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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3구역에 '찬물 확~' 수주전 과열 잠재울까

  • 2019.11.27(수) 16:59

'시공사 불공정 수주관행' 정조준…충격파 있지만
"수사결과 나오기 전까지 큰 변화 없을 듯" 우세

"처음 의도했던 (국토부‧서울시의 한남3구역 합동점검) 타깃은 시공사입니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한껏 과열된 한남3구역 재개발사업 수주전에 찬물(입찰무효‧재입찰 시정 권고)을 끼얹었다. 시공사들이 수십 년간 이어 오던 불공정한 수주 관행을 뿌리 뽑겠다는 취지에서다.

정비업계는 당장은 한남3구역 조합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지켜보며 몸을 사리는 분위기다. 하지만 정부의 의도대로 '클린 수주'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아직은 회의적인 반응이다.

결국 수사결과에 따른 처벌 수위가 정해지기 전까지는 수주전에서 큰 변화를 이끌어내긴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18일 한남3구역 재개발조합 사무실 앞에 조합원들과 입찰에 참여한 시공사 직원들이 모여 있다./채신화 기자

◇ 이주비‧분양가 보장 등 '모두 위법!'

국토부와 서울시가 지난 26일 한남3구역 재개발사업 입찰에 참여한 대림산업, 현대건설, GS건설의 입찰제안서에서 위법이라고 판단한 20여건의 사항은 주로 '시공 외 금전 이익 제공'이다.

현대건설의 경우 가구당 최저 이주비 5억원을 보장하고, GS건설은 이주비 주택담보대출(LTV) 90% 지원 등을 약속했다. GS건설은 분양가 상한제 미시행 시 일반분양가를 평당 7200만원까지 보장하겠다고 했다. 대림산업은 '임대 0가구'를 제안했다.

국토부와 서울시는 이런 제안들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 132조의 '재산상 이익 제공 의사 또는 제공을 약속하는 행위'로 판단했다.

재개발 사업은 감정평가액 기준으로 LTV의 40%까지만 이주비 대출이 가능하고, 서울에선 분양가 상한제 비적용 지역이라도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가 규제를 받는데 현재 강남에서도 평당 5000만원 이하로 분양가가 책정된다. 임대가구도 재개발 사업의 경우 의무 비율이 정해져 있다.

이처럼 시공사들이 가능범위 이상을 제공하겠다고 한 공약은 간접적으로 조합원들에게 재산상 이익을 약속한 것이라고 봤다.

이 밖에 커스터마이징 옵션제, 분담금 입주 1년 후 100% 완납, 특별부문 보상제, 조식서비스, 건강검진, 특정 카드, 김치냉장고‧세탁기‧건조기 제공, 단지 내 이동수단 제공 등의 사례도 나왔다.

또 시공사들이 제안한 '대안 설계'도 서울시의 '공공지원 시공자 선정기준'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서울에서 정비사업 수주에 참여하는 시공자는 정비사업 시행계획의 원안 설계를 변경하는 대안 설계를 제시할 때 '경미한 변경'만 허용되는데 시공사들이 제시한 동‧층수 변경(대림산업), 커뮤니티 통합(GS건설) 등의 제안은 중대한 변경에 속한다는 것이다.

김성보 서울시 주택기획관은 "시공사에서 관행적으로 과열, 수주경쟁 벌여서 조합원에게 금품 제공 의사를 표시함으로써 공정거래를 해치는 행위를 관행처럼 해왔다"며 "이로 인한 조합원 피해가 발생하는 걸 막고 시장 질서를 바로 잡겠다"고 말했다.

◇ 분주해진 정비사업 조합들

한남3구역 재개발조합은 27일 오전 10시 긴급이사회를 열었으나 시공사 선정을 그대로 강행할 것인지 재입찰을 할 것인지에 대해 결정하지 못한 채 회의를 마무리 했다.

