨단산업단지 '옥사곤', 산악 관광단지 '트로제나' 등을 짓는 게 주요 내용입니다.
네옴시티의 총 사업비는 초기 5000억달러에서 1조5000억달러까지 치솟았지만 이 같은 금액을 사우디가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입니다.
국내 건설사들도 네옴시티 사업에 참여하고 지속적으로 나올 발주 물량을 따내려 했으나 쉽지 않아 보입니다. 지난 2022년 국내 건설사가 수주한 '네옴시티 러닝 터널'은 공사가 멈춘 정황이 확인됩니다.
삼성물산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네옴시티 러닝터널의 완성금액은 2022년 6월 첫 수주 이후 지난 2023년 말에 1247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계약액인 6255억원 중 약 20%에 해당합니다.
이후 완성금액은 꾸준히 증가했습니다. 공정률이 올라간 겁니다. 지난해 말 삼성물산의 네옴시티 러닝터널 완성공사금액은 2671억원으로 공정률이 41%에 도달했습니다.
그러나 올해 1분기에도 공정률은 41%에 머물렀습니다. 3개월 동안 공사에 별다른 진전이 없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올해 말이 완공 시점이나 이를 지키기는 공기가 빠듯합니다. 삼성물산 측은 "진척이 더디다"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국내 건설사들이 지난해까지 사우디에서 수주한 금액은 1775억5412만달러입니다. 전체 중동 수주액에서 35.4%가 사우디가 발주한 금액인 만큼 사우디의 좋지 못한 재정 상황도 국내 건설사의 먹거리를 줄일 수 있는 요소입니다.
앞선 해외건설업계 관계자는 "전쟁으로 중동에서의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면서 기존에 계획한 이 일대 국가들의 발주 물량이 취소되거나 연기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습니다. 중동을 텃밭 삼아온 국내 건설사들이 어떻게 대응할지 지켜봐야 할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