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집값이 일본 도쿄 집값보다 1억2300만원 비싸다."
포항 지진 만큼이나 지난 주말 온라인 세상을 달군 소식인데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 박광온 의원(경기 수원정)이 국회 입법조사처에 의뢰 분석해 보도자료로 내놓은 숫자입니다.
국내외 다른 도시들과 함께 두 도시의 '주택 중위가격'을 비교한 것이랍니다. 서울이 4억3485만원으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는데, 이걸 일본 수도인 도쿄의 주택 중위가격 3억1136만원과 비교해봐도 1억2349만원이나 높다는 게 요지였습니다. 보도자료 제목이 그랬죠.
박 의원은 주택을 마련하는 데 걸린 기간도 서울이 도쿄보다 4.5년 더 길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여기에는 통계청의 '2인 이상 비농가가구 도시가구 연평균소득(4728만원)을 썼는데요. 이걸 한푼도 쓰지 않고 9.2년 모아야 서울 중위가격 주택을 살 수 있다는 거였죠. 도쿄는 이 기간이 4.7년이라는 거고요.
서울과 도쿄를 비교해 낸 의원실 보도자료를 전한 기사에는 수없는 댓글들이 달렸습니다. "서울 집값 미쳐도 단단히 미쳤어", "진짜 서울 해도 너무해" 류가 많습니다. 집없는 젊은 사람들 입장에선 속상한 소식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일본 동년배들보다도 내 집 마련이 더 어렵다는 얘기잖아요. 우리가 또 일본만 못한 건 못 참고 그렇잖습니까.
▲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
그런데 이걸 보고 있자니 과연 그럴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서울이 집값이 도쿄보다 비싸다?' 얼핏 우리나라 '서울특별시'와 일본의 '도쿄도' 사이에는 행정구역 상으로 차이가 크다는 기억도 떠올랐거든요.
서울은 25개 '구(區)'라는 동등한 행정단위로만 구성된 도시입니다. 면적은 605.25㎢, 인구는 작년말 기준 1020만4057명이죠.(서울시 홈페이지 참고)
하지만 도쿄는 서울과는 형태가 다르죠. 도쿄도(東京都, とうきょうと)는 23개 특별구와 26시(市)·5정(町)·8촌(村)으로 이뤄진 더 광범위한 행정구역입니다. 여기서 '도'도 우리나라 '도(道)' 단위와도 좀 다른 개념입니다.
일반적으로 서울과 맞비교 되는 것은 도쿄 시내에 23개구로 이뤄진 '구부(區部)'입니다. 도쿄도 홈페이지에 '구부'는 올해 1월1일 기준 면적 626.7㎢, 인구는 925만6625명이라고 나옵니다. 서울보다 넓이는 3% 가량 크지만 인구는 9% 정도 적습니다.
하지만 도쿄도 전체, 그러니까 구부 서쪽편 26개 시와 도쿄 앞바다 도서지역 읍·면단위라 할 수 있는 정·촌 등을 합치면 달라집니다. 면적은 2191㎢, 인구는 1341만5271명이나 됩니다. 면적은 서울의 3.6배로 늘어나지만, 인구는 31%만 더 커지네요.
▲ 일본 도쿄도 행정구역. 자주색 빛이 구부, 나머지가 시·정·촌부 (자료: 도쿄도 홈페이지) |
집값과 가장 상관관계가 큰 인구밀도로 비교해 볼까요? 서울은 1만6859명/㎢이나 되지만 도쿄도는 6169명/㎢ 입니다. 도쿄 시(23개구)만 따지면? 1만4770명/㎢로 계산이 되네요.
그래서 물었습니다. 박 의원실에도, 입법조사처에도요. "서울이랑 비교한 도쿄는 뭘 기준으로 삼은 것인가요? 도쿄시인가요? 도쿄도인가요?"
금방 확인을 해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양쪽이 느닷없이 '핑퐁게임'을 시작 하네요.
우선 입법조사처 담당 조사관 말입니다. "박 의원실 통해 확인해달라. 이게 공개보고서가 아니라 개별 요청이 들어온 것이라 의원실에만 제공하게 돼 있다. 자료 설명은 의원실에 했다. 자칫 민감할 수 있는 부분도 있으니 양해해 달라." (오잉? 민감?)
