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m'
성인 기준으로 스무걸음이 채 안 되는 거리인데요. 아파트 앞동에서 뒷동까지의 거리가 이 정도라면 어떨까요?
이르면 오는 9월부터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동간거리 규제가 일부 완화돼 최소 이격거리인 10m까지 줄일 수 있는데요. 정부는 동간거리를 축소하면 다양한 단지배치를 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정작 입주해서 살아야 할 청약 대기자들은 '닭장식 아파트'를 우려하며 반발하고 있는데요. 과연 동간거리가 축소되면 어떻게 될까요.
동간거리는 말 그대로 아파트 등 건물 사이 간격을 말하는데요. 채광이나 조망환경을 고려해 그 간격을 건축법 시행령, 지자체 조례 등으로 규정해놓고 있습니다.
지난 2009년 중순까지만 해도 아파트 이격거리는 1배 이상이 되도록 했었는데요. 이후 몇 차례 건축법 시행령 개정을 거쳐 현재는 고층 건물의 남쪽에 저층 건물이 있으면 저층 건물 높이의 0.5배 또는 고층 건물 높이의 0.4배 중 긴 거리만큼 띄우고 있습니다. 서쪽이나 동쪽이라면 고층 건물의 0.5배가 최소 동간거리가 됩니다.
가령 북쪽으로 80m(약 28층)의 높은 건물이 있고 남쪽으로 30m(약 10층)짜리 낮은 건물이 있다면 최소 이격 거리는 32m(80m의 0.4배)가 되고요. 높은 건물의 서쪽에 낮은 건물을 배치한다면 40m(80m의 0.5배)를 띄워야 합니다.
국토교통부는 낮은 건물이 전면(동-남-서 방향)에 있는 경우 후면의 높은 건물의 채광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고 보고 다양한 주동 계획을 할 수 있도록 이 규제를 완화하기로 했는데요.
이르면 9월부터 '낮은 건물의 0.5배 이상'으로 정하는 거리를 최소 동간거리로 규정키로 했습니다. 고층 건물의 동, 남, 서쪽에 저층 건물이 있다면 저층 건물 높이의 50%만 거리를 두면 되는거죠. 앞서 예로 든 80m의 높은 건물의 남쪽에 30m의 낮은 건물이 있다면 15m(30m의 0.5배)만 띄우면 됩니다. 동간거리가 기존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드는 셈이죠. 다만 사생활 보호와 화재확산 방지 등을 위해 건물 간 최소 이격거리가 10m 이상이 되도록 했습니다.
국토부는 이번 조치로 아파트의 다양한 형태와 배치가 가능해져 조화로운 도시경관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는데요. 단지 배치를 다양하게 할 수 있고 동간거리가 좁아진 만큼 토지 이용도 용이하니까요.
하지만 정작 아파트에 입주해서 살아야 할 예비 청약자들의 반응은 냉담합니다.
그동안 건축법 시행령, 지자체 조례 등을 통해 동간거리가 계속 축소돼 왔는데 여기서 거리를 더 단축해버리면 '홍콩식 닭장아파트'가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 때문인데요.
실제로 서울 등 수도권 일부 지역에선 동간거리가 좁아 사생활 및 일조권 침해 등의 문제가 꾸준히 지적돼 왔습니다. 앞 건물에 가로막혀 빛이 드는 시간이 적거나 밖에서 내부가 보여 커튼을 쳐야 하는 일부 저층뿐만 아니라 동간거리가 좁아 갑갑함을 느끼기도 하는데요.
일부 전문가들은 주거 환경의 질을 보장하는 동간거리를 '건물 높이의 1배'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대지 환경, 건축물 설계 등에 따라 적정 동간거리는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개정안의 동간거리는 턱없이 좁아 보이는데요.
이에 주택 수요자들은 "가뜩이나 동간거리가 좁은데 동간거리를 더 줄이면 갑갑해서 살겠느냐", "홍콩처럼 닭장 아파트가 나올 것 같다"는 등의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동간거리 축소 정책을 반대하는 국민청원까지 진행 중인데요.
일각에선 정부가 주택 공급을 단기간에 많이 하기 위해 동간거리를 축소한 게 아니냐는 의심까지 나옵니다.
동간거리를 좁히는 만큼 용적률을 높일 수 있거든요. 실제로 서울시가 지난 2009년 건축조례를 개정하면서 동간거리를 기존 1배에서 0.8배 수준으로 조정할 경우 건물 용적률은 약 52%, 0.5배로 조정하면 85%가량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 바 있습니다. 용적률 247% 이하로 360가구를 지을 수 있는 아파트 단지라면 용적률 299% 적용이 가능해 76가구를 더 지을 수 있는 셈이죠.
김성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동간거리가 줄어도 단위면적당 연면적이 제한돼 있어 빽빽하게 성냥갑같이 지을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며 "또 대지가 구릉지인지 평지인지, 건축물이 판상형인지 타워형인지, 조경을 어떻게 배치했는지 등에 따라 동간거리에 따른 영향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수치가 다 맞고 다 틀린건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같은 면적에 들어갈 수 있는 가구수가 많아지기 때문에 공급효과가 일부 있을 것"이라며 "높은 집값 때문에 더 많은 주택 공급을 원하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정부가 나선게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