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의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재건축(2017년), 강북의 한남3구역 재개발(2020년)'
현대건설의 대표적인 수주 성과인데요. 공사비만 각각 2조6400억원, 1조8880억원 규모에 달하는 만큼 강남과 강북을 대표하는 '정비사업 최대어'로 손꼽혔던 사업장입니다.
그만큼 수주전도 만만치 않았는데요. 얼마나 경쟁이 치열하면 두 곳 모두 시공사의 과도한 입찰 경쟁으로 국토교통부와 지자체의 지적을 받으면서 정비업계를 긴장시켰을 정도입니다.
이 가운데서도 현대건설은 경쟁사로 기울어졌던 판세를 역전하며 결국엔 수주에 성공했는데요. 빅매치 수주전 때마다 승기를 거머쥐게 된 현대건설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 파격제안도 턱턱…'그땐 그랬지'
현대건설이 정비사업 수주전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남긴 곳은 무엇보다 반포1‧2‧4주구 재건축입니다.
1974년에 지어진 반포1‧2‧4주구는 재건축을 통해 최고 35층, 5388가구로 탈바꿈하는 총 사업비가 7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단지인데요.
지하철 4‧9호선 동작역, 지하철 9호선 구반포역과 신반포역 등 지하철역 3개와 인접해 있고요. 한강을 조망할 수 있는 데다 한강공원을 걸어서 이용할 수 있어 '한강변 랜드마크'를 조성하기 위한 시공사들의 러브콜이 이어졌습니다.
최종 입찰은 현대건설과 GS건설의 양강구도로 진행됐는데요. 수주전 초반에만 해도 분위기는 GS건설 쪽으로 쏠렸습니다. 이전까지 강남은 GS건설의 '수주 텃밭'으로 꼽혀왔던 것이 컸습니다. 고속버스터미널 옆에 들어선 '반포자이'를 비롯해 일대에 '신반포자이', '신반포센트럴자이' 등을 시공하면서 '자이타운'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강남에서 입지를 탄탄히 다졌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후 현대건설이 '사업 조건'에 승부수를 두면서 분위기가 역전됐습니다. '이사비 무상 7000만원 제공'이 여기서 나왔는데요.
이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요. 불과 2017년만 해도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 위반에 대한 경계심이 굉장히 낮았습니다. 별다른 규제나 감시가 없었거든요.
공식 홍보 기간이 아닌데도 시공사 직원들이 조합원과 개별 접촉해 홍보를 하는게 다반사였고요. 시공사들이 입찰 제안을 할 때도 '더 화려하게, 금융비용은 더 많이' 해주겠다며 과도한 제안을 하곤 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현대건설이 제안한 이사비 무상 제공은 파격적이었습니다. 조합원이 2000명이 넘기 때문에 총 1600억원을 무상 지급하는 셈이거든요. 이밖에도 특화비용, 사업비, 분양가 보장, 미분양 대물변제 등의 조건으로 조합원들의 표심을 움직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지자체의 시정 조치로 조합이 이주비를 안 받기로 했지만요. 조합원 입장에선 적극적인 자세를 보인 현대건설에게 마음이 간거죠. 결국 현대건설은 67%의 득표율로 '강남 재건축 최대어'인 반포1‧2‧4주구를 품에 안았습니다.
◇ 한남3구역에선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반포1‧2‧4주구에서 홍보나 입찰 제안을 최대한 활용했다면 한남3구역에선 상황이 달랐습니다. 정부의 감시 때문인데요.
한남3구역은 사업비가 7조원에 달하는 강북 최대 재개발 사업인 데다 한강변에 위치해 '랜드마크격' 단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어 시공사 입장에선 탐나는 사업입니다. 한남뉴타운 재개발 구역도 3개나 더 남아있어서 선발 사업장이 한남3구역을 수주하면 '수주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고요.
이에 입찰사인 현대건설, 대림산업, GS건설의 수주전이 눈에 띄게 과열됐는데요.
GS건설은 분양가 보장, 대림산업은 임대주택 제로, 현대건설은 혁신설계 등 저마다 눈에 띄는 제안을 내놓으며 그야말로 총성없는 전쟁을 연상케 했습니다.
이때만 해도 파격 조건을 제시한 GS건설과 대림산업의 2파전으로 흘러가는 분위기였습니다. 특히 동수나 층수를 바꾸고 커뮤니티를 통합하는 등 혁신 설계안이 눈길을 끌었죠.
반면 현대건설의 입찰 제안서는 상대적으로 얌전한(?) 편이었습니다. 더군다나 현대건설은 당시에 갈현1구역 재개발 수주도 함께 추진중이어서 업계의 예상 경쟁 구도에서 빠지곤 했는데요.
이런 분위기는 재입찰 때 확 바뀝니다.
1차 입찰 때 3사가 제안한 특화설계나 개별 홍보 등이 도정법 위반이라며 국토부와 서울시의 수사를 받아 무효화되면서요.
재입찰에선 특화 설계 등 도정법을 위반하는 사업 조건이 모조리 빠졌습니다. 조합의 요청으로 시공사 선정 총회날까지 보도자료도 배포하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진행됐는데요.
결국 승부를 가를 수 있는건 오로지 '입찰 제안서' 뿐이었죠.
여기서 경쟁구도가 현대건설과 대림산업 2파전(GS건설은 대안설계 미제시)으로 바뀝니다. 대림산업은 대안설계비용만 5000억원을 책정하면서 '고급화'에 치중했고요. 현대건설은 고급화에 금융 대여비까지 넉넉히 제공하면서 적극적으로 어필을 했거든요.
물밑 홍보(?)도 전략적이었습니다. 경쟁사들과 달리 건물 하나를 통째로 홍보관으로 만들어 자금력을 과시하는 동시에 더 많은 인원을 집객한건데요. 아울러 홍보관 출입이 안 되는 비조합원이나 취재진 등의 질문에도 답을 해주며 조용히 홍보를 이어갔습니다.
윤영준 현대건설 주택본부사업장(부사장)과 김태균 도시정비영업실장이 한남3구역 시공사 합동설명회에서 조합원 자격을 얻었음을 밝히면서 "집 주인의 마음으로 짓겠다"고 약속한 것도 '결정타'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 결과 현대건설이 50.3% 득표율로 한남3구역도 품에 안게 됐죠.
반포1·2·4주구나 한남3구역 모두 애초에 유리한 고지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현대건설의 수주 실적이 더 눈에 띄는데요. 자연스럽게 대치동 은마, 압구정 현대 등 남아 있는 굵직한 정비사업장에서도 이 기세를 이어갈 수 있을지 업계가 주목하는 모습입니다.
특히 전통의 강자로 평가받던 삼성물산도 정비사업 수주에 힘을 주고 있는 만큼 GS건설, 대림산업 등과의 경쟁은 한층 더 가열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