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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재건축 매표(買票), 면죄의 자격

  • 2017.10.17(화) 08:52

▲ GS건설이 서울 서초구 잠원동 한신4지구에서 수주 부정행위 신고센터를 직접 운영해 수집한 금품살포 증거물.(사진: GS건설)

 

"치가 떨리는 배신이다. 똑같이 하고서는 혼자 불고 빠져나갔다."

 

뜨악할 필요 없다. 3년 지난 얘기다. 건설사들이 공사구간을 나눠먹기로 사전에 모의한 호남고속철 사건에 4355억원이라는 건설관련 사상 최대규모 담함 과징금이  떨어졌다. 28개 건설사가 걸려들었다. 그런데 가장 많은 과징금을 내야했던 업계 수위 S건설사에는 과징금이 한 푼도 부과되지 않았다. 검찰 고발 명단에서도 빠졌다.

 

이 건설사는 담합을 주도했을 뿐 아니라 가장 깊숙히 개입했고 또 가장 많은 물량을 따냈다. 그래서 당시 공정위 조사에 따라 건설사중 가장 많은 836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돼야 했다. 하지만 자진신고 동작도 가장 빨랐다. 1등으로 담합사실을 스스로 고백하면서 면죄부를 받았다.

 

리니언시 제도(자진 신고자 감면 제도)는 자진 신고한 범죄에 대해 처벌을 덜어주는 제도다. '부당한 공동행위의 금지를 규정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과 관련해서는 1순위로 자진 신고할 경우 과징금 100%를, 2순위 신고자는 50%를 면제해준다.

 

S사의 발빠른 고백에 다른 건설사들은 비난을 쏟아냈다. 이익은 이익대로 챙기고 영리하게 리니언시까지 이용해 죗값도 치르지 않게 했다는 것이다. 특히 들러리 역할만 했던 중소 건설사 반발이 심했다. S사가 굴지 대기업이다보니 대관 첩보도 빨라 자신들은 생각도 못한 리니언시가 가능했다는 얘기였다.

 

▲ 지난달 28일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열린 서울 서초구 반포 주공1단지 시공사 선정 총회장에서 한 조합원이 투표함에 기표 용지를 넣고 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최근 한 재건축 수주 현장에서도 묵직한 고백이 나왔다. 지난달 부동산시장 최대 이슈였던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 1단지 시공사 선정총회 하루전 나온 '도시정비 영업의 질서회복을 위한 GS건설의 선언'이라는 개과천선(改過遷善) 반성문이다. 누가 시키지 않은 스스로 낸 반성문이다.

 

"최근 재건축 등 도시정비사업 수주전에서 건설사의 과잉영업 등의 문제로 논란이 되고 있고, 그 후진성을 지적 받고 있는 점에 대해 업계의 일원으로서 깊은 책임을 통감한다..(중략)..수주전에서 실패하는 일이 있더라도 관계자들의 위법사례가 없도록 지도와 단속을 철저히 이행하겠다"

 

선언은 실행으로 옮겨졌다. GS건설은 지난 15일 시공사를 선정한 한신 4지구 현장에서 '불법 매표(買票) 시도 신고센터'를 운영했다. 총회전 상대방은 물론 자사의 불법 행위도 확인되면 신고해 달라고 조합원들에게 요청했다. 그리고 총회 직후 그 신고 접수 실적을 공개했다.

 

5만원짜리 현금 다발, 상품권, 명품 가방, 숙박권, 화장품, 인삼 등 각종 금품이 경찰 수사 증거품처럼 신고내역과 함께 낱낱이 공개됐다. 건설업계 재건축 수주전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국토교통부도 관련 소식을 접하고 확인 작업에 착수한 상태다.

 

▲ GS건설이 공개한 상대측 재건축 조합원 특별관리자에 대한 내역(사진: GS건설)

 

GS건설의 고백을 두고도 건설업계에는 뒷말이 많다. 재건축 수주 경쟁에서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은 건설사가 이럴 자격이 있느냐"는 말도 나온다. 신고 실적을 밝힌 것도 스스로에 대한 고해라기보다 상대의 잘못을 고발한데 무게가 실리다보니 순수성이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토목 담합 때도, 이번 재건축 금품살포도 고백 당사자가 면죄부를 받을 자격이 있느냐는 판단은 여전히 서질 않는다. 하지만 관행처럼 이어져오던 토목 수주사업의 담합 구태는 리니언시가 도입되면서 보기 어려워진 것도 사실이다. 상대를 믿고 짬짜미를 했다가 언제고 뒤통수를 맞을 수 있어서다.

 

주택당국이 아무리 제재를 가하고 단속을 한다고 나서도 그때 뿐이었던 것이 그동안의 재건축 시장이다. 이 사업을 둘러싼 건설업계의 피 튀기는 수주경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번 GS건설의 고백이 그 진정성을 인정받고, 그동안의 구태를 종식시킬 수 있을지 여부는 누구보다 앞으로의 GS건설 자신에게 달려 있다. 비록 지금 당장 욕을 먹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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