조합 관계자는 "워낙 중대한 사안인데 몇 일만에 어떻게 결정을 하겠느냐"며 "일단 28일 예정된 조합원 총회 및 시공사 합동설명회 등은 그대로 하되 수시로 조합원들의 의견을 듣고 신중히 결정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사업 지연이 불가피해 당분간 결정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부의 강력한 시그널에 연내 시공사 선정을 앞둔 정비사업 조합들도 바짝 얼어붙었다.

대표적인 곳이 갈현1구역 재개발, 한남하이츠 재건축, 방배삼익아파트 재건축 등이다. 이들 사업장에 관심을 보인 건설사 일부가 한남3구역에 입찰에도 참여한 상태여서 향후 한남3구역의 행보에 관심을 쏟고 있다.

다만 갈현1구역 조합은 이번 제재를 통해 오히려 한 발 내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갈현1구역 조합은 입찰에 참여한 현대건설의 이주비 지원을 문제 삼아 입찰 자격을 박탈한 바 있다. 이후 현대건설이 조합에 소송을 제기하고 조합 내에서도 비상대책위원회가 결성되며 어수선해졌다. 하지만 이번 합동점검 결과 이주비 문제가 '위법'임이 확인된 셈이 되자 내부 분위기를 정돈하고 사업에 속도를 낼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김성보 주택기획관도 전날 있었던 합동점검 브리핑 이후 '갈현1구역 조합은 어떻게 보느냐'는 질의에 "갈현1구역 조합은 잘 하고 있다"고 답해 정부의 사정권을 벗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18일 한남3구역 재개발조합 사무실 인근에서 입찰에 참여하는 시공사 직원들이 서 있다./채신화 기자

◇ 수주전 압박강도 세졌지만…"수사결과에 달렸다"

정부의 강력 제재가 업계를 뒤흔들고 있지만 그렇다고 '불공정 수주 관행' 등 과열결쟁이 사라지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국토부와 서울시가 합동점검 결과 포착한 시공사들의 위법사항을 수사 의뢰했을뿐 조합이 당장 시정 조치를 따라야 할 강제성이 없기 때문이다. 수사 의뢰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시공사들의 입찰 자격도 유지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위법 사항이라고 얘기했지만 그 판단은 수사기관에서 하는 것"이라며 "결국엔 수사 결과가 중요한데 어떤 결과가 나올지도 모르고 시일도 꽤 걸리기 때문에 한남3구역이 강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아울러 주택 시장이 경색된 상황에서 도시정비 사업이 건설사들의 유일한 '출구'인 만큼 수주 경쟁 또한 사라지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있다.

두성규 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미 재건축, 재개발 수주전쟁에서 부정적 관행을 없애기 위해 도정법이 수차례 개정돼 왔지만 불공정 관행은 사라지지 않았다"며 "이번 제재도 수주 분위기를 순식간에 바꾸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건설시장이 어렵고 주택시장이 위축돼 가고 있다"며 "도심지 내에선 정비사업이 그나마 남아 있는 시장이라 건설사로서는 수주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건설사들이 제안한 내용도 건설사가 부담을 다 안고 가겠다는 내용이 많다"며 "이것을  불공정거래로 볼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고 덧붙였다.

이번 제재로 주택 공급 위축, 집값 상승 등의 부작용을 예견하기도 했다.

두성규 선임연구위원은 "한남3구역을 통해 정부가 주는 메시지는 재개발도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는 것"이라며 "건설업계나 조합, 재개발 시장 전체에 주는 심리적 압박감이 상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시장에 공급부족 우려감을 더 확산시키고, 이렇게 되면 최근 불붙듯 확산되는 가격 오름세나 매물 잠김 현상이 심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이번 제재는 향후 정비사업 수주에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하며 시공사들의 수주전에 제동을 걸게 될 것"이라며 "당장 주택 공급을 우려할 정도는 아니겠지만 도시재생을 통해 주택을 공급하는데 규제의 패널티가 너무 많아지면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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