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값 상승분이 2000조원이든 1000조원이든 뭐가 중요합니까. GDP(국내총생산) 대비 부동산값이 많이 뛰었고, 이것이 국가경제에 도움이 되는 쪽하고는 무관하다는 데에서 문제의식을 갖자는 것 아닌가요. 이런 논쟁은 숫자놀음일 뿐이죠."
한 감정평가사의 얘기에 무릎을 탁 쳤다. 최근 며칠새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과 국토교통부의 땅값 논쟁을 접하며 누구 말이 맞는지에 골똘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경실련과 국토부의 논쟁의 요지는 이렇다. 경실련은 문재인 정부 들어서 땅값이 무려 2000조원(2016년말대비 2018년말)이 올랐고 이는 노무현 정부 5년간 3000조원 오른 것보다 연간 기준으론 더 심하다고 발표했다.
국토교통부는 발칵 뒤집혔다. 같은날 오후 늦게 해명자료를 냈고 그 다음날 또다시 유사한 자료를 냈다. 이어 같은날 오후 예정에 없이 기자들을 모아 백브리핑까지 한 것을 보면 정부내 분위기를 짐작케 한다.
경실련에서 땅값 상승분을 2000조원으로 산정한 것은 공시지가의 시세반영률을 42%로 본 것인데 정부가 올해 공식 발표한 공시지가의 시세반영률은 64.8%다.
국토부는 "경실련이 토지시세총액을 산출한 방법에 대한 논란을 차치하고라도 해당 산식에 현실화율 64.8%를 적용하면 2018년 토지시세총액은 8352조원"이라고 설명했다.
김영한 국토부 토지정책관은 "토지자산에 가장 권위있는 한국은행과 통계청에서 발표하는 국민대차대조표 상의 토지자산총액도 8222조원(2018년말)으로 국토부의 표준지 공시지가 현실화율을 반영해 산출한 금액(8352조원)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이는 경실련이 산출한 1경 1545조원(민간소유 시세 9489조원)과는 차이가 크다는 것이다.
또 이 국가통계에 따르면 2016년말의 7146조원보다 약1076조원 증가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영한 토지정책관은 "국가 통계의 신뢰성 훼손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시한다"면서 발끈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오히려 정부의 이같은 반응이 더 의아하다.
2000조원이면 많고 1000조원이면 적게 늘어난 것일까. 국민의 입장에선 둘다 가늠조차 하기 어려운 수준의 금액이다. 현실화율에 대한 논란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64%로 공식 발표했지만 실제론 40%대에 불과하다는 경실련의 지적도 마냥 터무니없다고만 볼 수도 없다.
또다른 감정평가사는 "시세를 어떻게 판단할지, 표본을 어느 범위로 할지에 따라 다른 결론이 나오는 것이어서 누가 맞고 틀리다의 문제는 아닌 듯 하다"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경실련은 전국 주요 필지 132개를 조사했지만 국토부의 표준지 공시지가는 50만필지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표본 수에서 오는 차이도 클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토지에 대한 공시지가는 아파트(공동주택)와 같이 비교적 표준화된 부동산과 달리 주관의 개입 여지도 크다.
표준지 공시지가는 감정평가사가 매기는데 감정평가사들 사이에선 서울 등 고가토지가 몰려있는 곳들의 공시지가 현실화율은 40~50%선에 불과하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왔다. 정부 역시 이런 이유로 누차 공시지가 현실화를 강조했고 이에 따른 공정한 세금 부과를 위해 올해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높였다. 결국에 같은 취지라는 얘기다.
물론 경실련의 자료를 보면 올해말 정상적인 땅값 수준을 물가상승률을 고려해 1979조원이라고 본 것처럼 '정상 가격'에 대한 경실련의 편협한 시각 역시 따져봐야 할 사안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는 시민단체의 지적이고 문제제기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공개토론회를 제안할 것이 아니라 부동산 시장 안정을 꾀하고, 더 신뢰성 있는 공시가격 산출에 힘쓰는 일이다. 결국 이것이 불로소득을 줄이고 공정한 세금부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내내 공시가격 신뢰성에 대한 논란이 이어졌던 점을 고려하면 정부가 지금 당장 해야 할일은 명확하다. 시민단체의 문제의식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국토부의 길을 가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