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비만 1조원에 달하는 '갈현1구역'이 시공사 재입찰에 나서면서 순항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갈현1구역 재개발 조합은 현대건설 입찰을 무효로 결정하고 시공사 재입찰에 나섰다. 하지만 곳곳에 변수가 도사리고 있어 순탄하게 진행하기 힘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입찰 자격을 박탈당한 현대건설은 법적 대응에 나섰고, 컨소시엄 여부 등에 따른 유찰 가능성도 남아 있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진행하는 한남3구역 재개발 사업장 특별점검 결과도 관건이다.
# 현대건설의 '버티기'
가장 큰 풍랑은 현대건설과의 법적 공방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갈현1구역 재개발 조합은 지난 8월 16일 시공사 선정을 위한 입찰 공고를 내고, 10월 11일 현대건설과 롯데건설의 응찰로 입찰을 마감했다.
하지만 3일 뒤 롯데건설이 조합에 현대건설의 입찰 제안에서 문제점을 지적했고, 조합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지적된 사항은 건축도면 중 변경도면 누락, 담보를 초과하는 이주비 제안(LTV 80%) 등이다.
조합이 이런 내용을 은평구청에 알리자 구청은 '입찰제안 조건을 다시 살펴보라'는 취지의 공문을 회신했다. 그러자 조합은 지난 26일 긴급대의원회를 열어 현대건설 입찰을 무효화하고, 입찰보증금(현금600억원‧보증서400억원)을 회수하기로 결의했다.
현대건설은 반박하고 나섰다. 시공사 선정 입찰 참여 규정, 입찰 제안서 작성 기준 등 입찰제안서에 아무런 문제가 없고 규정도 모두 준수했다는 입장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대안설계는 법적기준을 모두 충족했고, 누락된 도면은 다시 제출하면 된다"며 "특히 문제로 꼽히는 이주비의 경우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 제30조에 따라 재개발사업은 기본이주비 외 추가이주비 제안이 가능하게 돼 있다"고 설명했다.
충분한 소명의 기회를 주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문제가 지적된 후 2주 만에 긴급대의원회를 열었고, 당일에 한 명만 참여해 발언할 기회를 주겠다는 연락을 받아 충분히 소명하지 못했다"며 "시공사 선정까지 가서 투표로 졌다면 모르겠는데 제대로 된 이유도 없이 중도에 배제됐다"고 말했다.
결국 현대건설은 지난달 28일 법원에 조합 대의원회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접수하며 법적 싸움을 시작했다. 현대건설은 법무법인 지평, 조합은 법무법인 김앤장과 대응하고 있다.
만약 입찰 마감 전 법원에서 현대건설의 손을 들어주면 조합의 시공사 선정 절차는 사실상 중단되는 셈이다. 대의원회에서 통과시켰던 ▲현대건설 입찰 무효 ▲현대건설 입찰보증금 몰수 ▲현대건설 입찰 참가 제한 ▲시공사 선정 입찰공고 재공고 등 4건의 안건이 무효가 되면 현대건설이 입찰 자격을 다시 부여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조합이 순순히 인정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가처분 효력금지 신청 등으로 맞대응할 수 있다. 혹은 현대건설의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본안 소송으로 이어지며 사업이 장기간 표류할 수 있다.
# 또 가능성 열어둔 '컨소시엄'
'컨소시엄' 여부도 갈등의 불씨가 될 가능성도 있다.
지난 8월 입찰에서도 공고에 '컨소시엄 불가'를 기재하지 않아 조합원 사이에 마찰이 있었다. 갈현1구역은 사업규모가 크고(공사비 9182억원) 구릉지 등 설계에 한계가 있어 단독 시공하기엔 시공사들의 부담이 큰 지역이다. 하지만 조합원들이 컨소시엄을 꺼리면서 시공사들은 단독입찰 확약서를 보내는 등 개별적으로 입찰에 나선 바 있다.
이번 재입찰 공고에서도 '컨소시엄 불가' 조항이 빠지면서 가능성이 다시 열렸다. 실제로 갈현1구역 조합원들은 사이에선 다양한 컨소시엄 구성 시나리오가 떠돌고 있다.
기존에 참여 의사를 보였던 롯데건설과 GS건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입찰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이를 우려한 조합원들은 지난달 26일 긴급대의원회 당일 '컨소시엄은 꿈도 꾸지 말라'는 플래카드를 걸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아울러 이번 시공사 선정이 유찰되면 그 다음 입찰은 수의계약이 가능해지는데, 그때 컨소시엄 구성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현재까지 입찰 의지를 확실히 드러낸 곳은 롯데건설 한 곳 뿐이다. 재입찰 공고 날 롯데건설 측은 "올해 유일한 목표였던 갈현1구역 단독수주 계획은 물거품이 됐지만, 조합의 진행일정에 따라 처음 갈현1구역에 인사드렸던 마음으로 재입찰을 준비하겠다"고 조합원들에게 전한 바 있다.
나머지 건설사들이 도전장을 내밀지는 미지수다. 최근 재개발‧재건축 사업에 대한 정부의 시선이 따갑고 애초 이곳에 관심을 보인 건설사들이 한남3구역에도 도전장을 내민 상황이어서 역량을 한곳에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 단독 입찰로는 리스크가 큰 점도 부담이다. 이런 이유로 롯데건설만 최종 입찰하게 되면 경쟁입찰이 성립되지 않아 유찰될 수 있다.
# 국토부‧서울시가 칼 휘두르면?
국토교통부와 서울시의 정비사업 특별점검 결과도 관건이다. 서울시는 하반기 재개발 최대어로 꼽히는 한남3구역, 갈현1구역에 대한 수주전이 과열되자 '정비사업 조합운영 특별점검'에 나서기로 했다.
이번 점검을 통해 위반사항이 적발되면 행정처분, 시정명령, 형사고발 등의 조치를 취한다는 계획이다. 서울시는 현재 해당 조합으로부터 건설사들이 조합 측에 제시한 입찰제안서를 제출받아 국토부와 공유한 상태다.
국토부와 서울시는 당초 갈현1구역도 함께 점검하기로 했다가, 최근 한남3구역에 대해서만 집중 점검하기로 했다. 갈현1구역이 입찰을 무효화하면서 기존에 제출한 입찰제안서가 의미없어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다만 한남3구역 점검 결과가 갈현1구역의 입찰 분위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시공사들이 정비사업 시공권을 따내기 위해 서울시 조례나 법을 위반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지만 입찰 무효 등의 고강도 제재를 받은 적은 거의 없다"며 "만약 한남3구역에서 입찰 무효, 입찰보증금 회수 등의 처분이 나온다면 향후 수주 분위기가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공사들은 이번 점검에서 혁신설계(중대한 설계변경), 이주비 지원 등을 어떻게 보는지 그 결과를 보고 움직이자는 분위기"라며 "경고에 그친다면 대형건설사들이 화려한 제안서를 들고 앞다퉈 입찰할 것이고, 강한 제재가 있다면 충분히 검토한 뒤 보수적으로 뛰어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