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붕괴사고' 이후 확산된 'NO 아이파크' 분위기를 뒤엎고 기사회생할 수 있을까. HDC현대산업개발이 경기도 안양시 '관양 현대' 재건축 수주전에서 시장의 예상을 뒤엎고 시공사로 선정됐다.
현산은 조합원들이 차마 외면할 수 없는 '파격 조건'을 제시, 경쟁사를 제치고 터닝포인트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사고에 따른 행정처분이 남아있는데다 타사업장에서 사업조건에 따른 형평성 논란 등이 불거지고 있어 당장 이번 수주의 득실을 예단하기 어렵다.
붕괴사고 한 달도 안 됐는데…수주, 어떻게 한거야?
HDC현대산업개발은 지난 5일 열린 경기도 안양시 관양동 '관양 현대아파트' 재건축 조합의 시공사 선정총회에서 총 509표(득표율 55%)를 얻어 경쟁사인 L건설(417표·득표율 45%)을 제치고 시공사로 선정됐다.
이번 수주는 광주 붕괴사고 발생 이후 '아이파크 보이콧' 분위기가 확산되는 와중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관양 현대 재건축 사업은 관양동 일대 6만2557㎡ 부지에 공동주택 1313가구의 대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으로 지난해 말부터 현산과 L건설의 양강구도가 펼쳐졌다.
현산은 그동안 유리한 고지를 점하다가 지난달 11일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가 발생하면서 입지가 크게 기울었다. 일부 조합원들은 단지 내에 현산에게 '제발 떠나달라'는 현수막을 게시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아이파크 불안해요" HDC현대산업개발 사실상 퇴출 위기(1월14일)
그러자 현산은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죽을 각오로 다시 뛰겠다' 등의 현수막을 내걸었고 유병규 HDC현대산업개발 대표는 자필 사과문을 보내는 등 조합원들의 마음 돌리기에 애를 썼다.
결정적으로 조합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사업 조건이었다.
현산은 △조합원이 단지명 결정 △후분양 조건으로 3.3㎡(1평)당 4800만원 보장 △미분양 발생 시 대물변제 △특수목적법인(SPC) 설립으로 사업비 2조원 조달 △가구당 7000만원 사업추진비 지급 △30년 안전결합 보증 △외부 안전감독관 운용 △관리처분총회 전 시공사 재신임 등을 약속했다.
여러모로 조합원들이 외면하기 어려운 '파격 조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L건설은 하이엔드 브랜드인 '르엘'이 아닌 '시그니처 캐슬'이라는 브랜드를 대체로 내놓으며 확실히 눈도장을 찍지 못했다.
영업정지 변수는?…"당장 사업지장 없어"
변수로 꼽혔던 '행정처분' 여파를 피할 확률이 높다는 점도 조합원들의 마음을 돌렸다.
현산은 지난해 6월에도 같은 광주 지역에서 17명의 사상자를 낸 '학동 참사'를 낸 바 있다. 하지만 아직 학동 참사도 화정아이파크 사고에 대해서도 행정처분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모두 '강력 처벌'을 시사한 바 있어 영업정지 처분이 예상되고 있다. 영업정지를 받게 되면 그 기간엔 정부 공공공사 참여는 물론 민간사업 수주 활동도 전면 금지된다.
그러나 '신규 영업'만 제한되기 때문에 관양 현대의 경우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건설산업기본법 제14조 1항에 따르면 영업정지처분 또는 등록말소처분을 받은 건설사업자와 그 포괄승계인은 그 처분을 받기 전에 도급계약을 체결했거나 관계 법령에 따라 허가, 인가 등을 받아 착공한 건설공사는 계속 시공할 수 있다.
행정처분이 실행되기까지 소요되는 시간도 길다. 영업정지 처분이 나와도 현산이 소송을 걸어서 실제 확정 처분까지 끌고 갈 수도 있다. 현산은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을 선임한 상태다. ▶관련기사: HDC현산 영업정지때 잠실 MICE·둔촌주공 등 남은 사업들은?(1월24일)
지난달 관양 현대 재건축사업 조합이 개최한 1차 시공사 합동 설명회에서 현산 측 발표자는 K건설사 사례를 언급하면서 "사고는 수년 전에 발생했지만 행정 조치가 이뤄지려면 사고 경위가 밝혀져야 한다"며 영업정지가 사업 지장을 초래할 일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앞서 K사는 2015년 참여한 금강광역상수도 노후관 갱생공사에서 근로자 2명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고용노동부장관은 2016년 지자체에 K사의 영업정지 처분을 요청하고, 경기도는 2018년 토목건축공사업 3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했으나 K사는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 행정처분 취소소송 등으로 대응했다. 결국 사고가 발생한지 6년이 지난 지난해 9월에서야 경기도 측의 영업정지 처분이 인용됐다.
당장 한숨 돌렸을 뿐…'난관' 예상
'아이파크 퇴출' 분위기 속 이번 수주 결과는 기사회생격이다. 그러나 이번 수주가 오히려 현산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우선 현산이 내건 파격 조건을 실현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특히 조합원들의 눈길을 끌었던 '평당 분양가 4800만원 보장' 제안의 경우 미분양 시 100% 대물변제를 조건으로 걸었다. 안양동에 위치한 1940가구 규모의 진흥아파트 재건축은 최근 평당 2990만원에 일반분양가를 신청한 걸 감안하면 시세 대비 훨씬 높은 수준이다. 전제 조건이 '후분양'이긴 하지만 향후 부동산 시장 변화에 따른 리스크도 고스란히 현산이 떠안아야 한다.
신규 수주도 문제다. 관양 현대는 붕괴사고 직후 수주전이었던 만큼 사활을 걸고 '적자 수주'에 나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른 사업장에서도 수주전에 나서면 관양 현대 재건축 조합에 제시한 수준으로 맞춰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이미 인근에 위치한 비산동 '뉴타운맨션삼호아파트' 재건축 조합은 현산이 관양 현대에서 제안한 사업 조건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이 재건축사업은 지난 2016년 현산이 수주했는데 평당 분양가 2500만원에 책정돼 가구당 2억원 이상의 분담금을 내야 한다. 이 조합은 사업조건 형평성 및 안전성 문제 등에 대해 논의하고 시공사 재선정까지 검토할 계획으로 전해졌다.
추락한 '아이파크' 브랜드의 신뢰를 회복하는데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극적으로 수주한 관양 현대도 단지명을 지을 때 조합원들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애초 현산이 제시한 단지명은 '아이파크 더 크래스트'였다.
징계 절차가 예상보다 더 빨리 진행될 경우 적극적인 신규 영업도 어려워보인다. 서울시는 이달 17일 학동 참사에 대한 청문 절차를 거친 뒤 최종 처분 수위를 확정할 방침이다. 통상 청문 절차 이후 행정처분까지는 한 달 정도 소요된다.
학동 참사는 건산법상 '일반 공중에 인명 피해를 끼친 경우'에 속해 영업정지 기간이 최장 8개월이다. 여기에 화정아이파크 외벽 붕괴 사고로 1년의 영업정지를 더 받게 될 경우 현산은 1년8개월 동안 신규 사업 수주가 중단된다.