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 없는 찐빵'
아파트 단지명에서 건설사 주택 브랜드가 빠지면 이런 느낌일까요. 통상 단지명은 '지역명+건설사 주택브랜드'로 지어 아파트 이름만 들어도 어느 건설사가 시공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인데요.
최근 들어선 단지명에서 시공사 주택 브랜드가 빠지는 사례가 속속 눈에 띄고 있습니다. 컨소시엄 시공도 아니고 단독 시공의 경우 시공사의 브랜드가 빠지는 건 이례적인데요. 생색을 내도 모자랄 판국에 왜 그런걸까요?
불리해? 그럼 빼고 가자!
최근 정비사업 수주전에서 건설사 주택브랜드를 뺀 단지명 제안이 잇달아 나오고 있습니다.
정비사업 수주전에서 조합원들이 시공사의 입찰 조건 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브랜드 파워인데요. 브랜드 경쟁력이 부족할 경우 '제3의 브랜드'를 만드는 추세입니다.
HDC현대산업개발이 대표적입니다. 이 회사는 지난 1월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를 일으킨 후 '아이파크 보이콧' 여론이 확산하자 신규 정비사업 수주 때 단지명에서 '아이파크'를 삭제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현산은 사고 이후 연달아 수주에 성공한 경기 안양시 '관양현대'(1313가구) 재건축과 서울 노원구 '월계동신'(1070가구) 재건축 모두 단지명을 조합이 정할 수 있도록 했는데요. 광주 붕괴사고 이후 아이파크 이미지가 추락한 만큼 조합원들이 제3의 브랜드를 요구할 가능성이 큰 상황입니다.
하이엔드 브랜드가 없는 경우 더 고급스러운 단지명을 쓸 수 있도록 아예 주택 브랜드를 빼기도 합니다.
포스코건설은 최근 서울 동작구 노량진3구역 재개발사업의 단지명으로 '포스코 더 하이스트'를 제안했는데요. 이 회사는 아파트 단일 브랜드로 '더샵'을 사용하고 있지만 단지명에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포스코건설 관계자는 "노량진3구역에서 제시한 단지명은 가안으로 시공사로 선정되면 조합과 협의해서 언제든지 새로운 브랜드로 변경할 수 있도록 했다"며 "단지명에 제한을 두지 않고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자 했다"고 설명했는데요.
이 회사는 지난 2020년 상반기 서초구 신반포21차 재건축 수주전에서도 단지명에서 더샵을 뺀 '신반포 크레센도'(가칭)를 제안, 수주에 성공한 바 있습니다.
하이엔드 브랜드를 쓰기 애매한 경우에도 자사 브랜드 대신 제3의 브랜드를 이용합니다.
지난해 하반기 서대문구 북가좌6구역 수주전에서도 DL이앤씨는 단지명을 'e편한세상'이나 '아크로'가 아닌 '드레브 372'로 제안했습니다. 당시 비강남권에 하이엔드 브랜드인 아크로를 적용할 수 없어 새로운 브랜드를 제안한 것으로 풀이됐으나 추후에 다시 단지명에 아크로를 추가하고 수주한 바 있습니다.
또 하이엔드?…경쟁력 얼마나 갈까
이같은 분위기에 건설사들의 주택 브랜드 고민은 갈수록 깊어지는 분위기입니다.
정비사업 신규 수주 때 조합원들의 마음을 사로 잡으려면 한껏 높아진 조합원들의 브랜드 눈높이를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이죠. 이에 '하이엔드' 바람에 올라타기 위한 움직임도 보입니다.
현재 10대 건설사(2021년 시공능력평가순위 10위권) 중 하이엔드 브랜드가 있는 곳은 △현대건설 '디에이치' △대우건설 '푸르지오써밋' △현대엔지니어링 '디에이치' △롯데건설 '르엘' △DL이앤씨 '아크로' 등 5곳인데요.
포스코건설과 SK에코플랜트도 올해 신규 브랜드 론칭을 준비중입니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되진 않았지만 신규 수주 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하이엔드 브랜드를 출시할 가능성이 높아보입니다.
특히 두 건설사 모두 노량진뉴타운 수주에 공을 들이고 있는데요. 최근 노량진에 하이엔드 열풍이 크게 일면서 이들 모두 하이엔드 브랜드 필요성이 높아진 상황입니다.
노량진5구역은 대우건설의 '푸르지오써밋', 8구역은 DL이앤씨의 '아크로'를 적용하기로 했고요. 4구역도 현대건설이 '디에이치' 적용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데요. 노량진2,6,7구역을 수주한 SK에코플랜트와 노량진3구역 수주전에 뛰어든 포스코건설의 마음이 급할 수밖에요.
이제 주요 지역에선 하이엔드 브랜드가 꼭 필요해진듯 한데요. 하지만 너도나도 하이엔드 브랜드를 적용하면서 오히려 브랜드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애초 서울 강남과 한강변 고급단지에 적용됐던 하이엔드 브랜드가 서울 외곽, 경기도, 지방까지 적용되면서 오히려 희소성이 사라지고 있거든요. 기존 브랜드가 '찬밥' 신세가 되는 것도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고요. 오히려 단일 브랜드를 사용하는 삼성물산의 '래미안'이나 GS건설의 '자이'가 꾸준히 강남 등 주요 지역에서 선호도가 높은데요.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지금은 하이엔드 브랜드 선호도가 워낙 높아서 신규 수주를 생각하면 건설사들이 하이엔드 검토를 안 할 수가 없다"면서도 "하지만 갈수록 희소성이 떨어져서 결국 일반, 하이엔드 할 것 없이 브랜드가 하향 평준화될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득일지 실일지 따져볼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