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현장에서의 하도급 대금 미지급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정부가 시행키로 한 '하도급 직불제'를 두고 종합건설업계와 건설노동단체, 그리고 전문건설업계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올해 공공 발주 공사대금 16조원을 원청업체(종합건설 중심)를 거치지 않고 하청업체(전문건설 위주)에 직접 지급키로 한 것에 대해 전문건설업체들은 환영하고 있지만 원청업체인 종합건설사들과 건설 노조는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
▲ 세종시 한 건설 현장에서 한 레미콘 기사가 차량을 정비하고 있다. /이명근 기자 qwe123@ |
회원사 대다수가 원청업체인 대한건설협회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7일 발표한 '하도급 대금 직불 확대 방안'과 관련해 "사회적 약자인 건설 근로자와 기계장비업자에 대한 체불 대책도 없이 하도급자만을 위한 직불 제도는 폐지돼야 한다"고 10일 밝혔다.
협회는 "하도급업체에 공사 대금을 바로 지불했다가 부도를 내거나 잠적하면 건설 근로자나 기계장비업자의 임금은 누가 책임져야 하냐"며 "관련 법령 체계에 반하고 사적 자치의 원칙을 심각히 훼손하는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협회는 이어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국기기관이 나서 직불을 강제하는 경우는 없다"며 "현장 관리의 효율성을 저해하는 것은 물론 하도급자의 재정·관리 능력 부족으로 오히려 임금·장비대금 등 체불이 심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회원사 가운데 하청업체 비중이 높은 전문건설업계는 하도급 직불제를 적극 환영하고 있다.
대한전문건설협회 측은 "원청업체들은 하도급 공사 준공이 완료됐는데도 1~2년씩 대금을 지급하지 않거나 다음에 대금을 한꺼번에 정산한다는 등 여러 조건을 걸어두고 유보금을 남기는 불공정 행위가 만연해왔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하도급 직불제는 열악한 환경에 처한 중소 전문건설업체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소식"이라며 "대기업의 대금 미지급이나 지연지급, 어음·대물변제 지급 등과 같이 불법하도급 대금 지급행위가 차단돼 하도급 거래의 투명성이 강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가운데)이 지난 2월26일 오후 대한전문건설협회 광주광역시회 회의실에서 중소 건설업체들과 간담회를 열었다. (사진: 공정위) |
공정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하도급대금 미지급 행위는 3567건으로 전체 하도급법 위반행위 중 61%를 차지했다. 공정위는 "하도급 대금 직불 활성화가 올해 역점 추진과제"라며 "빠른 시일 내에 주요 공공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와 '하도급대금 직불제 확대 추진협의회'를 구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하도급 직불제가 원청업체와 하청업체간 불공정 행위 개선에는 도움이 될 수 있어도, 하도급 업체와 그 아래 납품업체나 건설 노동자간 불공정 관계는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은 다시 문제로 지적된다.
앞서 지난 7일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전국건설노동조합은 성명서를 내고 "건설 현장 임금 등 체불의 97%가 공공공사 현장에서 발생하고 있고 이중 상당수는 하청업체가 체불하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무슨 생각으로 하청사에 대금을 직불하겠다는 것인지 배경이 의문스럽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청 건설사가 공사장비 임대료와 임금, 자재대금을 체불하고 도망갈 경우 다단계 구조의 맨 끝에 있는 건설 노동자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게 된다"고 밝혔다. 직불제가 오히려 하청사의 부도나 법정관리, 자금난, 지불능력 불능 등으로 건설 노동자 피해를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종합건설업계와 전문건설업계 간의 갈등은 작년 '소규모 복합공사'와 관련한 국토교통부의 종합-전문건설 간 업역 허물기 과정에서도 나타난 바 있다.
정부는 전문건설업체가 직접 원도급 받을 수 있는 소규모 복합공사의 범위를 기존 3억원에서 10억원 미만으로 높이려다 종합건설업계가 반발하자 4억원 미만까지만 인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