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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시 있다→없다’..주택공급 40년 돌아보니

  • 2015.01.23(금) 10:33

역대정부 공급 목표 달성 공약은 '빈말'
박근혜정부, 40년만에 공급확대→공급축소

“서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주택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합니다. 못해도 500만 가구는 지어야 됩니다.” 1980년 8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입법회의는 향후 10년간 500만 가구 건설을 결정했다. 당시 주택재고 물량이 500만여 가구인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조치였다. 정통성 위기를 겪고 있던 신군부로서는 체제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던 것이다.

 

유신정부 250만 가구, 5공화국 500만 가구, 6공화국 200만 가구, 문민정부 285만 가구 등.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는 목표(희망) 주택공급량을 문패처럼 내걸었다. 주택공급이 절대 부족한 상황에서 공급 확대는 절체절명의 과제였던 것이다. 또 국민에게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시켜 주는 것만큼 효과적인 정책도 없었다. 하지만 공급목표가 제대로 달성된 적은 한 차례도 없었다. 목표치는 그저 '숫자'에 불과했던 셈이다.


◇ 5공화국 : 500만 가구 목표

 

1970년 이전까지만 해도 정부가 앞장서 주택공급을 추진하지는 않았다. 의식주 가운데 ‘식’과 ‘의’에 우선순위가 밀린 탓이다. 3공화국 정부는 유신 직후 비상국무회의에서 250만 가구 건설을 골자로 한 주택건설 10개년 계획을 발표한다. 1972년부터 1976년까지 100만 가구를 짓고, 1977년부터 1981년까지 150만 가구를 건설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주택건설촉진법’을 제정해 민간업체들의 시공계획과 분양을 직접 관리하고 나섰다. 하지만 10년간 공급된 가구수는 목표량의 75%인 187만6665가구에 그쳤다.

 

주택공급 부족이 사회불안 문제로 대두되자 5공화국은 1980년 당시 주택재고량과 맞먹는 500만 가구 건설계획(1981~1991년)을 입안한다. 하지만 이 계획은 5공화국 정부가 정치경제적 위기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긴축정책을 쓰면서 수포로 돌아갔다. 이 계획은 146만 가구 공급(1986년까지)으로 축소되었고 다시 143만 가구로 줄었다. 실제 1982년부터 1986년까지 공급된 가구수는 116만 가구에 그쳤다.


◇ 6공화국 : 1기 신도시 5곳


6공화국은 1980년대 말 집값과 전세 가격이 치솟으면서 사회 불안이 증폭되자 신도시 건설을 포함해 200만 가구 공급계획을 발표한다. 1기 신도시는 토지수용과 함께 곧장 분양에 들어갔다. 신도시 공급 2년차인 1990년에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인 한해 75만 가구를 공급했다. 문민정부는 공급량이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공급목표에 사활을 걸지는 않았다. 실제로 1993년부터 1997년까지 신경제 5개년 계획기간 동안 공급목표는 285만 가구였지만 실제 공급량은 312만 가구나 됐다. 공급물량이 집중되면서 주택보급률도 95%(97년)까지 올라섰다. 10여년만(85년, 69.8%)에 25%포인트 늘어난 것이다.

 

국민의 정부는 2002년 주택보급률 100% 달성을 위해 매년(1998년~2002년) 50만~55만 가구 공급계획을 세웠으며 이 기간 중에 공공임대 50만 가구를 짓기로 했다. 정부 주택정책의 기조가 분양에서 임대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만성적인 공급 부족에서 벗어난 만큼 서민들의 주거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인식에 따른 조치다.

 


◇ 참여정부 : 2기 신도시 10곳


참여정부는 이 같은 정책 방향을 계승해 2003년부터 2012년까지 ‘국민임대주택’ 100만 가구를 포함해 임대주택 150만 가구 건설을 목표로 세웠다. 이는 전체 공급 목표 물량(500만 가구)의 30%에 해당한다. 참여정부 때는 집값이 폭등하면서 부동산과의 전쟁을 벌인 시기다.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 손에는 칼(규제)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당근(공급)을 들었다. 공급 부족을 집값 상승의 주원인으로 파악하면서 2기 신도시 건설을 본격화했다.