박 의원실에서 물으니 또 공을 떠넘깁니다. "자료는 입법조사처에서 만들어 준 것이다. 그쪽에서 아직 확인 답변을 못받았다." (얼씨구? 저쪽서는 이미 의원실에 다 설명했다는데?)
▲ 박광온 의원실이 19일 배포한 보도자료 내 서울 및 비교도시 현황. |
어느 쪽 답변으로도 이 자료에서 나온 도쿄 집값의 범위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서로 공을 미루는 과정에서 이 자료 내에 제시된 도쿄를 포함한 해외 도시들의 주택가격과 구입 가능 연수에 대한 출처는 겨우 확인 했습니다 .
출처는 '퍼포먼스 어번 플래닝(Performance Urban Planning)'이라는 뉴질랜드 소재 민간 주택시장 연구기관이었습니다. '집값 거품(버블)과 구입 가능한 저렴주택(affordable housing)' 등에 대해 주로 도시들을 비교해 시기별로 자료를 내놓는 기관이더군요.
여기서 인용 자료인 '2017년 국제 인구통계적 주택구입가능성 조사(Demographia International Housing Affordability Survey: 2017)'를 훑어보니 어이없는 답이 나옵니다. 도쿄시도 도쿄도도 아니었거든요.
박 의원실이 '도쿄'라고 표기한 곳은 '도쿄-요코하마 주택시장'이라고 나와있습니다. 보고서 내 구역 설명에는 "3800만 인구의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권역으로 도쿄도와 가나가와, 사이타마, 지바현을 포함한다"고 설명돼 있네요.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과 경기도, 인천 등 수도권뿐 아니라 면적으로는 충청·강원권 일부까지, 인구로는 전 인구의 4분의 3을 포함하는 권역이 되는 규모입니다. 이걸 서울과 비교했다고 하니 맥이 탁 풀리더라고요.
이 기관의 분석 보고서를 더 뜯어보니 중위가격 집(39만7600달러, 4억3700여만원)을 사는데 5.7년이 걸린다는 뉴욕도 가관입니다. 뉴욕에 뉴저지, 필라델피아 등까지 연결한 '뉴욕 권역'을 일컫는 표현이었네요.
▲ '퍼포먼스 어번 플래닝(Performance Urban Planning)이 발간한 '2017년 인구통계학적 주택구입가능성 조사(Demographia International Housing Affordability Survey: 2017)' 보고서 각주에는 "흔히 말하는 도쿄도를 도쿄권역과 혼동하면 안된다. 도쿄도는 권역 인구 3분의 1만 차지하는 지역이다. 권역 정의 오류는 대중적으로뿐만 아니라 학술적으로도 틀린 인구통계 분석을 유발한다. 옛 도쿄시인 23개 구부는 도쿄도 내에 있으며 도쿄도 인구의 약 70%를 인구의 차지한다."고 적혀있다. |
주말을 달궜던 "도쿄 집값이 서울 집값보다 1억2349만원, 거의 30% 싸다"는 소식에 대한 의문은 이렇게 허탈하게 풀렸습니다.
박 의원이 국회 입법조사처 고급인력들에게 의뢰해 이런 자료를 낸 것은 의도가 있어 보입니다. "서울 집값이 이렇게나 비싸다" 그러니 "좀 떨어뜨릴 만한 규제가 더 필요하다"라는 것이겠지요. 얼마 전 보유세 인상을 거론한 것도 여당에서 제3정책조정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 의원이었죠.
기자는 여당과 정부의 주택정책 방향성에 대해 당장 가타부타 판단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국회의원이라는 입법 기관이 이런 식으로 사실을 호도하는 게 맞을까요? 그렇게 입법된 제도는 오히려 부작용만 더 크게 만들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아도 문재인 정부에서 다주택자들은 주택정책의 '적'으로 몰려 있습니다. 균질한 통계자료와, 정확한 분석이 있어야 보유 주택에 뜻하지 않은 규제를 받게되는 쪽도 납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설픈 여론몰이는 역풍을 맞기 마련입니다.
아, 뒤늦게 보니 기사 댓글에는 이런 말도 보이네요. "아이구, 이 기X기들. 국X의원이 불러주면 다 쓰냐? 도쿄 23구 벗어나면 죄다 논밭인데." 네. 그래요. 저도 입맛이 씁니다.
▲ 자료: Performance Urban Plann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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