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C현대산업개발의 앞날이 '산 넘어 산'이다. 지난해 4분기 실적에 '광주 붕괴사고' 손실을 선반영했음에도 올 1분기 실적이 크게 휘청거렸다. 자체 사업이 감소하고 일반분양이 미뤄진 탓이다.
실적 악화 요인도 끝이 없다. 곳곳에서 계약 해지 바람이 불고 있는 데다, 광주 사고의 안전 정밀진단이 끝나면 추가 손실을 반영해야 한다. 다만 아직 '영업 정지' 발효 전인 만큼 그 사이 신규 수주에 성공해 향후 실적 반등의 기반을 확보해둘 수 있을지 주목된다.
광주 사고 반영 안 했는데…실적 '뚝'HDC현대산업개발이 지난달 29일 공시한 잠정 실적에 따르면 이 회사의 2022년 1분기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680억원으로 전년 동기(1180억원) 대비 42.4%(500억원) 감소했다.
매출액은 7320억원으로 전년 동기(6950억원) 대비 5.3%(370억원)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이 크게 줄면서, 분기 영업이익률은 9.3%로 전년 동기(18.0%) 대비 거의 반토막 났다.
특히 이번 실적엔 '광주 붕괴사고' 손실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앞서 현산은 지난 1월11일 광주 서구 화정동 아이파크 신축 현장에서 외벽·구조물이 붕괴해 근로자 6명이 숨진 사고를 일으킨 바 있다. 사고는 올해 발생했지만 손실 부분이 2021년 시공범위에 포함, 현산은 해당 손실 규모를 지난해 4분기 영업외 손실비용으로 반영했다.▷관련기사:'광주 사고' 때문에…HDC현대산업개발, 실적도 와르르(2월11일)
지난 3월 현산 주주총회에서 김홍일 현산 경영본부장은 "화정 사고 손실 추정액은 영업보고서에 1754억원을 반영했다"며 "사고가 난 201동만, 2단지만, 1~2단지 모두 철거 및 재시공할 때 등 3가지 시나리오의 평균값"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410억원으로 전년 동기(1680억원) 대비 75.6%(1270억원)나 쪼그라들었다.
올해 1분기엔 아직 화정아이파크에 대한 안전 정밀진단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라 손실을 추가 반영하지 않았다.
사고 손실을 반영하기 전인 지난해 3분기 수준으로 영업이익을 끌어올리긴 했지만 여전히 먹구름이다. 현산은 지난해 3분기부터 영업이익이 3분기째 1000억원을 밑돌고 있다.
현산 관계자는 1분기 실적에 대해 "자체 사업 호조세 등으로 2021년 1분기 영업이익이 높았기 때문에 그에 따른 기저 효과가 있고, 원자잿값 상승으로 매출 원가도 올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분양 공백'도 실적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현산은 해외 사업이 거의 없고 국내 주택사업 중심이라 일반분양 물량이 실적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지난해도 분양 물량이 1만860가구로 약 4000가구 밀렸는데 올해는 광주 사고 여파로 1분기 일반분양 실적이 '0'(제로)다.
2022년 분양 물량도 당초 2만 가구에서 1만 가구로 축소한 가운데, '아이파크 보이콧' 분위기나 정부 규제 방향 등을 지켜보고 일반분양 속도 조절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한숨 돌렸는데…사고 여파 이제 시작?
향후 실적 상승의 총알이 될 '신규 수주'도 먹구름이다.
현산의 올해 1분기 신규 수주액은 6550억원으로 전년 동기(1조1510억원) 대비 43.1%(4960억원) 줄었다. 해외 수주가 거의 없다는 걸 감안해도 같은 기간 △현대건설 8조9430억원 △삼성물산 4조8730억원 △GS건설 3조3910억원 △대우건설 2조6585억원 등에 비하면 월등히 떨어지는 수준이다.
이 기간 현산은 주택 자체사업과 건축 부문에선 각각 신규 수주를 한 건도 하지 못했다. 주택 외주사업이 6220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토목·SOC는 330억원 수주했다.
오히려 '아이파크 보이콧' 바람에 있는 사업마저 뺐길 판이다.▷관련기사:[집잇슈]HDC현산, 신규수주는 되고 기존수주는 안되고?(2월28일)
광주 사고 이후 현산이 계약 해지 된 재개발·재건축·리모델링 등 공동주택 사업장은 △광주 운암주공3(3214가구) △경기 광명11구역(4291가구) △부산 서금사A(2672가구) △경기 뉴타운맨션삼호(2618가구) △서울 광장상록타워(229가구) △경기 곤지암역세권(946가구) △대전 도안 아이파크시티2차(5290가구) 등이다.
이들 공사비 규모만 다 합쳐도 3조7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물론 공동시공이거나 조건부 해지도 포함되기 때문에 시공엔 참여하지 않지만 지분 투자에 따른 개발이익을 가져가는 등 전부 손해라고 볼 순 없다.
광주 붕괴사고에 따른 영업정지 등 행정처분이 적용될 경우 보이콧 분위기가 더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 현산은 광주 화정 사고와 별개로 지난해 6월 광주 학동에서도 붕괴사고를 냈다. 철거 중인 건물이 인근을 지나던 버스를 덮쳐 9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한 사고다.
서울시는 3월30일 이 사고와 관련 '부실 시공' 폄의로 현산에 8개월의 영업정지 처분을 한 데 이어 4월13일 '하수급인 관리 의무 위반' 혐의로 8개월 추가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다.▷관련기사:'학동 붕괴사고' HDC현산, 앞으로 8개월 신규 수주 못한다(3월30일)
그러나 돌파구가 없는 건 아니다.
현산이 같은 달 18일 '하수급인 관리 의무 위반' 8개월 처분을 4억원대 과징금 처분으로 변경 요청한 게 받아들여졌다. 부실시공으로 받은 영업정지 처분 8개월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도 법원이 받아들여 본안 사건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영업을 지속할 수 있게 됐다.
이에 현산은 적극적으로 신규 수주에 나서며 실적 턴어라운드를 꾀하고 있다.▷관련기사:[집잇슈]관양 현대, 'NO 현대산업개발' 터닝포인트 될까(2월7일)
이미 화정아이파크 사고 이후에도 △경기 안양 관양 현대(1305가구) △서울 노원 월계 동신(1070가구) △서울 강북 미아3구역(493가구) △서울 노원 상계1구역(1388가구) 등 4곳을 신규·단독 수주한 바 있다. 이들의 공사비만 총 1조1000억원이 넘는다.
대단지인 송파구 잠실진주(2678가구), 동대문구 이문3구역(4321가구)은 시공권 방어에 성공하기도 했다.
다만 화정아이파크 사고에 대한 처분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데다, 그에 따른 손실 비용도 지속적으로 반영될 예정이어서 실적 악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서울시는 화정아이파크 사고에 대해 등록말소 또는 영업정지 1년을 예고한 상태다.▷관련기사:HDC현산, 예상대로 엄중처벌 '영업정지 혹은 등록말소'(3월28일)
현산 관계자는 "안전진단이 추가로 진행될텐데 결과가 나오면 입주민 협의 등의 과정을 거쳐 손실액을 지속적으로 반영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