 

수도권 2기 신도시는 판교, 화성 동탄 1ㆍ2, 김포 한강, 파주 교하, 광교, 양주, 위례, 고덕 국제화, 인천 검단 등 총 10개에 달한다. 1기 신도시(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의 2배에 달한다. 총 가구수도 수도권 2기 신도시가 60만 가구로 1기 신도시 29만 가구보다 2배나 많다. 참여정부 말기 집값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이는 공급 확대정책이 먹혔다기보다 과잉유동성을 잡기 위해 내놓은 대출규제(DTI)가 효과를 발휘한 데 따른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 이명박 정부 : 미분양 줄이기


이명박 정부는 2008년 9월 서민주거 안정을 위해 2018년까지 전국에 ‘보금자리’ 주택 150만 가구를 공급하기로 하고 2012년까지 수도권에 32만 가구(전국 60만 가구)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린벨트를 풀어 저렴한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나선 것. 하지만 토지주택공사(LH)의 자금난과 민간 건설경기 위축으로 인해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이명박 정부 임기 내에 사업승인이 떨어진 물량은 35만 가구에 그쳤고,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명맥마저 끊겼다.

 

이명박 정부 때는 참여정부 시기 공급 과잉과 금융위기 후폭풍으로 미분양이 급증하면서 신규 공급물량이 30만가구대로 줄었다. 미분양 아파트는 2006년 7만3772가구에서 2007년 11만2254가구로 늘어나더니 급기야 2009년 3월에는 16만5641가구까지 치솟았다. 정부는 미분양에 따른 건설사 줄도산을 막기 위해 여러 차례 미분양 대책을 내놓는다. 미분양 아파트는 작년 4월 4만 가구대로 떨어졌다.

 

◇ 박근혜 정부 : 신도시는 없다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 후반기부터 시작된 전·월세난을 해소하기 위해 ‘행복주택’을 간판 주택정책으로 내세웠다. 대학생과 신혼부부의 주거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시세의 60~80%에 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공급물량도 다른 정부 때의 뻥튀기 목표와 달리 5년 간 20만 가구로 잡았다. 하지만 당초 철길 위에 짓기로 했던 방안은 건축비와 안전, 소음 등의 문제로 용도폐기됐다.

 

박근혜 정부는 유신 이후 40년간의 공급 확대 정책을 접고 공급 축소 정책으로 돌아섰다. 집값이 하향 안정되면서 주택에 대한 관념이 소유에서 거주로 바뀌고 있고, 저출산 고령화 인구구조를 반영한 것이다. 정부는 공급물량을 줄이기 위해  공공분양 물량을 줄이고 신도시 개발도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민간에 대해서는 보증수수료율 차등, 후분양 등의 유인책을 내놨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통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는 부동산 규제가 대거 풀리면서 신규 분양시장이 살아나자 건설사들이 앞다퉈 공급물량을 쏟아내면서 50만 가구를 넘어섰다. 정부의 공급 목표치(37만 가구)를 한참 넘어선 것이다.

 

■주택 인·허가(공급) 물량

노태우 정부
1990년 75만378가구
1991년 61만3083가구
1992년 57만5492가구

김영삼 정부
1993년 69만5319가구
1994년 62만2854가구
1995년 61만9057가구
1996년 59만2132가구
1997년 59만6435가구


김대중 정부
1998년 30만6031가구
1999년 40만4715가구
2000년 43만3488가구
2001년 52만9854가구
2002년 66만6541가구

노무현 정부
2003년 58만5382가구
2004년 46만3800가구
2005년 46만3641가구
2006년 46만9503가구
2007년 55만5792가구


이명박 정부
2008년 37만1285가구
2009년 38만1787가구
2010년 38만7000가구
2011년 54만9594가구
2012년 58만6884가구

박근혜 정부
2013년 44만116가구
2014년 51만5251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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