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된 규제와 천정부지로 치솟는 아파트 값에 지친 수요자들이 빌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빌라는 아파트에 비해 진입 문턱이 낮은 데다 오세훈 서울시장 취임 이후 재개발 기대감이 높아져 '대체' 수요처로 부각되고 있다.
다만 이미 풍선효과가 나타나면서 '빌라 불장'이 우려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하고 있다.
규제가 부추긴 빌라 거래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서울 빌라(연립·다세대주택) 거래량이 5개월째 아파트 거래량을 상회하고 있다.
1년 전인 지난해 6월만 해도 서울 빌라 거래량은 6634건으로 아파트 거래량(1만5622건)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쳤다. 그러다 가을 이사철인 지난해 9~10월에 빌라거래량이 아파트 거래량을 소폭 앞서다가 다시 역전되더니 올 들어서는 매달 빌라거래량이 앞서고 있다.
빌라거래량은 1월 5828건, 2월 4436건, 3월 5099건, 4월 5650건, 5월 4908건으로 5000건 안팎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아파트는 1월엔 5769건까지 거래됐으나 2월부터는 3861건, 3월 3779건, 4월 3635건, 5월 3773건으로 3000건 선에 머물렀다.
아파트값이 크게 오르자 수요자들이 '대체제'로 빌라를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중위매매가격은 9억9833만원으로 거의 10억원에 달했다. 1년 만에 8.49%(7820만원)나 올랐다.
그렇다고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노후 아파트에서 '몸테크'를 하기엔 재건축 희망의 불씨가 꺼져가는 분위기다. 재건축은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안전진단 강화, 실거주 의무(2년) 등의 규제로 사업 진행이 더디다. ▷관련기사: [집잇슈]'10년·15년?' 재건축 몸테크, 더 길어진다(6월11일)
임대차3법 등 각종 규제로 전세시장까지 혼란해지자 일부 전세수요가 매매수요로 돌아서면서 빌라를 매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빌라 있어요?…"투자 신중해야"
아파트 규제가 빌라 거래에 불씨를 제공했다면, 재개발 기대감은 불을 지폈다.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 후 재개발 규제 완화 가능성이 높아지자 재개발 기대감이 있는 서울 외곽 지역을 중심으로 빌라 거래가 늘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은평구 439건, 강서구 434건, 송파구 405건, 도봉구 355건 순으로 빌라 거래가 많았다.
은평구는 갈현1구역, 대조1구역, 불광5구역 등 대규모 재개발 사업이 추진 중이고 강서구는 마곡 개발 수혜가 예상되는 방화뉴타운이 정비사업 진행에 속도를 내고 있다. 송파구는 거여마천 뉴타운에서, 도봉구는 준공업지역인 창동에서 개발 기대감이 높다.
가격도 상승곡선을 타고 있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서울 연립주택 중위매매가격은 지난달 2억8851만원으로 1년 전(2억6730만원)에 비해 7.9% 올랐다.
주요 지역에서는 아파트 못지 않은 가격의 신축 빌라가 등장하고 있다. 현재 광진구 능동에서 분양중인 A빌라는 전용 53~54㎡가 7억~7억5500만원에 분양가가 형성됐다. 인근 신축 아파트와 비교하면 저렴하지만 구축 아파트의 가격은 뛰어 넘는 수준이다.
국토교통부 아파트 실거래가 조회시스템에 따르면 인근 구의동에서 2018년에 준공된 래미안파크스위트 전용 59㎡는 지난달 12억원(3층)에 팔렸으나, 2009년 지어진 아차산한라아파트는 지난 4월 6억700만원(4층)에 거래됐다.
서초구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강남처럼 입지가 좋은 곳이나 교통호재가 뛰어난 곳의 빌라는 '잠룡'이나 다름없다"며 "빌라 문의가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빌라 열풍'이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면서도 신중한 투자를 조언하고 있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빌라는 가격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은데다 오세훈 시장 취임 후 개발 기대감이 커서 당장은 개발을 못하더라도 갖고만 있으면 언젠가 개발이 될 거란 기대감에 수요가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만큼 가격이 많이 올랐는데 특정 상품에 수요가 몰리면 가격이 확 오르고 나서 정체되는 게 일반적"이라며 "한 발 물러서서 상황을 지켜본 다음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