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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문제는 그놈의 '핀셋'이다

  • 2017.07.31(월) 15:36

국지적 과열대책 한계 봉착
'집으로 돈 벌자'는 인식 깨려면

문 대통령은 "부동산 가격을 잡아주면 제가 피자 한판씩 쏘겠다"고 말했다. 곁에 있던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네, 알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지난 27일 저녁 청와대에서 가진 기업인들과의 호프미팅에서 구본준 LG그룹 부회장의 '피자 경영'을 소재로 환담을 나누다 나온 얘기였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치킨도…"라며 웃음을 더했다.

 

자리 성격과는 별개인, 좀 뜬금없는 얘기이긴 했다. 특히 최근 주택시장 분위기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여유있어 보이는 분위기를 불편하게 보는 시각들도 나올만 했다. 대통령이 이렇게 농담처럼 얘기할 정도로 부동산 시장 상황이 한가한가? 대통령이 경제정책 수장, 청와대 참모들과 주고받는 농담 속에 집값 불안의 심각함은 빛이 바랬다.

 

주택당국은 말에 오르지도 못했다. 김 부총리만 있던 자리라서 그랬을진 몰라도. 국토교통부는 전선 맨 앞에서 주택시장을 다루는 부처다. 피자 한 판이 아니라 뛰는 집값을 보면 사생결단을 요구해도 시원찮은데 아무 언급도 없었다. 입 센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지난 6월 취임한 이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다주택 투기 척결'을 외치고 있는 게 무색했다.

 

▲ 서울 강남에 지역개발 사업 추진을 축하하는 내용이 담긴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문 대통령이 농으로 포장할 정도인 주택시장 불안 이슈에 대한 말랑말랑한 문제의식은 국토부의 '나이브(naive)'한 진단에서 비롯한 것일 수 있다. 김 장관은 6.19 대책 보름여 뒤인 지난 7일 과열이 잦아들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 "그렇게 판단하기는 이르다. 대책 이후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시장의 진정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시장은 효과가 없었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고 있다. 집값 상승세는 대책 전보다 더 가팔라졌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주 서울 아파트값은 전주 대비 0.57% 상승했다. 올해 주간 변동률 최고다. 대책 전 최고는 6월 둘째주(6월9일) 0.45%였다. 대책 후인 6월 다섯째주(6월30일) 0.16%까지 둔화됐지만 이미 7월 접어들면서부터 상승률은 다시 높아지고 있었다. 오를 곳은 더 오른다는 인식만 부풀었다.

 

결국 문제는 그놈의 '핀셋'이다. "과열은 국지적이다", "전국 평균은 강보합 정도고 지방이나 수도권 외곽은 오히려 급랭이 우려된다"는 진단이 전제로 깔렸기 때문이다. 집값이 빠지면 과다한 가계부채가 부실화할 수 있다는 금융당국 걱정도 한몫한다. 작년 11.3 대책때부터 정부의 과열 처방이 한계를 가진 이유다. 매번 과열 부위만 솎아내는 '핀셋 대책'이 적당하다는 쪽으로 정부 결론이 나온 배경이다.

 

"과열이 더 심해지면 더 강한 대책 내놓을 것"이라는 정부 엄포도 이제 신뢰를 잃은 동어반복이 됐다. 시장은 핀셋을 들이대는 것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을 분위기다. 강남 재건축만, 일부 분양시장만 과열이라고 보기 어렵다. 정도 차이만 있을 뿐 '이렇게 집값이 뛰는데 집으로 돈 못벌면 나만 바보'란 인식은 이미 퍼질만큼 퍼져있다.

 

▲ 서울 성동구 한 고급 아파트 견본주택에서 관람객들이 단지 모형을 보고 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정부는 첫 대책을 내놓은 지 두 달도 되지 않아 추가 대책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한다. 열기가 넘치는 시장에 수요 규제가 필요하다는 진단은 틀리지 않다. 공급을 늘리자는 주장을 따르는 게 당장 상책도 아니다. 돈이 넘치는 만큼 비싼 집이 더 비싸게 팔리는 시장이어서다. 관건은 주택시장에서 계속 한몫을 볼 수 있다는 투자 심리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느냐다.

 

지금까지처럼 미세조정에만 국한하면 시장은 다시 또 '풍선효과'를 찾아 나설 것이 뻔하다. 다주택자만 '투기세력'으로 몰고, 또 지역을 선정해 집이든 분양권이든 당장 거래를 제한하거나, 청약 재당첨을 금지하는 식의 대증요법은 그래서 한계를 넘지 못한다. 집을 투자로 보는 시각을 깨려면 시장의 본질을 바꾸는, 그만큼 '긴 호흡'을 가진 '한 칼'이 필요하다.

 

김 장관 말마따나 집을 "사는 것이 아닌 사는 곳"으로 만드는 데는 선결조건이 있다. 단기 시세차익에 양도소득세를 더 무겁게 물리는 것이다. 집으로 돈을 벌어 더 오를 집을 사는 게 아니라, 일해서 번 돈 모아 내 가족이 살 수 있는 집을 마련할 수 있게 하면 된다. 집값이 좀 빠져야 집도 장만할 것 아니냐는 이들도 수두룩하다. '주거 사다리' 구축이 이번 정부에서는 제발 성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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