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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강남 투기과열지구 과하지 않다

  • 2016.10.24(월) 14:11

"아직 팔 때는 아니라고 권해요. 강남 오른 거 보면 분당은 아직 저평가됐다고 볼 수 있거든요. 게다가 신도시도 벌쌔 생긴 지 25년짼데 한 5~10년이면 재건축 얘기가 나오지 않겠어요? 강남 규제 얘기가 나오지만 내년이 대선인데 정부가 부동산을 설마 죽이겠어요? (경기도 성남 분당구 정자동 H공인)

 

"남편들 직장이 불안해지니 '분양권 투자해서라도 수입을 확보해야 하나'라고 생각하나봐요. 운만 좋아 당첨되면 1000만~2000만원 웃돈을 챙길 수 있고, 웃돈이 안붙어도 계약을 포기하고 6개월만 있으면 1순위가 될 수 있으니 죄다 청약에 뛰어드는 거죠" (울산 남구 삼산동 D공인)

 

이쯤 되면 강남만의 문제일까 싶기도 하다. 정부는 서울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 단지의 분양 과열 및 가격 급등과 관련한 대응책 마련을 고심하는 중이다. 관건은 꺼내들 규제의 강도와 이에 따른 시장의 영향 범위다.
 
주택당국 입지는 좁아보인다. 국토교통부가 최근 1주일 사이 강남 규제와 관련해 내놓은 해명·참고자료들의 행간에는 "아니 당장 꼭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게 아니라, 일단 지켜보다가 정말 필요하다고 판단이 서면 살짝만 손대겠다"는 생각이 읽힌다.

 

'어렵게 살린 부동산 시장을 고꾸라뜨릴 순 없다'는 전제가 정부의 선택지를 줄인다. 그러니 규제를 내놓더라도 강남의 비정상적 과열만 살짝 끄집어 내 바로잡겠다는, 이른바 '핀셋 대책'이 가장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강남처럼 일부 시장에서 보이는 비정상적 과수요에 '선별적'으로 목줄을 거는 규제는 이미 마련돼 있다. 투기과열지구 지정이다. 지정된 지역에 한해서 ▲전매 제한(계약 후 최장 5년), ▲청약 1순위 자격 제한(2주택자 및 5년내 청약당첨자 배제) ▲재건축 조합원 지위 양도(讓渡) 제한 등을 두는 제도다. 주택담보대출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도 강화된다.

 

일각에서는 투기과열지구 지정이 과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분양권 전매제한 기간을 다소 연장하거나, 일정 기간 재당첨 제한을 두는 정도로 날을 무디게 해 가칭 '관리지구' '우려지구' 등으로 설정하는 변종 규제가 거론된다.

 

대상 지역을 한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장의 전방위적 침체 우려를 앞세워 신규아파트 분양시장만으로 더 규제 범위를 더 좁힌 뒷걸음질이다.

 

하지만 부작용을 너무 우려해 느슨한 규제를 채택 하는 것은 시장 과열 수습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강남 재건축은 청약시장 과열만 잠재워서 '비정상을 정상화'할 단계를 넘어섰다. 재건축 추진단지인 개포주공 1단지의 경우 3.3㎡당 8000만원을 넘었다. 분양권에 붙은 웃돈이 앞으로 재건축할 단지 시세를 끌어올리는 국면이다.

 

투기과열지구도 도입 당시에 비해 완화된 제도다. 정부가 주택 거래가 뚝 끊길까봐 가장 걱정하는 대목은 '재건축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에 대한 부분이다.

 

초기에는 조합설립인가와 사업시행인가일로부터 3년 이상 진척이 없고, 소유자가 5년 이상 보유한 경우 등에만 양도가 가능했지만 지난 2009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시행령 개정으로 제한기간이 1~3년 짧아졌다. 실수요에 기반한 거래는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다.

  

▲ 투기과열지구 지정이 거론되고 있는 서울 강남 중개업소 일대/이명근 기자 qwe123@

 

강남 주택시장이 문제가 되는 건 모두 강남을 바라보고 있어서다. 정부는 2개월 전 가계부채대책에 주택 공급조절 카드를 얹었다. 시장 위축이 우려되는 지역에 신규 아파트 공급 물량과 속도를 제어하면 빚을 내 주택시장에 진입하는 수요자들이 줄어 주택시장 유동성 범람을 막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강남 재건축은 정부 대책을 비웃기라도 하듯 더 달음질 쳤고, 주택시장 전반에 수요 진입 유인 역시 줄지 않았다. 오히려 고공행진하는 강남 집값이 수도권 전반 주택 수요자들에게 위협이 됐다. 더 늦기 전에 집을 사둬야 한다며 여전히 분양 아파트 청약에, 주택 구입에 목돈을 내걸고 있는 건 이미 전국적 상황이다.

 

강남이 전체 주택시장과 아예 따로 노는 '특수 시장'이라면 규제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강남이 끌고가는 주택시장 팽창이 우리 경제의 하방 리스크를 키운다면 그 연결고리를 단호히 끊어내는 게 맞다. 하지 않느니만 못한 '솜방망이'를 갖다 대는 건 시장에 '정부는 결코 부동산을 버리지 않는다'는 확신만 심어주는 일일 테다.

 

"버블은 한번 발생하면 자산 분배를 불평등화해 자원배분을 왜곡하는 등 경제적으로 큰 비용을 가져온다. 버블은 성장률을 높이는 효과는 있지만 이것은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고 반드시 반동적인 디플레이션 효과를 동반한다."

 

일본은 1993년 경제백서를 통해 '버블'을 이렇게 정의했다고 한다. 강남 집값이 거품이라고는 누구도 확언하기 어렵다. 하지만 주택당국이 겁내야 할 것이 당장의 시장 위축일지, 거품이 생긴 뒤 우리 경제가 맞닥뜨릴 수 있는 비극적 상황일지는 비교적 뚜렷하다. 일본의 경험에서 보더라도, 뒷감당은 또 누군가의 몫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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